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를 장례식장에 보냈더니 단독을 들고왔다

byhardy
614993_830956_3556.jpg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있다'를 보다가 오래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극중 강말금 배우가 자신의 수습기자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일반인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 이른바 ‘장례식장 마와리’를 나갔다가 그만뒀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안타깝게 사망했는데 그 이유를 부모에게 취재하라는 금수같은 부장의 지시에 때려쳤다는 겁니다. 요새는 그런 미친 선배 기자는 없겠지요?


과거에는 진짜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야만적인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취재해온 사건이 없으면 그렇게 벌마와리를 돌았습니다. 경찰서에서 건진 게 없으면 병원으로, 병원에서도 별 게 없으면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어디선가 기사거리 하나쯤은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움직였습니다. 누군가의 사고와 불행이 기자에게는 ‘취재 아이템’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지만,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했습니다. 수습기자는 원래 그런 과정을 거치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고, 선배가 된 뒤에는 후배에게도 그렇게 시켰습니다. 부끄러운 부분이지요.


7389_24499.jpg


제가 강남경찰서 일진을 맡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제 밑으로 들어온 수습기자에게도 장례식장 취재를 보냈습니다. 지금 보면 “왜 그걸 시켰나” 싶지만, 그땐 별다른 의심이 없었습니다. 사건이 없으니 한번 돌아보라는 정도였습니다.


다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유족을 붙잡고 괴롭히라는 뜻은 아니었고, 혹시 취재할 만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의미였습니다. 솔직히 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 몇 군데 돌다가 빈손으로 돌아와도 그러려니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습이 기어코 단독거리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부의함을 털던 도둑을 발견한 것입니다. 낯선 사람이 빈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수상하게 여겨 지켜보다가 범행을 확인했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끝도 아니었습니다. 범행에 쓰인 도구까지 습득해 경찰에 인계했습니다.


AKR20151112194200005_02_i_P4.jpg


보고를 듣는데 순간 멍했습니다. ‘장례식장 좀 돌아보고 오라’고 보낸 수습이 절도범을 잡아온 셈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기사를 썼습니다. 경찰에 확인하고, 상황을 정리해 기사로 냈습니다. 그때 수습기자에게 바이라인을 넣어주지 못한 게 지금도 조금 미안합니다.


수습은 원래 바이라인을 달지 못하던 때였지만 적어도 그 기사만큼은 그 친구의 이름이 들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를 만든 건 제가 아니라 그 친구였으니까요.


그 기사는 이 기사입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0654304?sid=102


물론 운도 따랐을 것입니다. 장례식장을 돌았다고 매번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운만으로 치부할 일도 아닙니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는 사람과 못 알아채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아챘더라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확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습기자가 낯선 현장에서 수상함을 느끼고 그걸 놓치지 않고, 경찰 신고까지 하고, 범행도구까지 챙겼다는 건 그냥 운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기자로서의 촉과 집요함이 이미 있던 친구였습니다.


movie_imageL8C9YZ65.jpg


그날 이후 저는 그 친구에게 별로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선배랍시고 이것저것 조언은 할 수 있었겠지만 속으로는 늘 생각했습니다. 나보다 뛰어난 친구에게 무슨 훈계를 하나. 기자는 결국 기사를 가져오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말을 번지르르하게 해도 현장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면 소용없습니다. 반대로 환경이 나빠도 지시가 엉성해도 무슨 수를 써서든 기사를 들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그랬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친구는 지금 우리 회사 사건팀장(캡)으로 뛰고 있습니다. 후배들을 교육하고, 현장을 챙기고, 사건기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수습 시절 장례식장에서 단독을 가져왔던 친구가 지금은 다른 수습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게 가끔 신기합니다. 그리고 든든합니다.


AKR20151112194200005_01_i_P2.jpg


언론계 야만의 시절에도 유난히 눈에 띄는 후배는 있었습니다. 어디에 던져놔도 기사를 찾아오는 사람,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자리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 말입니다. 제게는 그 수습기자가 그런 후배였습니다. 이런 후배를 둬서 지금도 참 든든합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취재원이 언급하는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