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안 주는데 취재원은 왜 기자를 도와줄까

by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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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꽤 뻔뻔한 직업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전화를 겁니다. 대뜸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그러다 질문이 어려우면 자료도 좀 보내달라고 합니다. 자료를 받으면 다시 전화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왜 이렇게 나온 걸까요?”


가끔은 한술 더 뜹니다.


“혹시 이 자료를 지역별로 다시 분석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정바카라이 시행되면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간단하게 전망해주실 수 있을까요?”


간단하게라고 말하지만 전혀 간단하지 않은 질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십수 년 동안 한 분야를 연구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동안 설명을 듣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습니다.


돈은 안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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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변호사에게 한 시간 상담을 받으면 돈을 냅니다. 세무사에게 복잡한 세금 문제를 물어봐도 돈을 냅니다. 기업이 전문가에게 시장 분석을 부탁하면 ‘자문’이나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계약서를 씁니다.


기자가 하면 취재가 됩니다.


“교수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처음부터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마법의 문장 하나로 무료 특강이 시작됩니다.


오만하고 염치없는 한국언론만의 특징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 전문기자협회(SPJ)의 윤리강령은 뉴스에 접근하기 위해 돈을 지급하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돈을 받고 정보를 파는 순간 취재원의 동기와 정보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영국에서는 인터뷰나 독점 정보에 돈을 주는 이른바 ‘체크북 저널리즘’이 존재해 왔지만, 미국 언론계에서는 이를 오랫동안 경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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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신문협회의 언론강령도 언론의 역할을 ‘국민의 알 권리’와 연결하고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언론의 바카라임으로 규정합니다. 적어도 제가 찾아본 주요 해외 언론 윤리 원칙 어디에도 “전문가에게 질문했으니 시간당 자문료를 지급하라”는 식의 보편적인 원칙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기자들만 유별나게 공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 다른 의미의 불편함이 생깁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묻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서는 신문·인터넷언론·뉴스통신 기자들이 일주일 동안 평균 13.7건의 지면 기사와 14.6건의 온라인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조사된 적도 있습니다. 매체별 차이가 있고 모든 기사가 별도 취재물인 것도 아니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상당한 생산량입니다.


기사 한 건을 쓸 때 취재원 세 명에게 전화한다고 가정해 봅니다.


기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의 일을 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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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중인 사람에게 전화를 겁니다. 강의가 끝난 교수에게 전화를 겁니다. 보고서를 쓰고 있는 연구원에게 전화를 겁니다. 퇴근한 공무원에게 카톡을 보냅니다.


“죄송한데 오늘 마감이라서요.”


기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취재원 입장에서는 황당한 말이기도 합니다. 기자의 마감은 기자의 사정입니다. 오늘 기사를 써야 하는 것도 언론사의 사정입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도와줍니다.


“지금 회의인데 30분 뒤에 전화드릴게요.”

“자료 찾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분야 전문은 아닌데, 더 잘 아시는 분 소개해드릴까요?”


심지어 기자보다 더 열심히 자료를 찾는 취재원도 있습니다. 질문 하나를 던졌는데 엑셀 파일이 돌아옵니다.


밤 11시에 “아까 말씀드린 내용 중 하나를 정정해야 할 것 같다”는 문자가 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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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대가도 없습니다.


물론 기자에게 이름이 나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기관의 입장을 알리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언론 노출 자체가 직업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을 빼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함도 쓰지 말아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사에 제 얘기는 굳이 안 넣으셔도 됩니다. 기자님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설명드린 겁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끔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럴 때 조금 멍해집니다.


이 사람은 왜 한 시간 동안 나에게 설명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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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직 언론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일 겁니다.


거창하게 기자를 존경해서가 아닙니다. 요즘 세상에 기자라는 직업이 특별히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내가 아는 사실을 기자에게 설명하면 누군가가 읽을 것이고, 조금은 더 정확한 기사가 나올 것이고, 세상에 필요한 정보 하나가 추가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에 한국 언론은 꽤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취재 인력은 부족하고 기사는 계속 내야 합니다. 속보가 뜨면 남들보다 몇 분이라도 늦을까 조급해집니다. 포털에는 이미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수십 개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면 또 전화를 듭니다.


“교수님, 죄송한데 지금 통화 잠깐 가능하실까요?”


저 역시 이 구조 안에서 수없이 많은 ‘잠깐’을 빌려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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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언론이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 때입니다.


전화를 받는 것이 취재원의 의무인 것처럼 굴고, 자료를 빨리 주지 않는다고 재촉하고, 30분 동안 들은 설명에서 기사에 필요한 한 문장만 떼어 쓰고, 기사가 나간 뒤에는 링크 하나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론이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말은 취재원의 시간을 공짜로 써도 된다는 면허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여야 합니다.


남의 선의로 만들어지는 직업이라면 그 선의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취재를 마치고 전화를 끊을 때 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보다 조금 무겁게 생각합니다.


사실 기자의 감사 인사는 꽤 싸구려입니다.


한 시간 설명을 들어도 감사합니다.

논문을 받아도 감사합니다.

자료를 새로 분석해줘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것 말고 기자가 당장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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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적어도 질문을 허투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받은 자료를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취재원이 자기 이름을 걸고 한 말이 이상하게 잘려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합니다.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내가 쓴 한 문장 때문에 “내가 한 시간이나 설명했는데 이것밖에 못 알아들었나” 싶을 때도 분명 있을 겁니다.


아마 실제로 그런 적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기자들의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도 안 주는데 말입니다.


기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시간을 빌려 먹고사는 직업입니다.


그리고 좋은 기사라고 불리는 것들 중 상당수는 기자 혼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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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모르는 번호를 받아준 사람.


바쁜데도 자료를 다시 찾아준 사람.


“그렇게 쓰면 조금 오해가 있을 것 같다”며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준 사람.


기사에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던 사람.


그 사람들의 시간이 기사 곳곳에 들어 있습니다.


기자를 하면서 감사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아마 그들에게 진 빚을 모두 돈으로 계산했다면, 기자 월급으로는 도저히 갚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기자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더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날 위해 시간을 내주고, 함께 기사를 도와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가끔은 자신이 잘나서 좋은 기사를 썼다고 착각하며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안타까운 기자를 보면


그를 물밑에서 도와준 취재원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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