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A방송사 기자인데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byhardy


"저 A방송사 기자인데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실제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약 10년 전 사건팀 기자로 일할 때였습니다. 큰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은 경찰서나 현장 한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노트북을 펴고 충전기를 꽂고 가방을 놓습니다. 누가 정해준 자리는 아니지만 며칠씩 같은 곳에 죽치고 있다 보면 대충 각자 앉는 자리가 생깁니다.


그날도 취재를 나갔다 돌아왔는데 제가 맡아둔 자리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습니다. 제 물건은 옆으로 밀려 있었고 다른 기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왜 물건을 치웠느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이 이랬습니다.

“저 A방송사 기자인데요.”


잠깐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소속을 물었나. 명함을 달라고 했나. A방송사 기자에게는 남의 짐을 치울 수 있는 특수권한이라도 있나.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저도 참 싸가지가 없었습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은 지금도 후회가 별로 없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한 번은 브리핑이 예정된 시간에 시작됐는데 뒤늦게 도착한 모 통신사 기자가 화를 내는 모습도 봤습니다.

“저 아직 안 왔는데 왜 시작했어요?”

브리핑 담당자가 당황해했습니다.


저도 당황했습니다.


브리핑 시간이 그 기자의 출근 시간과 연동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기자 슬롯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습니다. 엠바고도 있고, 풀단도 있고, 공동취재도 있습니다. 기자단끼리 지켜온 관행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 질서를 자신의 특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회사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우리 회사는…” “우리는 원래…” “저희 정도 되는 매체는…”


본인 이야기를 하는데 주어가 늘 회사입니다.


회사 자랑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간판에는 힘이 있습니다.



유력 방송사에는 제보가 많이 들어갑니다. 큰 신문사에는 중요한 취재원이 먼저 연락합니다. 성향이 뚜렷한 매체에는 그 성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정보를 줍니다.


어떤 기자는 밤새 취재원을 찾아 헤매야 얻을 정보를, 어떤 기자는 가만히 앉아서 메일로 받기도 합니다.


이건 실력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회사의 차이일 때도 많습니다.


문제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할 때 생깁니다.


정보를 내가 찾아낸 것인지, 정보가 내 회사 간판을 보고 찾아온 것인지.


취재원이 내 질문에 감탄해 입을 연 것인지,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을 보고 입을 연 것인지.


내 기사가 정말 뛰어나서 많이 읽힌 것인지, 좋은 자리에 오래 걸려 많이 읽힌 것인지.


솔직히 기자 본인이 이걸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 모든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아주 조금씩 뻣뻣해집니다.


처음에는 말투에서 드러납니다.


취재원에게 반말 비슷한 말을 하기 시작하고, 브리핑 담당자를 아랫사람 대하듯 합니다.


그다음에는 동료 기자를 가립니다.


유력 매체 기자에게는 웃으며 인사하다가 처음 들어보는 매체의 기자가 명함을 건네면 표정이 묘하게 달라집니다.


“아, 거기.”


참 신기한 말입니다.


세 글자인데 꽤 많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너희 회사를 잘 모른다.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너보다 조금 위에 있다.


저는 이런 태도를 가진 기자를 볼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저 자신감 가운데 몇 퍼센트가 정말 본인의 것일까, 하고요.



회사 출입증을 빼고, 명함에서 회사 이름을 지우고, 기사를 포털 메인에서 내려놓으면 무엇이 남을까.


물론 정말 뛰어난 기자들이 있습니다.


기사를 읽다가 감탄하게 되는 사람이 있고, 도대체 저 취재원을 어떻게 뚫었나 싶은 기자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질문 두세 개만 들어봐도 다릅니다.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남들이 지나친 부분을 물어봅니다. 취재원이 얼버무리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서는 놀랄 만큼 솔직합니다.


“제가 이 분야를 잘 몰라서 그런데요.”


의외로 정말 잘하는 기자들이 이 말을 자주 합니다.


반대로 회사 이름을 자주 말하는 기자 중에는 이 말을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미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른다고 말하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합니다.


후배에게 묻기 싫어하고, 작은 매체의 특종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다른 기자가 자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면 배우기보다 불편해합니다.


그렇게 기자 생활을 15년 가까이 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이 하나 보였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반드시 오래 잘나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한때 기자단에서 목소리가 가장 컸던 사람이 어느 순간 중요한 취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후배 기자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선배가 조직 내 경쟁에서 밀리는 모습도 봤습니다.


회사 간판을 갑옷처럼 두르고 다니던 사람이 정작 회사 안에서는 별다른 존재감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기자는 계속 다시 초보가 되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일 겁니다.


출입처가 바뀌면 다시 배워야 합니다.


경찰서를 몇 년 출입한 기자도 경제부에 가면 초보입니다. 증권을 오래 취재한 기자도 부동산을 처음 맡으면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어제까지 기자를 먼저 찾던 취재원이 출입처 하나 바뀌었다고 전화를 받지 않기도 합니다.


그때 다시 해야 합니다.


전화를 걸고, 소개하고, 만나달라고 부탁하고, 모르는 것을 물어봐야 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요.” “한 번만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기자가 평생 해야 할 말들입니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꽤 어려운 일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오만한 사람을 당장 벌주지는 않습니다.


이 점이 무섭습니다.


좋은 회사에 있으면 당분간은 별문제가 없습니다.


보도자료도 옵니다. 제보도 들어옵니다. 취재원들이 알아서 전화를 받습니다.


회사 시스템이 기사를 만들어주고, 좋은 선배와 후배들이 지면과 방송을 채워줍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질문하던 기자가 어느새 한 분야를 가장 잘 아는 기자가 됩니다.


후배의 기사를 무시하지 않고 읽던 기자는 나중에 좋은 기사를 알아보는 데스크가 됩니다.


작은 매체 기자가 던진 질문에도 귀를 기울이던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취재망을 갖게 됩니다.



회사가 좋은 기자를 오랫동안 끌고 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대신 뛰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사심이 지나치게 넘치는 기자를 조금 경계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를 좋아하는 기자가 싫은 것은 아닙니다.


저도 제가 다니는 회사가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회사 기사가 다른 회사를 제치면 기분이 좋고, 후배가 특종을 하면 괜히 자랑스럽습니다.


다만 회사의 성취와 나의 성취를 헷갈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회사의 역사는 제 경력이 아닙니다.


선배가 쓴 특종은 제가 쓴 기사가 아닙니다.


회사의 영향력은 100% 제 취재력이 아닙니다.


저 역시 회사의 힘을 빌려 취재해왔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그 힘을 온전히 제 것인 양 다른 기자 앞에서 휘두르지는 말자는 생각입니다.



명함에서 회사 이름을 지웠을 때 나는 어떤 기자인가.


가끔 그 질문을 해봅니다.


회사를 옮겨도 취재원은 내 전화를 받을까.


좋은 출입처가 아니어도 나는 기삿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서도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사실 기자에게 필요한 애사심은 “우리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데”라고 말하는 마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 회사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좋은 기자인가를 계속 의심하는 마음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때 그 A방송사 기자가 생각납니다.


“저 A방송사 기자인데요.”


회사 이름은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자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자에게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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