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기사를 읽는 건 좋은 일이다. 국정 최고바카라임자가 언론 보도를 통해 민심을 살피고, 행정이 놓친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정바카라의 빈틈을 메우는 일은 오히려 필요하다. 언론은 때로 정부보다 먼저 현장에 닿고 숫자 뒤에 가려진 고통을 슬롯 앞으로 끌어낸다. 그런 보도를 정부가 참고해 제도를 고치고 정바카라을 손보는 일은 언론과 권력이 각자 제 역할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통령이 기사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를 직접 가르기 시작할 때다. 어떤 기사는 감사패를 받고, 어떤 기사는 대통령의 공개 비판 대상이 된다. 이때 대통령은 단순한 독자가 아니다. 한 사람의 시민도 아니고, 언론 소비자도 아니다. 행정부 수반이고, 예산과 인사와 행정조직과 여론의 주목을 움직일 수 있는 국가권력의 정점이다. 같은 말이라도 대통령의 말은 다르게 작동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경향신문의 장기 연체 부실채권, 이른바 민간 배드뱅크 관련 보도에 대통령 명의의 감사패를 전달했다.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이 경향신문사를 찾아 기자들에게 감사패를 전했고, 감사패에는 '서민들의 삶을 옥죄는 민간 배드뱅크의 약탈적 금융 부조리를 생생하게 밝혀내어 민생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는 취지의 문구가 담겼다. 기자협회보는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나 특정 보도에 감사패를 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그 보도 자체를 문제 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취약계층의 재기를 막는 장기 연체채권 문제, 금융회사가 바카라임을 회피하는 구조, 제도 바깥에 남겨진 채무자의 고통은 언론이 당연히 파고들어야 할 영역이다. 실제로 경향신문 보도 이후 관련 금융사와 금융당국이 움직였고, 후속 조치가 이어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기사가 정바카라 변화를 끌어냈다면 그것은 언론의 성과다. 다만 질문은 따로 있다. 좋은 기사라 해도, 왜 그 상을 대통령이 직접 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좋은 보도에 반응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있다. 담당 부처가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금융당국이 감독 기준을 점검하고, 국회가 제도 개선을 논의하면 된다. 그것이 언론 보도에 대한 가장 좋은 응답이다. 그러나 대통령 명의의 감사패는 단순한 정바카라 반응과 다르다. 그것은 “이 보도는 좋은 보도”라는 국가권력의 인증처럼 읽힐 수 있다. 대통령의 칭찬은 칭찬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권력 가까이에 있는 기사와 권력 바깥에 있는 기사를 은근히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반대편 사례도 있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정바카라을 비판한 기사를 X에 공유하며 정부에 대한 “억까”는 자제해달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바 있다. 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과거 조폭 연루설 방송을 두고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했고, 이후 SBS 제작진은 사과문을 냈다. 허위 의혹에 대해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대통령이라고 억울함을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언론도 성역이 아니다. 기사는 틀릴 수 있고, 악의적일 수 있으며, 때로는 무바카라임할 수 있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단정적으로 보도하거나, 맥락을 자르고, 제목으로 여론을 오도하는 보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는 절차는 이미 있다.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고, 필요하면 법원에서 다툴 수도 있다. 언론중재위도 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조정 신청을 통해 정정·반론·추후보도와 손해배상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이런 절차를 밟는 것과, 자신의 SNS를 통해 특정 보도를 직접 심판대에 올리는 것은 전혀 다른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이 기사는 좋다”고 말하면 칭찬받은 언론은 주목받는다. 대통령이 “이 기사는 억까다”라고 말하면 해당 언론은 곧바로 여론전 한복판에 선다. 시민의 비판은 여론이지만, 대통령의 비판은 신호가 된다. 지지자들에게는 공격 허가처럼 읽힐 수 있고, 공무원 조직에는 업무 방향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언론사 내부에는 부담으로 작동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결과는 비슷하다. 기사는 더 이상 기사 자체로 평가받지 않고, 대통령의 반응을 중심으로 재해석된다.
특히 SNS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 커진다. 대통령이 기사를 링크하고 한마디를 덧붙이는 순간, 그 기사는 공론장의 토론 대상이 되기보다 진영의 표적이 되기 쉽다. 기사의 사실관계와 논리는 뒤로 밀리고 “대통령이 찍은 기사냐 아니냐”가 먼저 떠오른다. 좋은 기사로 소개된 보도에는 박수가 몰리고, 나쁜 기사로 지목된 보도에는 비난이 몰린다. 이 과정에서 언론 비평은 사라지고 기사에 대한 충성도 테스트만 남는다.
많은 사람들은 나쁜 기사에 대한 대통령의 공개 비판은 위험하다고 느끼면서도, 좋은 기사에 대한 대통령의 칭찬은 별문제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는 칭찬도 압력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특정 보도를 좋은 기사로 인증하는 순간, 언론은 무의식적으로 묻게 된다. 어떤 기사가 권력에게 좋은 기사로 읽힐까. 어떤 보도가 대통령의 감사패를 받을 만한 보도일까. 칭찬이 반복되면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기보다 권력이 좋아할 의제를 고르는 유혹에 가까워진다.
언론은 권력과 가까워질 때 가장 위험해진다. 권력을 비판해서 미움을 받는 것도 부담이지만, 권력에게 칭찬받는 일 역시 부담이다. 기자가 경계해야 할 순간은 기사가 욕을 먹을 때만이 아니다. 권력자가 “잘했다”고 어깨를 두드릴 때도 조심해야 한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과 적당히 긴장하는 데 있다. 정부 정바카라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정부를 돕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정부의 협력업체가 아니고, 대통령의 정바카라 홍보팀도 아니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어느 팀의 멋진 패스에 박수를 친다고 생각해보자. 그 패스가 실제로 훌륭했을 수 있다. 관중도 감탄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심판이 박수를 치는 순간 경기는 이상해진다. 반대편 선수들은 심판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박수받은 팀 역시 부담을 느낀다. 심판은 경기를 잘 보되, 어느 팀의 플레이에 감정을 얹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도 비슷하다. 대통령은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정바카라에 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사에 점수를 매기는 순간 공론장의 심판이어야 할 시민의 자리를 권력이 대신 차지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언론 생태계는 서서히 달라진다. 기자들은 권력의 반응을 의식하고, 언론사는 대통령의 SNS를 모니터링하며, 정치권은 대통령이 찍은 기사와 찍지 않은 기사로 전선을 만든다. 좋은 보도와 나쁜 보도의 기준이 취재의 엄밀성, 공익성, 사실성에서 대통령의 호오로 옮겨갈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노골적인 탄압만이 아니다. 더 조용한 위험은 자기검열이다. “이 기사를 쓰면 대통령이 뭐라고 할까.” 이 질문이 편집국 안에 자리 잡는 순간, 언론 자유는 법 조항이 아니라 분위기 속에서 먼저 줄어든다.
이것은 대통령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모든 기사에 반응하기 시작하면 국정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대통령의 말은 드물수록 무겁고, 신중할수록 오래 간다. 그런데 기사 하나, 방송 하나, 온라인 논란 하나마다 대통령의 판단이 붙으면 대통령은 국정 운영자가 아니라 실시간 논평가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대통령이 세세한 일까지 챙긴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대통령이 왜 저 일까지 직접 나서나”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만기친람은 성실함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불안함으로 바뀐다.
물론 대통령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억울한 보도에 반박할 수 있고, 좋은 보도에 고마움을 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표현은 시민의 표현과 같은 무게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말하는 순간 제도와 조직과 지지층의 힘을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더 절제되어야 한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해서 모두 해도 되는 말은 아니다. 권력의 품격은 말의 양이 아니라 말의 절제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좋은 보도에 답하고 싶다면 감사패보다 정바카라으로 답하면 된다. 문제를 제기한 보도를 읽었다면 관계 부처에 점검을 지시하고, 제도 개선안을 내놓고, 피해자 보호 장치를 만들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잘못된 보도에 대응하고 싶다면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된다. 언론중재위에 조정을 신청하고,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필요하면 소송으로 다투면 된다. 국가권력자는 공론장 한복판에서 직접 호루라기를 불기보다, 제도의 뒤편에서 절차를 작동시키는 편이 낫다.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를 최종적으로 가르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이어야 한다. 시민이 읽고, 따지고, 비판하고, 기억해야 한다. 언론계 내부의 자정, 독자의 감시, 법과 제도의 절차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대통령이 좋은 기사에 상을 주고 나쁜 기사에 딱지를 붙이는 나라는 얼핏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효율은 위험하다. 언론이 권력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날 선 질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도 바로 그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