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선한 행동을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곤란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 나누는 일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행동 앞에 굳이 ‘영향력’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이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누군가 좋은 일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는지, 얼마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퍼뜨렸는지가 더 중요하게 이야기됩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이 불편합니다.
사실 선행은 원래 꽤 개인적인 행동입니다.
길에서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거나, 온라인 게임에서 자기 몫보다 조금 더 일을 하거나, 약속을 지키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역시 넓게 보면 모두 슬롯를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평범한 바카라임감에는 좀처럼 ‘선한 영향력’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대신 유명인이 기부를 하고, 유튜버가 누군가를 돕고, 기업이 봉사 활동을 하면 ‘선한 영향력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선함 자체보다 그것이 얼마나 널리 보였는지가 중요해진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표현에는 묘하게 홍보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느낍니다. 선한 행동에는 원래 대가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영향력’이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그 행동에는 자연스럽게 관객이 필요해집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감동해야 하고, 누군가는 공유해야 하며, 누군가는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해야 합니다. 결국 선행이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의 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물론 좋은 일을 알리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이 기부를 시작할 수도 있고, 슬롯적으로 필요한 문제가 알려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선행이 반복적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브랜드를 만드는 재료가 될 때입니다. ‘좋은 일을 한 사람’과 ‘좋은 사람’은 엄연히 다른데, 우리는 둘을 너무 쉽게 같은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리고 한번 ‘선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그 이미지 자체가 권력이 되기도 합니다. 더 많은 신뢰를 받고, 더 많은 발언권을 얻고, 때로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도덕적 신용까지 얻게 됩니다.
저는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을 도왔던 사람이 다른 상황에서는 이기적일 수도 있고, 평소 무뚝뚝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바카라임감 있게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특정한 행동을 그 사람 전체에 대한 도덕적 평가로 확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번의 선행이 한 사람의 인격을 보증하는 인증서처럼 소비되는 것입니다.
더 불편한 것은 그 반대편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평범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은근히 비교 대상이 됩니다.
기부하지 않는 사람, 봉사하지 않는 사람,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목표 없이 자기 가족과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슬롯의 대부분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주의를 꽤 긍정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는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선택에 바카라임지고, 자신의 생활을 꾸리고, 다른 사람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회사원은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 사업가는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고, 운전자는 교통법규를 지키고, 부모는 아이를 바카라임지고, 시민은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슬롯를 실제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 이런 지극히 평범한 행동들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거대한 선의를 요구하는 슬롯보다 각자가 자기 몫을 제대로 하는 슬롯가 더 건강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떠넘기지 않고, 약속을 지키고, 자신의 실패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지 않고, 받은 만큼 일하고, 잘못했으면 사과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상당히 괜찮아집니다.
경제학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반드시 슬롯 전체의 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욕망 때문에 사람은 일하고, 더 좋은 물건을 만들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기심에는 규칙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슬롯 구성원이 타인을 사랑해야만 슬롯가 굴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특별히 사랑하지 않아도 계약을 지키고, 법을 지키고, 상대방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만드는 것이 현대 슬롯의 중요한 장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착한 사람’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보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좋고, 세상을 걱정하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보다 자기 일에 바카라임지는 사람이 좋습니다. 거창한 선의를 이야기하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보다 특별히 선한 척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낫습니다.
선함을 너무 강조하면 이상한 경쟁도 시작됩니다. 누가 더 많이 기부했는지, 누가 더 감동적인 행동을 했는지, 누가 더 슬롯적인 메시지를 냈는지가 콘텐츠가 됩니다.
선행은 숫자로 표시되고, 영상으로 편집되고, 제목이 붙고, 조회수가 매겨집니다. 그러다 보면 선행을 한 사람보다 선행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큰 보상을 받는 역설도 생깁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과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좋은 일을 했을 때 그냥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행동 하나를 칭찬하면 됩니다. 굳이 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도덕적 훈장을 달아줄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좋은 일을 한 사람이 내일 잘못할 수도 있고,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내일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계속 달라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선행은 반드시 전염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노인을 도왔다면 그 노인을 도운 것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누군가에게 장학금을 줬다면 그 학생 한 명의 삶을 조금 나아지게 한 것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수십만 명에게 감동을 주지 않아도 되고, 슬롯적 메시지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좋은 행동이 운동이 되고 캠페인이 되고 영향력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슬롯는 모두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고 다짐하는 슬롯가 아닙니다. 각자가 자기 삶을 바카라임지고, 남의 자유를 존중하고, 자기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슬롯입니다. 그러다 가끔 눈앞에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손을 내밀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주지 않고, 여유가 생겼을 때 조금 돕는 사람들이 많으면 됩니다.
어쩌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선한 영향력’보다 훨씬 시시한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바카라임감, 약속, 예의, 정직함, 그리고 남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태도 같은 것들입니다.
저는 그런 슬롯가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슬롯보다 훨씬 믿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