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자단 가운데 연합뉴스 기사를 가장 빠르게, 그대로 베끼는 곳은 아마 한국은행 기자단일 것이다. 물론 나도 한은 기자단 소속이고, 휴일이나 주말에 연합 기사를 많이 참고한다. 우리 회사도 연합에 돈을 주면서 사진 등을 쓰고 있다. 소매상으로서 도매상의 제품을 정당하게 받아 쓰는게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나는 항상 연합 기사가 뜨면 보고전에 그 기사를 확인하라고 배웠다. 어디 발로 나온 건지, 어떤 부서 어떤 취재원에게 기사가 나온건지 체크하고 세세한 팩트를 체크하라는 지시였다. 물론 연합 기사는 대부분 맞는다. 연합기자들도 엄청 열심히하고 대단한 선후배도 많으니까. 그래도 마지막 기자의 자존심으로 팩트를 체크해보는 것이다. 존경하는 선배들은 "그냥 앉아서 연합만 베낄거면 기자를 뽑을 필요도 없고 알바를 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정말 동의한다.
내가 쓴 단독 기사가 얘기가 되고, 좋은 기사라는 1차 판단 기준이 있다. 연합이 내 기사를 받느냐 안받느냐다. 공들여 작성한 단독기사가 온라인이나 지면에 나가면 다른 매체들은 망설인다. 확인해서 팩트가 맞다고 해도, 이 기사가 과연 얘기가 되는지 받아도 되는지 판단이 잘 안선다. 그때 연합이 받으면 명분이 생긴다. 나는 아직도 연합에 의존하는 이 한국 언론계 분위기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반면 또 연합이 정리해주면 뭔가 편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니 취재원들도 연합에게 기사를 많이 넘기고, 연합의 취재에는 쉽게 응하는 경향이 있다. 연합이 쓰면 빠르게 전파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한민국 1등 통신사의 위엄이랄까. 아무튼.
다만 연합 맹신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자기 기사를 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연차때 기사 쓰면서 연합의 문체와 흐름을 참고만 해야한다. 계속 베껴서 내다보면 결국 자신의 기사를 쓰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연합이 써주기만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구르는 무능력한 기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자라면 좋은 기사를 써서 연합이 내 기사를 받아주길 기대해야지, 연합뉴스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
이러한 연합 맹신 분위기는 출입처마다 다르다. 주요 출입처에선 연합 의존력이 떨어진다. 애초에 훌륭한 기자들이 많고, 그들이 열심히 발로 뛰고 취재하며 자신만의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 연합이 쓰는 건 참고만 하고 각자 자신의 취재력을 믿고 이것저것 알아보게 된다. 반면 좀 부처 파워가 약한 곳의 기자들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러니 연합 기사만 바라보고 있다. 연합이 쓰면 바로 베끼고 하루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행 기자단이 딱 이런 느낌이다. 4달 간 출입하고 열심히 관찰하며 깨달았다.
사실 한은에 얘기되는 기사가 별로 없다. 매달 금융통화위원에서 금리 결정하는거 이외에는 기사를 짜내야 한다. 매달 나오는 통계 업데이트는 별로 얘기가 안 되고, 뭐라도 뒤지면서 기획 기사를 짜내야 한다. 없는데 짜내려니 힘든데 먹고살기 위해서 의원실도 가보고, 비공개 보고서도 요청하고, 통계시스템도 밤새 뒤지면서 그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남들과 다른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고 성과도 거뒀다고 자부한다. 우리 회사가 거의 버려두다시피 했던 한은이라는 출입처에서 존재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근데 다른 매체 기자들은 그럴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냥 나만 아둥바둥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재미가 없고 뭔가 피드백도 없고 조용한 절간 같다.
대신 연합이 뜨면 1시간안에 수십개의 매체가 그 기사를 그대로 받고 있다. 그게 한은 기자단의 디폴트 값이다. 10분 내로 뜨는 기사도 여러개다. 그냥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BIS나 OECD 통계를 가지고 연합이 기사를 쓰면 최소한 그 통계를 찾아보긴 해야 한다. 근데 그 통계가 복잡하고 어려워서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같은 초심자라면 더 그렇다.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보니까 한 20분 정도가 걸렸는데, 그 사이에 이미 타사 기자가 수십개 올라와 있었다. 그냥 연합이 맞겠지 하고 베끼는 것이다.
난 이렇게 대놓고 연합 베끼고 있어요 하는 출입처를 처음 보았다. 다른 주요 출입처에선 연합 베끼면 조금 민망해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내일은 내가 연합이 받는 기사를 써야겠지 하는 오기를 갖고 뛰는 기자들이 많았다. 근데 한국은행에는 그런 기자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기사와 취재를 보며 내가 배울만한 그런 사람이 별로 없어보인다는 거다.
난 한국은행이란 기관이나 조직이 한국에서 참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조용하고 절간같고 해도 기자들이 충분히 취재할 여지가 있고, 내용이 있는 곳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무기력한 언론 분위기가 계속되니까 힘이 빠지게 된다.
똑같은 기사라도 타사가 먼저쓰면 침묵하고 조용하고 못본체한다. 그러면서 같은 내용을 연합이 뒤늦게쓰면 다들 미친듯이 베낀다. 이런 분위기의 기자단을 두고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