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언론의 현실이 어렵다는 말은 맞습니다.
월급은 낮습니다. 인력은 부족합니다. 광고는 줄었습니다. 지면은 얇아졌습니다. 기자 한 명이 감당해야 할 출입처는 많습니다. 지역신문이 중앙 언론만큼의 자원과 여유를 갖고 권력을 감시하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물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권력으로 가도 되는 것입니까. 먹고살기 힘들면 어제까지 감시하던 권력의 입이 되어도 괜찮은 것입니까. 낮은 임금이 언론 윤리를 내려놓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전북 지역에서 한 정치부장이 지방선거 이후에도 정치 기사를 쓰다가 며칠 뒤 전주시장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나섰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면에 이름을 올렸고 곧바로 당선인 인수위의 대변인 자격으로 기자회견장에 섰다고 합니다.
문제는 단순한 이직이 아닙니다.
기자는 권력을 감시하는 사람입니다. 대변인은 권력을 설명하고 방어하는 사람입니다. 둘 다 말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서 있는 자리는 정반대입니다. 기자는 시민의 자리에서 권력에 묻습니다. 대변인은 권력의 자리에서 시민에게 답합니다. 그 사이에는 적어도 건너야 할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사라지면 독자는 묻게 됩니다.
그동안 쓴 기사는 기사였습니까. 아니면 다음 자리를 향한 준비였습니까. 후보를 향한 보도는 감시였습니까. 아니면 관계 관리였습니까. 비판하지 않은 것은 판단이었습니까. 아니면 침묵의 투자였습니까.
이 의심이 생기는 순간 언론은 가장 중요한 자산을 잃습니다. 신뢰입니다.
지역언론계에서는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있다고 합니다. 지역신문 기자들의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정치권으로 가는 것을 생계형 선택으로 이해하는 정서도 있습니다. 캠프나 인수위나 지자체 홍보 자리로 옮기는 일을 능력으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일을 잘하니까 발탁되지 않았겠냐는 겁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중앙언론 기자들과는 전혀 좀 다른 생각이긴 합니다.
제가 지역언론의 사정을 잘 모르기도 하고, 함부로 말하기 애매한 사안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식으로 정당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럴거면 기자를 왜합니까? 대기업 가서 돈 많이 벌면 되지 않나요?
제가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역 기자들의 월급이 낮다는 사실은 문제입니다. 지역언론이 광고와 협찬과 지자체 예산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문제입니다. 지역슬롯가 좁아 기자와 정치인과 공무원이 서로 너무 자주 마주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엄격해야 합니다.
권력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더 멀어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출입처와 매일 얼굴을 봐야 한다면 더 조심해야 합니다. 지역슬롯가 좁다면 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사가 기사로 읽힙니다. 그래야 질문이 질문으로 들립니다.
지역언론의 비극은 가난만이 아닙니다. 가난을 이유로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는 말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기자가 권력으로 직행하는 일을 정당화하지도 못합니다. 낮은 임금은 개선해야 할 노동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핑계로 언론과 권력의 경계를 흐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지역언론이 권력과 가까워지는 순간 피해를 보는 것은 시민입니다.
중앙 언론은 지역의 작은 권력까지 자세히 보지 못합니다. 시장과 군수와 도의원과 시의원이 지역에서 어떤 결정을 하는지 매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지역 기자입니다. 예산이 어디로 가는지 공사가 왜 이렇게 추진되는지 특정 단체와 특정 인물이 왜 반복해서 등장하는지 묻는 사람도 지역 기자입니다.
그래서 지역언론은 작아도 중요합니다.
지역언론이 무너지면 지역 권력은 훨씬 편해집니다. 불편한 질문은 줄어듭니다. 보도자료는 기사처럼 흘러갑니다. 행사 사진은 감시를 대신합니다. 정치인의 말은 검증 없이 제목이 됩니다. 그리고 시민은 자기 동네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기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그 감시자가 어느 날 권력의 편으로 갑니다. 그것도 충분한 유예기간 없이 바로 갑니다. 그러면 남아 있는 기자들도 의심받습니다. 지역신문 전체가 의심받습니다. 독자는 묻게 됩니다. 저 기자도 언젠가 캠프로 갈 사람인가. 저 기사는 시민을 위한 기사인가. 아니면 권력 근처로 가기 위한 이력서인가.
이것이 가장 무서운 손실입니다.
언론인의 정치권행을 영원히 금지할 수는 없습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도 있습니다. 기자였던 사람이 정치적 신념을 갖고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최소한의 절차와 거리입니다.
정치부 기자가 곧바로 캠프로 가고 다시 언론사로 돌아와 정치 기사를 쓰고 다시 인수위로 가는 식의 이동이 반복된다면 독자는 그 기사를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언론사도 바카라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기자 개인의 선택으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이동을 허용하고 방치한 조직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기준은 있어야 합니다.
정치부 기자가 자신이 취재하던 정치인 캠프나 인수위나 지자체로 이동할 때는 분명한 유예기간이 필요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와 이해관계가 생긴 기자는 관련 보도에서 빠져야 합니다. 캠프에 갔다가 언론사로 돌아온 기자가 다시 같은 정치인을 취재하는 일도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을 벌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언론의 신뢰를 지키자는 말입니다.
지역언론이 어렵다고 해서 기준까지 가난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난할수록 기준은 더 선명해야 합니다. 돈이 없을수록 신뢰라도 지켜야 합니다. 인력이 부족할수록 원칙이라도 붙잡아야 합니다. 지역에서 권력과 언론이 너무 가까워질수록 시민의 눈치를 더 봐야 합니다.
기자는 권력과 친해지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말을 예쁘게 정리하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기자는 권력이 불편해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지역 기자라면 더 그렇습니다. 지역 권력은 시민의 삶과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돈 없다는 지역언론의 현실을 압니다.
그러나 돈이 없다는 말이 권력행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월급이 낮다는 말이 기자 윤리의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로 어제의 질문을 오늘의 해명으로 바꾸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