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열등감

by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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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맨 끝줄 소년’에는 한때 작가를 꿈꿨지만 오래도록 새 작품을 쓰지 못한 교수가 자신보다 훨씬 어린 학생의 재능을 발견하고 흔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학생의 글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 재능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오래 바라던 것을 너무 쉽게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생기는 감정은 존경이나 부러움이라는 말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자로 일하면서 저도 그런 마음을 자주 느꼈습니다.


같은 회사 선배와 후배에게도 느꼈고, 다른 회사 동기와 이름만 아는 기자에게도 느꼈습니다.


때로는 취재하러 만난 기업인이나 공무원, 연구자, 현장 노동자에게서도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기자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입니다.


그 말은 곧 자신보다 똑똑하고 판단이 빠르며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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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다가 취재원이 복잡한 현상을 몇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을 들으면 감탄보다 먼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며칠을 공부하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회의에서 후배가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면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뜨끔합니다.


연차가 쌓이면 후배보다 아는 것이 많아야 할 것 같고, 적어도 질문만큼은 더 깊어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른 기자의 기사를 읽을 때 열등감은 더 선명해집니다.


어떻게 저 취재원을 만났을까. 어떻게 아무도 말하지 않던 사실을 확인했을까. 다들 본 자료에서 어떻게 저 숫자만 골라냈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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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며칠 동안 전화를 돌려도 만나지 못했던 취재원을 한 후배가 단번에 인터뷰한 적도 있습니다.


비결이 궁금해 물었더니 특별한 인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거창한 설득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 전화를 걸 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고 왜 상대의 이야기가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설명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전화를 많이 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상대가 왜 저를 만나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했는지는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은 여러 기자가 동시에 받은 자료를 놓고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발표 내용을 정리하는 데 급급했는데 다른 회사 기자는 자료 맨 뒤에 붙은 작은 표에서 정바카라의 허점을 찾아냈습니다.


그 기사는 다음 날 여러 곳에서 인용됐고 제가 쓴 기사는 별다른 반응 없이 지나갔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기자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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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시 자료를 펼쳐보니 그 숫자는 제 눈앞에도 있었습니다. 운이 아니라 제가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취재를 잘하는 기자에게만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기자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할지 알아냅니다.


어떤 기자는 복잡한 내용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쉬운 문장으로 바꿉니다.


어떤 기자는 제목을 기막히게 뽑고, 어떤 기자는 카메라 앞에서 떨지 않으며, 어떤 기자는 처음 만난 취재원이 오래 품어온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듭니다.


칼럼을 잘 쓰는 사람도 있고, 데이터를 잘 다루는 사람도 있으며 기획을 끈질기게 밀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출입처 관리에 능한 사람도 있고, 후배를 잘 가르치는 사람도 있으며, 회사가 어려울 때 광고를 잘 따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그것도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닙니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할수록 세상에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최고인줄 알았던 대학생과 내가 글 제일 잘 쓰는줄 착각하던 언론고시생 시절과는 너무 다릅니다.


여긴 프로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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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남의 장점은 아주 크게 보이는데 자신의 장점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남의 기사는 완성된 결과로 읽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사는 취재가 막혔던 순간과 마감 직전까지 헤맸던 과정까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문장은 매끈한데 제 문장 뒤에는 지웠다 다시 쓴 흔적과 데스크에게 혼난 기억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는 대체로 자신에게 불리합니다.


저도 한동안 열등감을 노력으로만 이겨내려고 했습니다.


좋은 기사를 보면 더 늦게까지 일했고, 특종을 놓치면 다음 날 더 많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마음이 실제로 저를 성장시킨 적도 있습니다.


부끄러워서 자료를 다시 읽었고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취재원에게 한 번 더 물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끝까지 고쳤습니다.


열등감은 분명 쓸 만한 연료입니다. 다만 불순물이 많고 너무 빨리 타는 연료이기도 합니다.


그것만으로 오래 달리면 결국 자신을 태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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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는 좋은 기사를 읽어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보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후배가 잘한 일을 축하하면서도 혼자 남으면 초조해졌습니다. 동기의 이름이 포털에 자주 보일수록 제 시간이 잘못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열등감이 커지면 남의 성취만 왜곡해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해온 일까지 함께 지워버립니다.


그때부터 저는 열등감을 없애려 하기보다 다루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기사를 발견하면 막연히 기가 죽는 대신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은지를 적어봤습니다.


취재원이 좋은 것인지, 문제의식이 새로운 것인지, 자료를 읽는 시선이 다른 것인지, 첫 문장이 강한 것인지를 나눠봤습니다.


그러면 “저 기자는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거대한 문장이 “나는 이 부분을 더 배워야 한다”는 작은 문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 전체와 경쟁하면 늘 지지만, 기술 하나는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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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따라갈 수 없는 장점은 그냥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저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데 나보다 뛰어나다. 저 후배는 숫자를 읽는 감각이 나보다 좋다. 저 기자는 짧고 힘 있는 문장을 쓰는 데 탁월하다고 인정하면 됩니다.


인정한다고 해서 제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제가 무엇을 잘해왔는지가 조금씩 보였습니다.


저는 한 번 만난 사람과 오래 관계를 이어가려 노력해왔고, 복잡한 사안을 끝까지 붙잡고 맥락을 이해하려 했으며, 쉽게 단정하지 않으려 애써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능력일 수 있지만 그것으로 쓴 기사와 만난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14년 동안 기자 생활을 버텨냈다는 사실도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취재가 실패한 날에도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었고, 기사 한 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벽까지 고쳤으며, 잘못 쓴 기사가 부끄러워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공부했습니다.


대단한 재능은 아닐지 몰라도 그렇게 쌓인 시간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필요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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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후배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자가 되면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험에 합격하면 합격한 사람끼리 비교하게 됩니다. 입사하면 동기와 비교하며, 연차가 쌓이면 후배와도 비교하게 됩니다.


좋은 회사를 다녀도 더 좋은 기사를 쓰는 기자가 보이고, 상을 받아도 더 큰 상을 받은 사람이 보입니다.


비교에서 완전히 이기는 날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모든 면에서 뛰어난 기자가 되려 하기보다 자신이 오래 붙잡을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았으면 합니다.


사람을 좋아한다면 취재원을 깊이 만나는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숫자를 좋아한다면 남들이 지나친 자료에서 의미를 찾는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글을 좋아한다면 복잡한 현실을 정확한 문장으로 남기는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장을 좋아한다면 남들이 사무실에서 보지 못하는 장면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말을 잘하지 못해도 오래 듣는 능력이 있을 수 있고, 낯을 가려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힘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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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자신의 강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러 번 실패하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방식을 흉내 내본 뒤에야 조금씩 알게 됩니다.


후배가 저보다 잘하는 모습을 볼 때면 지금도 마음이 복잡합니다.


대견하다는 마음과 부럽다는 마음, 저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함께 생깁니다.


예전에는 그런 감정을 부끄럽게 여겼지만 이제는 반드시 나쁜 마음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후배의 능력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아직 더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것은 제가 이 일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마음 때문에 후배를 깎아내리거나 제 삶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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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는 후배가 살아온 시간이 있고, 제게는 제가 버텨온 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오늘과 나의 전부를 비교해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열등감은 아마 기자 생활이 끝나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를 읽고 감탄한 뒤 잠시 풀이 죽을 것입니다. 어린 후배의 질문을 들으며 내가 왜 저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오래 주저앉아 있지는 않으려 합니다.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고, 제 몫의 취재가 있으면 다시 전화를 걸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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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잘하는 기자가 되는 일은 제 뜻대로 되지 않지만, 어제보다 조금 더 성실한 기자가 되는 일은 아직 해볼 수 있습니다.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작아지는 날에도 제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실까지 부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 합니다.


부러워하고, 배우고, 가끔 좌절하더라도 다시 현장으로 나가는 그런 사람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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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장 현장 하는게 오글거리긴 하는데요(꼭 현장서 뭐 하는 거 없는 기자들이 현장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이제 좀 있으면 내근으로 들어오고, 데스크를 맡게 되면 진짜 나갈 수가 없으니


지금 하루하루가 그나마 미래보다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이런 날이 올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그냥 만년 막내 기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 관리자로서 후배들을 바카라임져야 하는 그런 고난의 시간들이 눈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고 팀과 조직이 잘 굴러가도록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제 오래된 열등감은 좀 내려놓고, 저만 바라보는 어린 눈들을 위해 중심을 다져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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