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대체로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아마 직업병일 겁니다. 매일 누군가에게 묻고,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세상에 전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고, 왜 벌어졌는지 해석합니다.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먼저 알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입니다.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착각하게 됩니다.
내가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입니다.
기자들끼리 술을 마셔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요즘 부동산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사람이 “그건 내가 좀 아는데” 하고 들어옵니다. 정치 이야기를 하면 정치부를 거친 사람이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기업 이야기가 나오면 산업부 기자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습니다. 스포츠 이야기를 꺼냈다가 스포츠부 기자가 같은 자리에 있다면 꽤 긴 밤을 각오해야 합니다.
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 제가 취재했던 분야 이야기를 하면 귀가 번쩍 뜨입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듣습니다. 그런데 몇 문장이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 그건 아닌데.’
‘이 사람은 여기까지만 알고 있구나.’
‘내가 설명해줘야겠네.’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 답변은 거의 완성돼 있습니다.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만 생각하고 있는 셈입니다.
취재원 앞에서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할 때 기자는 나름대로 공부를 합니다. 자료를 읽고 통계를 찾고 이전 기사를 뒤집니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이번 취재의 핵심은 이것이고, 문제의 원인은 저것이며, 기사는 이런 방향으로 써야겠다는 그림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취재원을 만났는데 제가 그려놓은 그림과 다른 말을 합니다.
“그 문제보다 사실은 이게 더 심각합니다.”
예전의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초조해졌습니다. 내가 준비한 질문이 있는데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슬쩍 대화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부분은요?”
취재원은 다시 설명합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또 제가 궁금했던 것을 묻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웃긴 일입니다.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려고 찾아가 놓고, 정작 제가 듣고 싶은 말만 해달라고 하고 있었으니까요.
한 번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선배가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어?”
저는 제가 준비했던 취재 내용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통계가 어떻고, 정바카라이 어떻고, 기사 방향을 어떻게 잡으면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선배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네 말 말고. 그 사람 말.”
당황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는데 정작 그 사람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선뜻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인터뷰를 할 때 가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내 기사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고르고 있는가, 하고 말이지요.
물론 기자는 모든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을 검증해야 하고 과장된 주장을 걸러야 합니다. 질문도 집요하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질문을 끝까지 물어야 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의심하는 것과 듣지 않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이 차이를 알기까지 꽤 오래 걸렸습니다.
후배 기자의 말을 들을 때도 비슷합니다.
연차가 조금 쌓이면 아주 위험한 말버릇이 생깁니다.
“나도 그거 해봤는데.”
후배가 취재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나도 그 출입처 있어봤는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거 예전에 한 번 했어.”
취재원을 만나고 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 원래 그런 사람이야.”
참 편리한 문장들입니다. 몇 마디만 하면 세상의 웬만한 일을 이미 경험해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후배가 가져온 아이템을 듣다가 저도 모르게 계속 말을 끊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기사가 안 되고, 저건 이미 나왔고, 취재하면 아마 이런 결론이 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문득 후배의 표정이 보였습니다.
더 이상 저를 설득할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그제야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말을 하지 않으니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사례와 조금 다른 지점이 있었고, 후배가 유독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도 따로 있었습니다.
결국 그 취재는 제가 처음 예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아마 제가 계속 말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기사였습니다.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렵습니다.
특히 내가 이미 답을 안다고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젊은 기자 시절에는 선배의 조언을 들으며 속으로 반박한 적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다른데. 요즘 독자들은 그렇게 안 보는데. 선배가 현장을 오래 떠나 있어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물론 정말 틀린 조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상하게 오래 남는 말들도 있습니다.
취재가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해하던 어느 날, 한 선배가 제게 “너무 기사를 찾으려고 하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찾아야지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싶었습니다.
선배는 그냥 사람을 만나서 오래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당장 쓸 이야기가 없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뒤 취재원과 아무 목적 없이 밥을 먹다가 꽤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질문해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던 취재원이 갑자기 “그런데 요즘 이상한 게 하나 있다”며 꺼낸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따라가 취재했고 기사가 됐습니다.
그때 오래전 선배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기사를 찾지 말라는 이야기는 취재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정해놓은 기사만 찾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독자의 말을 듣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기사를 쓰고 나면 댓글이 달립니다. 좋은 댓글도 있지만 기자의 속을 정확하게 긁는 댓글도 있습니다.
“기자가 뭘 모르네.”
솔직히 가장 얄미운 말 중 하나입니다.
기자는 그 기사 하나를 쓰려고 며칠 동안 취재했습니다. 수십 통 전화하고 자료를 읽고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몇 분 읽은 사람이 “기자가 모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화가 납니다.
‘제가 당신보다 많이 알아보고 썼습니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답글을 씁니다.
그런데 가끔 정말 독자가 맞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취재하면서 보지 못한 숫자를 누군가 찾아냅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현실은 조금 다르다”고 말합니다. 어떤 독자는 제가 너무 쉽게 사용한 표현 하나를 지적합니다.
그럴 때 가장 어려운 일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놓쳤다고. 내가 잘못 봤다고. 나는 기자지만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자는 매일 세상을 판단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고르고, 누구의 말을 인용할지 결정하고, 수많은 사실 가운데 몇 개를 골라 기사에 넣습니다.
그래서인지 겸손하기 참 어려운 직업입니다.
매일 이름을 걸고 글을 씁니다. 내 판단이 맞다고 생각해야 기사를 내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르겠는데 아마 이런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으로 기사를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확신은 기자에게 필요한 자질입니다.
문제는 그 확신이 취재가 끝난 뒤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주 순서를 거꾸로 합니다.
먼저 확신하고 취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 확신을 증명해줄 말을 찾아다닙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아마 이 순서를 바로잡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취재원을 만났을 때 내가 준비한 질문보다 그 사람이 갑자기 낮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후배가 이야기할 때 “나도 해봤다”는 말을 잠시 참는 것.
선배의 오래된 조언을 시대착오라고 치부하기 전에 한 번쯤 마음에 넣어두는 것.
내 기사를 비판하는 독자의 말 가운데 혹시 맞는 이야기가 없는지 찾아보는 것.
말로 쓰면 아주 쉽습니다.
실제로는 지독하게 어렵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은 살아온 시간만큼 자기 안에 답을 쌓습니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무언가를 처음 듣는 일이 줄어듭니다.
처음 몇 마디만 들어도 압니다.
저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끝날 것이다. 저 사람은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다. 저 문제의 원인은 이것이다.
그런데 가끔 세상은 내가 예상한 다음 문장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좋은 기사는 어쩌면 그 문장을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려면 조금 조용해져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내가 틀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꽤 많이 안다는 기분을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저는 아직 잘하지 못합니다.
인터뷰 녹취를 다시 들으며 제가 상대방 말을 얼마나 많이 끊었는지 깨닫고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이야기하는데 또 제 경험을 꺼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후배에게 조언한다며 사실은 제 자랑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뒤늦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 듣는 일에는 어느 정도 마음수양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취재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법은 배울 수 있습니다. 인터뷰 기법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녹음기를 좋은 것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말을 참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능력은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참 어려운 말입니다.
겸손한 기자가 되겠다고 쓰는 순간조차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이 조금 섞여 있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노력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덜 말하는 것. 조금 늦게 판단하는 것. 내가 아는 이야기가 나와도 “나도 알아요”라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다음 문장을 기다리는 것.
어쩌면 제가 오래 기자 생활을 하면서 배워야 할 가장 어려운 취재 기술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듣는 것. 아직도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