누군가는 행운이라고 말하겠지만 그 또한 무용가로서 치뤄야할 대가(代價)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발레 영재로 조기 입학을 하다.
예원예술중학교 졸업 후 이은원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영재로 07년 학번으로 바로 입학을 했다. 예고로 진학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했던 그녀의 동기들은 발레리나로 활동하는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 에뜨왈), 박예지 (스페인 국립발레단), 이동탁(유니버설 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윤식(발레 전문 사진작가) 등 자신의 나이보다 3살 많았던 언니 오빠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또래보다 이른 나이에 대학을 입학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
10대 시절에서의 나이차이는 사실 어른이 다 되고 나서의 나이차보다 훨씬 그 폭이 넓고 깊다고 가정한다면 이은원은 자신보다 3년을 먼저 다듬어져서 대학에 온 동기들보다 어렸고 그래서인지 자신이 맡은 바를 해 내기엔 매 순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마다 그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조차 어려웠던 시간들이었고 그러니 앞서 말한 예원학교에서의 생활이 같은 나이 또래와 보낸 마지막 시간들이었다는 것은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무용원 영재로 이른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일단 무엇보다 무용수의 삶이 짧다는 전제하에 허투루 시간을 쓸 수 없다는 시간(時間)에 대한 강박이 있었고 예고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발레단을 입단하기보다는 조기입학을 통해 그 귀한 시간들을 잘 활용하고 싶었던 마음만큼 그 누구보다 춤을 많이 추고 싶었던 본인의 간절함이 가장 컸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대학 다닐 때 가장 기억나는 일은 대학교 2학년 때 연습 중에 무릎에 있던 슬개골 뼈가 부러져서 1년 가까이 쉬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발레밖의 세계는 전혀 알지 못했던 어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를 고민도 했었지만 결국 그때 자신이 마주하며 깨달았던 사실은 부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조차 이 모든 일들이 본인이 혼자 겪어내야 할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역(逆)으로 되려 잘됐다 하는 마음으로 쉬고자 했었고 그때 그 시간 동안에 보고 싶었던 드라마도 집중해서 보았고, 배우고 싶었던 그림도 배우기도 했었고,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었고 그리고 한 번쯤은 꼭 해 보고 싶었던 카페 알바도 도전해서 해 보았지만 결국 그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고 보니 자신이 돌아가야 길은 무용수의 삶이고 가야 할 자리는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났으니까 하는 말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슬럼프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10년 가까이 발레에만 몰두하며 연습에 집중하며 살 때도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다가 크게 다쳤고 부상을 입었고 한 번도 일요일에 연습을 쉬고 가족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일반인의 삶보다 예비 무용수로서의 삶에 훨씬 집중해서 살면서 시간을 보내다 부상으로 인해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그때의 심정이 스스로도 수 없이 괜찮다고 자신을 수 없이 다독였지만 괜찮지 않았던 그때의 마음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지내야 했던 그 시간들이 어떻게 보면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가장 빛나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처럼 그렇게 지나간다는 사실처럼 그렇게 어린 나이에 짊어진 또래의 친구들보다 무거운 왕관(王冠)을 올리며 지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아쉽고 힘든 시간들을 잘 이겨내고 나니 열심히 재활을 해서 부상의 위험을 이겨내고 복학을 했고 그 뒤엔 열심히 연습을 해서 국립발레단 인턴으로 입단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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