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영화 호프가 재미없었던 이유

byhardy

스포왕창 / 영화 안 보신 분은 뒤로 가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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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영화관에서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필 그날 비가 왔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뭔가 축축하고 스산한 기분 때문에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애매모호함과 의심을 매개로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긴장감 넘치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대단한 감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호프도 10년만에 나오는 나홍진 영화라 기대가 컸습니다.


한국 시골과 외계인의 조합이라니, 기묘한 혼종 같은데 나홍진이라는 대가가 어떻게 그 이질감을 잘 녹일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호프를 감상하고 왔는데요.


저는 거의 초반 1시간은 푹 잔 것 같습니다 ㅠㅠ


마지막에는 으잉??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왜 이 영화가 너무 별로 였는지 그냥 저의 주관적인 감상을 남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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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 불친절 합니다.


시작하자마자 쉴틈없이 계속 외계인과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도대체 이 호포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설명이 없습니다. 아니 한국에서 이렇게 총을 편하게 쓸수 있는 곳이 어디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총에 익숙해 보이는게 좀 이해가 안갔고요. 하필이면 외계인들이 왜 이곳에 내려왔는지도.. 우연인지 아니면 여기에 뭐가 숨겨져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배경이나 맥락 설명 없이 추격전이 영화 내내 이어지니까 마냥 액션만 즐기기에는 도대체 저들이 왜 싸우는건지 명분이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2. 추격전이 루즈합니다.


진격의 거인을 연상케하는 외계인들은 엄청 빠릅니다. 그런데 외계인인데 능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은.. 그냥 변신도 하고 빠르게 뛰는 거 이외에는 특수한 능력이 없나 봅니다. 근데 외계인은 뒤에서 미친듯이 쫓아오는데 주인공들은 경찰차와 말을 타고 도망갑니다. 누가봐도 외계인이 훨씬 빨라보이는데 한 10분 넘게 주인공들이 서로 대화하는걸 기다려주는 것 같은.. 계속 못 따라잡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주인공은 거의 불사신이라 죽기직전에 계속 누가 구해주고, 운도 더럽게 좋습니다. 그러니 외계인 등장 -> 추격전 -> 다 따라잡혀서 주인공 사망직전에 다른 주인공이나 주변인이 구해줌 -> 주변인 죽음 -> 다시 추격전 -> 따라잡혀서 죽기직전에 운 좋게 도망치거나 누가 구해줌.. 이 루트가 반복되니까 지루할 수 밖에요.


그리고 외계인이 여러마리 나오는데 저 같으면 혼자서 다니기 보다 4명이 한꺼번에 힘을 합쳐서 마을을 그냥 도륙낼 수 있어보이는데.. 아무튼 화면에선 음악과 비트가 귀를 때리고 미친듯이 쫓아오고 주인공들은 미친듯이 도망가는데 저의 입에서는 하품이 나오는, 정말 언발란스한 구도가 완성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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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필요해 보이는 장면이 많습니다.


곡성의 플롯과 시나리오, 시퀀스는 가히 한장면도 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함의와 의미와 복선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N회차 관람이 필수 였고요. 아, 감독이 참 많은 고민을 하고 만들었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호프에선 그런게 잘 안 보입니다. 하나둘셋 하면 같이 들어가자고 하면서 셋 했는데도 안들어가서 욕을 한다든지. 외계인을 마주쳤는데 배는 아프고 소리를 안내려고 한손으로는 입을, 한손으로는 항문을 막고 있었다고 적나라하게 표현을 한다든지. 웃음을 유발하려 한 걸 까요? 긴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려는 그 의도였을까요? 저는 7광구라는 세계적인 역작에서 괴물을 마주했을때 팀장이 팀원에게 (시야를 막고 있는) '박스치워'라고 무전을 하자 그걸 '박수쳐'로 오인하고 박수를 계속 치던 그 절망스러운 장면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이 너무 많다보니 오히려 런닝타임을 반으로 줄이고 처음부터 외계인이 등장해서 하는걸 보여주는게 어땠을까 싶었네요. 초반 1시간은 무슨 서사를 쌓는거도 아니고 계속 외계인은 안보여주고 뭔가 터지고 이런거만 보여주니 너무 지루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간 대화나 이런거도 너무 소모적인 것 아닌가, 영화 빌드업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고요.


초반에 갑자기 사망(총을 수천발 맞아도 안 죽다가 갑자기 주인공 중 한명이 쏜 대포에 맞고 일개 트럭에게 치여 장렬히 산화)한 외계인을 해부하는 장면도.. 불쾌감을 주려는 의도였다면 성공했는데 굳이? 싶었습니다.


다리 밑에서 황정민이 아저씨와 만담하는 부분도 그랬고요. 또 갑자기 조인성이 사망하는 부분도 너무 뜬금이없어서 내가 감독의 의도를 놓친걸까? 싶었습니다.


4. 왜 이렇게 욕을 많이 하지요?


이 영화에는 욕이 많이 나옵니다. 씨발이라는 말이 137번 나왔다고 합니다. 뭐만 해도 씨발, 뭐만 해도 개새끼 이러니까 영화 말미에는 좀 귀를 씻고 싶을 수준이었습니다. 감독은 왜 이렇게 욕을 많이 썼을까요? 미지의 존재이자 너무나도 강한 외계인 앞에서 무력하지만 그래도 전의를 다지는 모습은 알겠습니다만 그냥 너무 맥락없이 욕을 많이 하니까 슬슬 기분이 나빠지더라고요. 솔직히 욕을 하고 싶은 건 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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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영화는 장르가 뭘까요?


이 영화는 추격적으로 시작해서 2시간 가량을 막 달리다가 막판에 가서 갑자기 장르의 전화를 시도합니다. 그냥 무식하게 달리고 쫓아오고 인간을 공격하는 줄만 알았던 외계인들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 건데요. 그때부터 저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쁜 외계인을 흠모하는 것 같은 마이클 패스밴더 외계인이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무슨 하늘에서 외계인 함선 같은게 침몰하고, 그걸 보면서 서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외계어로 대화를 나누는데요. 무슨 어린이 SF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외계에서 어떤 전쟁이 벌어졌고, 일부 세력이 지구로 내려왔고 그게 하필 하필 또 하필 극중 배경이 되는 한국의 호포지방이었고. 거기서 새로운 왕이 될 자녀를 잃어버린 외계인들이 빡쳐서 사라진 자녀를 찾는다는 설정은 알겠는데 갑자기 무슨 외계 함선이 떨어지고 외계인들의 세계를 조망하다 끝나니까요.


그러면 2편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이 호프라는 영화는 2편을 위한 빌드업 수준이 되는 겁니다. 불시착한 외계인에 맞선 주인공들의 고군분투와 외계인의 사정, 그리고 종국에는 이 두 세력이 어떻게 대립하고 화해?를 하는지가 또 관건이겠습니다만. 너무 관심이 안가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 플롯이라서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여러 장르가 세련되게 혼합된게 아니고 그냥 뒤죽박죽 섞여있는 느낌이라 약간 꿈같기도 하고 개연성과 맥락이 사라지니 공감이 어려웠다고 할까요.


6. CG의 문제


원래 칸에서 상영당시 CG 논란이 있어서 다시 수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 대부분은 크게 거슬리지 않았으나 첫번째 외계인 슬로우 모션때는 너무 이질적이라 좀 유치해보이더라고요. 약간 상상력의 부재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요.


첫번째 외계인은 일본 애니 진격의 거인 느낌이 났고요. 그 그나마 아름다운 외계인(조르)은 제 5원소 생각이 났으며, 마이클 패스밴더 외계인은 약간 베놈을 닮았고 역시 진격의 거인 짐승거인 느낌도 있고요. 여기저기서 차용해온 느낌인데 굳이 외계인을 사람처럼 그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외계인은 말그대로 다른 우주, 다른 은하에서 온 존재인데.. 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갔어도 될 거 같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외계인이 비주얼을 나타내자마자 이질성이 극대화되어서 외계의 존재 같지가 않아 보이는 문제점이 ㅠㅠ 보이더라고요.


오랜 시간 추격전에서 CG는 크게 문제 되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일부러 그림자나 이런 디테일을 봤는데 나쁘지 않았고요. 근데 일단 비주얼 자체가 좀 짜치는 느낌이 있어서.. CG로 커버하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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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우들의 연기 문제


역시 연기 부분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다만 정호연 배우의 시종일관 어색하고 뜬금없이 소리지르는 부분이 보일때마다.. 관객석이 술렁이긴 했습니다. 정호연 배우는 연기를 잘 하는 사람입니다. 오징어 게임 때 이미 봤잖아요? 오징어게임 시즌1 6화 마지막에서 자신을 대신해 죽음을 택한 이를 돌아서고 눈물 흘리는 장면은 모델이었던 정호연을 배우로 격상시킨 소중한 장면이지요.


아마도 정호연 배우가 호프에서 보여준 연기는 감독의 디렉팅에 따랐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외계인을 향해 내뱉는 뜬금없는 대사들 자체가 좀 이상한데 그걸 그럴싸하게 연기하기란 애초에 무리였을 거 같기도 하고요. 오히려 주민들 치료하면서 오고가는 대화는 어색하지않았는데 유독 외계인과 싸울때 그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날리는 사자후를 들을때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몰입이 더 깨지는 것 같더라고요.


8. 여전히 남은 의문점들


이 세계관에서 정부 혹은 군대란 없는 것일까요? 첫번째 외계인을 마무리하고 추가로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더 높은 기관 등에 보고하고 도움을 받았을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세계관이 어떤 세계관인지 전혀 설명이 없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이 커지고 몰입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 작은 동네에 총과 무기는 왜 이렇게 많은건지? 그리고 극중에서 칼리라는 젊은? 외계인이 중요한 역할인 것 같은데 그 중요한 인물이 일개 인간 청년에게 습격당하도록 강한 외계인들은 뭘했는지? 외계인 비공정 안에 있던 조그마한 외계인은 어떤 존재인지, 왜 그토록 중요한 인물처럼 묘사됐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칼리와는 어떤 관계인지, 외계인들이 지구에 내려온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 마지막에 추락한 함선은 누구의 것이며 외계인 슬롯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영화만 봐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물론 모든 의문을 영화가 친절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곡성 역시 끝까지 정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곡성의 모호함은 관객이 이미 본 장면들을 다시 조합하고 해석하게 만드는 모호함이었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반면 호프의 의문점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기보다 필요한 설명이 빠져 있다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그 장면의 의미가 뭐였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저건 대체 뭐였지”라는 질문만 남습니다. 모호함과 불친절함은 다릅니다. 전자는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지만, 후자는 관객을 영화 밖으로 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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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총평


호프는 분명 거대한 영화입니다. 제작비도 거대하고, 배우도 화려하며, 촬영과 음악, 미술과 CG에도 엄청난 공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화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그러나 영화의 규모와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크기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목숨을 걸고 뛰고, 외계인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격하며, 음악은 끊임없이 위기감을 고조시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들이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았습니다. 인물들이 누구인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잃을 위기에 놓였는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호프의 가장 큰 문제는 외계인의 생김새도, CG도, 욕설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이 이야기를 따라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인물에게 정이 붙기 전에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을 이해하기 전에 추격이 시작되며, 추격에 지칠 때쯤 새로운 세계관이 갑자기 펼쳐집니다.


러닝타임 내내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마음에 남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세계관의 입구까지 끌려갔지만 정작 문은 열어주지 않은 느낌입니다. 혹은 감독은 이미 그 문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관객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것을 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저에게 호프는 실패한 대작에 가까웠습니다. 못 만든 영화라기보다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다 정작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 전달에 실패한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다음 편이 궁금하기보다, 이번 편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부터 정리해야 했습니다.


10. 후속작에 필요한 것


호프가 후속작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면 다음 편에서는 무엇보다 세계관의 규칙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계인 슬롯에서는 어떤 전쟁이 벌어졌는지, 칼리는 왜 중요한 존재인지, 지구에 온 외계인들은 한 세력인지 여러 세력인지, 인간과 외계인의 관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최소한의 기준은 제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대사로 설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관객이 상황을 추론할 수 있을 정도의 단서는 줘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 인물들의 서사도 보강돼야 합니다. 누가 왜 싸우고 있는지,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먼저 쌓여야 합니다. 단순히 같은 마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관객이 이들의 연대에 감동하기는 어렵습니다. 인물의 관계와 감정이 충분히 축적돼야 죽음도 희생도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추격전 역시 속도보다 변주가 필요합니다. 계속 도망가고, 따라잡히고, 누군가 구해주는 구조를 반복해서는 아무리 화면이 화려해도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추격의 목적과 장소, 인물의 선택이 달라져야 합니다. 액션 장면 자체가 이야기를 진전시켜야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한 러닝머신이 돼서는 곤란합니다.


무엇보다 후속작은 관객과 소통해야 합니다. 전작을 이해하지 못한 관객에게 “다음 편을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방식은 위험합니다. 한 편의 영화는 그 자체로 최소한의 완결성을 가져야 합니다. 2편을 위한 준비라고 하더라도 1편에서 하나의 감정과 이야기는 끝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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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가들의 신작은 왜 과거의 명작보다 아쉽게 느껴질까요


최근 나홍진 감독의 호프뿐 아니라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 등을 두고도 과거 대표작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세 작품은 장르도 다르고 성취와 문제점도 제각각입니다. 단순히 한데 묶어 실패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은 있습니다. 감독의 세계는 더욱 거대해졌지만,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점입니다.


과거 이 감독들의 영화는 작가적이면서도 대중적이었습니다.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따라가다 시대의 무력감에 도달했고, 올드보이는 강렬한 복수극을 통해 인간의 죄와 욕망을 파고들었습니다. 곡성 역시 낯선 종교적 상징과 모호한 결말을 품고 있었지만,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절박함이라는 단단한 감정적 중심이 있었습니다.


관객은 먼저 이야기를 따라갔고, 그 뒤에 감독의 세계와 만났습니다. 그런데 최근 작품들은 감독이 구축한 거대한 관념과 세계관을 먼저 제시하고 관객에게 알아서 따라오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제작 규모가 커지고 해외 자본과 세계적인 배우들이 참여하면서 표현의 자유는 넓어졌지만,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절박함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제한된 예산과 환경 안에서 한 장면, 한 대사, 한 인물을 통해 반드시 관객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거대한 세트와 CG, 유명 배우, 압도적인 음악으로 장면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완성된 장면이 서사적으로도 필요한 장면인 것은 아닙니다.


감독이 이미 거장이 된 뒤에는 주변에서 “이 장면은 왜 필요한가”, “관객이 이 설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 러닝타임을 감당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질문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수많은 제약과 반론 속에서 이야기가 깎였다면, 이제는 감독의 이름 자체가 반론을 막아주는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영화에는 감독이 하고 싶은 것은 많이 남지만,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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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호프가 보여주는 한국 영화의 위기


한국 영화의 위기는 단순히 극장 관객이 줄고 제작비가 오른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대가 감독과 대중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작가주의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할 의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친절함이 곧 예술성은 아닙니다. 설명하지 않는 것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다릅니다. 난해함과 깊이도 같은 말이 아닙니다.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모든 바카라임을 관객의 문해력이나 인내심 부족으로 돌린다면 영화는 점점 폐쇄적인 예술이 됩니다. 특히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상업영화라면 감독의 개인적인 세계를 펼치는 것만큼이나 관객에게 그 세계로 들어갈 길을 만들어주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호프에서는 나홍진 감독이 외계 생명체와 한국의 시골, 블랙코미디와 잔혹극, 추격 액션과 우주 신화를 한 영화 안에 모두 담고 싶어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그 모든 요소가 하나의 이야기로 융합되기보다 감독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설정집의 일부처럼 흩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관객에게 N회차 관람과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순서가 바뀐 일입니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먼저 생겨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됐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영화를 다시 보지는 않습니다. 첫 관람에서 감정적으로 붙잡힌 무언가가 있어야 두 번째 관람에서 의미와 복선을 찾게 됩니다.


곡성은 답을 찾기 위해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호프는 답이 정말 영화 안에 있기는 한 것인지부터 의심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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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마치며


나홍진 감독은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강렬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영화가 더 아쉽습니다. 평범한 감독의 평범한 실패였다면 이렇게 긴 감상을 남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호프에는 분명 나홍진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이미지와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창적인 장면들이 반드시 좋은 영화로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장면과 장면 사이를 이어주는 이야기, 인물과 관객 사이를 이어주는 감정, 감독의 세계와 대중을 이어주는 소통이 부족했습니다.


대가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제작비나 더 유명한 배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능력보다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판단하는 절제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세계를 관객이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고 믿기보다, 처음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다시 바라보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관객은 감독의 세계관을 공부하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웃고, 놀라고, 무서워하고, 슬퍼하기 위해 갑니다. 그 감정이 충분히 전달된 뒤에야 영화의 의미와 감독의 철학을 생각하게 됩니다.


호프가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던 작품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제가 본 것은 가능성 자체라기보다, 가능성만으로는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0년을 기다린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제게 남은 감정은 경이로움도 공포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다음 작품에서는 감독이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만큼 그 세계에 관객을 초대하는 일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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