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by김로운

뉴욕에 있을 때 맨해튼에 있는 모마 (현대 미술관)에 갔다. 4층에서 내가 좋아하는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고 5층에서 샤갈의 ‘나와 마을’을 봤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와 샵에 내려갔다. 기념품을 파는 샵의 한쪽에 물결무늬로 된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넓은 접시가 있었는데 이런 건 누가 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예쁘기는 하지만 쓰기도 불편하고 설거지할 때 깨지기 쉬울 텐데. 그렇지만 내 앞에 선 금발 머리 여성은 선뜻 집어 들더니 계산대로 갔다. 아마 그녀는 아름다움을 생각했겠지만 나는 설거지를 생각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는 아름다운 집의 주인은 운전하는 기사에게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집에서는 나지 않는 거슬리는 냄새. 계급을 나누는 냄새이다.


김애란의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그런 계급을 느끼는 단편들이 있다. 처음 나오는 작품 ‘홈파티’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연극배우인 이연은 대학 최고위층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임에 초대받는다. 장소는 세련된 옆 가르마 보브 단발을 한 중년 여성 오대표의 집이고 이연은 그곳에서 아름다운 그릇들을 발견한다. 모임에서 만난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다른 사람들은 너그럽고 세련된 태도로 가난한 이연을 대한다. 이연은 실수로 오대표가 아끼는 그릇을 깨는데 오대표는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을 보인다.


네 번째 작품 ‘이물감’에서 은행에 다니는 중년 남성 기태는 이혼한 아내를 그리워한다. 젊은 후배들에게는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자꾸 뭐든 쉽게 얘기하고 웃고 함께 있으면 편안했던 아내가 그립다. 아내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긴 듯해 그 남자가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남자는 편안한 표정을 가지고 있고 기태는 업무상으로 만난 회사 고위급들과 같은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좋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은 사람들의 내장에서 나오는 ‘내장의 관상’이다. 기태는 자기 목 안에서 이물감을 느끼며 올라오는 냄새가 짐승의 냄새 같다고 느낀다.


두 단편에서 김애란은 이 슬롯의 계급을 섬세하게 느끼고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지 않는 이연과 좋은 내장의 관상을 가진 남자에게 소심하게 복수를 하는 기태를 통해 계급투쟁을 보인다.


이 단편집의 다른 작품들도 우리가 느끼기는 하지만 미처 이름 짓지 못하는 이 시대의 이물감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슬며시 이름을 지어주고 있다. ‘레몬 케이크’에서는 서울로 올라온 늙은 엄마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숙제를 해내는 40대 여성 기진을 그린다. 그날 오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기진은 영어를 못 읽는 엄마에게 짜증이 나면서도 애잔한 마음을 계속 느낀다.


결국 중요한 일은 틀어지고 기진은 레몬케이크를 먹으며 버스에 탄 엄마의가 보내는 문자를 본다. 자신 와의 만남의 가장 중요했던 엄마와 자기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엄마를 외면하지는 않았던 자신의 마음을 본다.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기진은 숙제를 떠안는다.


‘좋은 이웃’에서는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논술 교실을 하는 내가 주인공이다. 나는 낡은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면서 언제 집을 소유하게 되나 걱정을 한다. 비 오는 밤 치킨 배달을 시켰다가 늦어져서 항의를 한다. 직접 배달온 치킨집 사장은 배달하는 친구가 사고가 났다며 미안하다고 쿠폰을 건넨다. 나에게는 전에 방문 교사를 하면서 특히 애정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장애인이었지만 똑똑했다. 그의 집도 낡은 아파트, 초라한 살림였는데 그 어머니가 어느 날 새로운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가게 됐다고 말한다. 이사한 곳으로 와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나는 질투하는 마음으로 거절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관에서 수위 아저씨랑 어떤 중년 여성이 싸우는 걸 본다. 중년 여성은 비 오던 날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자기 아들이 주차장에서 나오던 아파트 거주자의 차에 치인 날의 씨씨 티브이를 보여달라고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치킨을 배달하는 비 오던 날의 일이라는 걸 깨닫지만 모르는 일인 척 지나친다. 나는 좋은 이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소설집에는 ‘안녕’ 즉 ‘평안’을 기원하는 작품들도 있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40대 여성인 나는 온라인으로 영어로 배우며 큰 상실들을 잊으려 한다. 다소 이기적이던 엄마를 10년 동안 간병했으나 죽었으며 그 덕분에 6년 가까이 동거하고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남자 친구를 잃는다. 또 시골에서 간병을 하느라 온라인 게임을 잃고 다시 온라인 게임을 구하지 못한다. 엄마를 간병하느라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온 온라인 영어 교사 로버트는 죽은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나는 ‘교훈 없는 상실’을 겪은 사람을 만난 것이 반가워 한글 ‘안녕’의 뜻을 가르쳐 준다.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 ‘평안하시냐’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도 있다는 걸.


마지막 작품 ‘빗방울처럼’에서 주인공 지수는 좋은 이웃을 만난다. 위층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안방 천장이 내려앉지만 위층 사람이 연락도 되지 않자 지수는 한 달째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전세 사기를 당하고 그것 때문에 남편은 돈을 벌다가 죽었다. 한 달이 되던 날 위층집 사람이 나타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공사를 해준다고 한다. 안방 천장 공사를 하러 온 동남아인 여자는 지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하고 묻는다. 그 말에 지수는 살고 싶어진다. 사람을 살린 따뜻한 한마디이다.


인천에 갔던 날 독립 서점에서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샀다. 네모난 바카라이 아니라 끝 모서리가 지붕처럼 잘린 ‘집’ 에디션이다. 이웃을 살리는 생명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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