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사과로 갚을 수 없다

by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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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금리는 사과로 갚을 수 없다


2022년 11월 28일 호주 캔버라 상원 경제위원회 청문회장. 필립 로 당시 호주중앙은행 총재는 일부 차주를 향해 “내 말을 듣고 행동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코로나19 이후 호주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0.10%까지 낮춘 뒤 “2024년 전까지는 금리 인상 조건이 충족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많은 가계는 이를 저금리가 오래갈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집을 사고 대출을 늘렸다. 그러나 시장은 중앙은행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물가는 예상보다 빨리 뛰었다. 결국 호주중앙은행은 2022년 5월 금리 인상에 나섰다. 그해 11월 기준금리는 연 2.85%까지 올라 있었다. 중앙은행의 말은 이자 부담으로 돌아왔다. 로 총재의 사과가 불가피했던 이유다.

사실 모두가 만족하는 금리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급격히 올리면 빚 있는 사람이 힘들다. 늦게 올리면 물가와 환율, 시장금리가 먼저 흔들린다. 금리를 내리면 경기에 숨통이 트인다. 다만 집값과 가계부채를 자극할 수 있다. 한쪽의 처방이 다른 쪽에는 부담이 된다. 그것이 금리다. 그래서 기준금리는 여론조사나 다수결로 정할 수 없다. 한국도 경제·금융 분야 최고 전문가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7명이 결정한다. 정치권의 압박과 단기 여론에서 벗어나 물가와 경기, 금융 안정을 종합적으로 보라는 제도적 장치다.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전 국민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결정도 드물다. 금통위 판단 하나에 남녀노소 모두의 삶이 바뀐다. 물론 전문가라고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금리 판단을 둘러싼 실기 논란은 반복돼 왔다. 2008년 8월 한은은 물가 상승 압력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연 5.25%까지 올렸다. 하지만 곧이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몇 달 만에 금리를 급히 낮춰야 했다. 물가에 집중하던 와중에 경기와 금융시장의 판이 바뀐 것이다. 반대의 논란도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기준금리가 연 0.50%까지 낮아진 상태가 이어지면서 가계부채와 자산가격 불균형은 커졌다. 한은은 2021년 8월 인상에 나섰지만 그때는 이미 ‘영끌’과 ‘빚투’가 시장의 일상어가 된 뒤였다. 낮은 금리를 오래 끌어도 비용이 따른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만큼 금리 결정은 어렵고 힘들다. 전직 한은 고위 관료는 “중앙은행은 늘 안개 속에서 운전한다”고 했다. 경제 지표는 각자, 또 동시에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어느 하나만 보고 핸들을 꺾으면 다른 쪽에서 사고가 난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판단을 미룰 핑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더 치밀하게 분석하고, 더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다.

한국 경제는 복합 난제 앞에 서 있다. 1560원대에 육박하는 ‘뉴노멀’ 고환율은 물가와 수입 비용을 압박하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불안은 금융 안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경기는 살려야 한다. 다만 물가와 환율을 방치할 수도 없다. 금통위가 올 하반기 4차례에 걸쳐 금리 방향을 정하는 일은 단순한 경기 조절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어느 쪽 위험을 먼저 막아야 하는지 그 중요도를 선택하는 일이다. 금리 조정의 적기(適期)는 지나고 나서야 선명해진다. 어느 선택에도 고통은 따른다. 그래서 바카라임 있는 결단이 더 필요하다. 7월 금통위를 2주 앞둔 금통위원들은 역사에 자신의 판단을 남긴다는 각오로 고민해야 한다.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 포인트 조정)이든, 빅스텝(0.5% 포인트 조정)이든, 동결이든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이 충분한 숙고와 바카라임 위에서 내려졌느냐다. 훗날 “그때 왜 그렇게 판단했느냐”는 질문 앞에 고개 숙이지 않을 결정이길 바란다. 그들이 정하는 금리의 후폭풍은 결국 5200만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세환 경제부 차장(foryou@kmib.co.kr)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858678?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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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기사는 이상합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증권사 전망이 쏟아집니다. 인상일까, 동결일까. 소수의견은 몇 명일까. 발표 당일 오전에는 일종의 정답 맞히기가 벌어집니다. 예상과 같으면 ‘예상 부합’,다르면 ‘깜짝 결정’이라는 제목이 붙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대개 끝입니다.


문득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리를 맞혔는지는 그렇게 열심히 따지면서, 그 금리가 옳았는지는 왜 나중에 잘 따져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정부가 부동산 정바카라을 잘못 내놓으면 몇 년이 지나서도 몇 번째 대바카라이 실패했는지 복기합니다. 기업이 잘못된 투자를 하면 당시 최고경영자의 판단이 도마에 오릅니다. 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수 교체가 10분만 늦어도 두고두고 욕을 먹습니다.


그런데 금리는 이상하리만큼 바카라임의 주어가 흐릿합니다.


물가가 오르면 국제유가 탓이 됩니다. 집값이 뛰면 공급 부족 탓이 됩니다. 경기가 꺾이면 예상보다 충격이 컸다고 합니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경제는 실제로 수많은 변수가 동시에 움직이는 곳입니다.


문제는 그 말을 끝까지 따라가면 어떤 판단도 평가할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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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5%가 옳으냐 2.75%가 옳으냐만 놓고 보면 답을 내기 어렵습니다. 같은 2.75%도 석 달 전에 올린 것과 석 달 뒤에 올린 것은 전혀 다른 정바카라입니다.


통화정바카라은 에어컨 리모컨과 다릅니다. 24도를 23도로 낮춘다고 방 안이 곧바로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기준금리를 누르면 먼저 채권시장이 움직이고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바뀌고,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따라갑니다. 환율과 자산가격, 사람들의 기대도 반응합니다. 그 뒤에야 소비와 투자, 물가에 영향이 번집니다. 한국은행도 통화정바카라의 파급 경로가 길고 복잡하고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중앙은행은 지금 보이는 경제를 보고 지금의 금리를 정하는 곳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지금 핸들을 돌려 몇 달 뒤 어디로 갈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여기서 ‘실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면 금리 실기는 늘 일이 벌어진 뒤에만 등장합니다. 집값이 크게 오르고 나면 “더 일찍 올렸어야 했다”고 합니다. 경기가 얼어붙으면 “너무 오래 높은 금리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물가가 뛰면 “선제 대응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정작 결정의 순간에는 이 질문이 별로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 지금인가. 한 번 더 기다렸을 때 생기는 비용은 얼마인가. 반대로 지금 움직였다가 틀렸을 때 감당할 비용은 무엇인가. 금통위원들은 어떤 위험을 더 크게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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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파와 동결파의 숫자는 기사에 잘 나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각각 어떤 ‘시간표’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됩니다.


이해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금리 판단은 사후 평가가 몹시 어렵습니다. 금리를 올린 덕분에 물가가 잡혔다고 하면 누군가는 “원래 잡힐 물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금리를 내리지 않아 금융 불안을 막았다고 하면 “애초에 불안이 올 리 없었다”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증명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억울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잘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한 일이 없어 보이고, 잘못해서 사고가 나면 그제야 모두가 쳐다봅니다.


그렇다고 면바카라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 엄격한 복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립성은 판단을 묻지 말라는 면허가 아닙니다. 정치권이 당장 금리를 내려달라고 소리쳐도 버틸 권한을 줬다면, 왜 버텼는지 설명할 의무도 함께 생깁니다. 시장이 인상을 싫어해도 올릴 수 있는 힘을 줬다면, 언제 그 힘을 썼고 왜 그때였는지도 훗날 평가받아야 합니다.


요즘 금리를 보면서 특히 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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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행은 이미 방향을 상당히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5월 금통위에서는 두 명의 위원이 0.25% 포인트 인상을 주장했고, 한은은 성장률과 물가 전망을 함께 크게 높였습니다. 수도권 주택시장과 환율도 경계 대상으로 다시 올려놓았습니다. 신현송 총재의 표현대로라면 이제 질문은 인상하느냐가 아니라 언제 올리고, 얼마나 빨리 올리고, 어디까지 올리느냐에 가까워졌습니다.


제 생각은 단순합니다.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다면 7월에는 0.25% 포인트를 올리는 쪽이 맞다고 봅니다.

0.5% 포인트를 한꺼번에 올리는 빅스텝은 지금까지 기다린 판단과 잘 맞지 않습니다. 5월에는 불확실성을 확인하겠다며 멈춰섰는데 두 달 만에 급하게 두 칸을 움직인다면, 오히려 뒤늦게 쫓아간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동결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중앙은행 스스로 물가, 성장, 환율, 부동산의 방향을 설명했고 인상 신호까지 보냈습니다. 자신이 제시한 조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행동을 미루면 다음 신호의 값이 싸집니다.


중앙은행이 가진 무기는 금리만이 아닙니다. 저 사람들이 저 상황에서는 실제로 움직일 것이라는 믿음도 무기입니다.


사실 기준금리 0.25% 포인트는 작아 보입니다. 숫자만 보면 그렇습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25%에서 25.25%가 된 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빚이 5억원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업이 수백억원을 빌렸다면 더 달라집니다. 은행과 보험사, 연기금이 움직이는 돈의 단위로 가면 소수점 두 자리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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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금리 기사를 쓸 때마다 조금 묘한 기분이 듭니다. 발표문에는 ‘0.25% 포인트’라고 적습니다. 기사를 송고하고 나면 그 숫자는 각자의 통장으로 흩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월 몇만원이고 누군가에게는 수백만원입니다. 어떤 회사에는 투자를 미룰 이유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집을 살지 말지를 바꾸는 숫자가 됩니다.

그런데 비용이 이렇게 흩어져 청구되다 보니 정작 결정의 바카라임도 함께 흩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꺼번에 5200만명이 고지서를 받아드는 날은 없습니다. 한 사람은 다음 달 대출이자에서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은 전세계약을 갱신할 때 느낍니다. 자영업자는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거절당한 날 체감하고, 취업준비생은 기업이 채용 규모를 줄인 뒤에야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금리의 후폭풍은 동시에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칼럼 주제를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금리가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결정이라면서 우리는 늘 발표 당일의 숫자에만 몰립니다. 인상인지 동결인지 맞히고, 총재의 넥타이 색깔까지 해석하고, 기자간담회에서 매파적 표현이 몇 번 나왔는지 셉니다. 그러고는 다음 회의까지 잊습니다.


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가장 오래 들여다본 것은 금리 그래프보다 달력이었습니다.


7월 16일. 그날 금통위원들이 어떤 숫자를 고를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이번에는 결정이 나온 뒤 “예상대로였다”는 한 줄로 넘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6개월 뒤, 1년 뒤에 다시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때의 물가와 환율, 집값과 경기를 놓고 당시 판단을 복기해보고 싶습니다. 결과론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누군가는 계속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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