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기술이 시작된 곳
살다 보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밀도로 채워지는 날이 있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고모부의 장례식장이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술잔은 없었다. 음료캔 몇 개를 사이에 두고 여섯 시간 넘게 장례식장을 지키며, 우리는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 몇 년간 대화보다 장례식장의 몇 시간이 더 오랜 시간 대화로 남았다.
담담한 근황으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 순간 아버지가 걸어온 인생의 깊은 페이지로 흘러갔다. 그러다 오래 품어왔던 질문 하나를 꺼냈다.
"아버지, 못 고치시는 게 없는 그 손기술, 대체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마술사였다. 고장 난 가전제품이든 삐걱거리는 문짝이든, 당신의 손만 거치면 거짓말처럼 새 생명을 얻었다. 그 비범함의 뿌리가 어디인지,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기술을 별도로 배우시지도 않았고 관련 학과를 나오지도 않으셨다.
아버지의 대답은 뜻밖에도 두 공간의 연결에서 시작되었다. 교도소와 청계천이었다.
아버지는 교도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비번 날이면 어김없이 청계천으로 향했다. 온갖 버려진 것들이 모여드는 고물의 바다. 아버지는 그 낡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오래,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규칙을 하나 세웠다.
언제나 똑같은 종류의 고장 난 물건 두 개를 샀다. 물론 무거운 경우에는 하나만 사고 다음 기회를 노렸다. 가격이래 봐야 천 원 남짓이었다. 비싸야 삼천 원 안쪽이었다. 아버지는 고장 난 선풍기 두 대를 집으로 가져와 하나하나 해체했다. 이쪽에서 살아 있는 부품을 골라내고, 저쪽에서 쓸 만한 뼈대를 가져왔다. 그렇게 고장 난 것과 고장 난 것이 만나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아버지에게 청계천은 시장이 아니라, 버려진 것에 숨을 불어넣는 실험실이었다.
그래도 맨땅에서 그런 응용력이 나올 수는 없었다. 기본 기술의 뿌리를 다시 묻자, 아버지는 교도소 안의 직업 훈련 시간을 떠올리셨다.
당시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의 슬롯 복귀를 위해 전자 부품 조립 같은 직업 훈련을 운영했다. 아버지는 그 현장의 감독관이었다. 보통의 감독관이라면 질서 유지에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재소자들을 가르치는 전문 강사에게, 때로는 손재주가 뛰어난 재소자에게 다가가 끊임없이 물었다.
"이건 왜 이렇게 연결합니까?"
"이 수치는 뭘 의미합니까?"
테스트기 작동법부터 납땜 기술까지. 감독관이라는 계급장을 내려놓고,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렇게 어깨너머로 익힌 이론을 청계천 고물에 직접 적용하면서, 아버지만의 실전 기술이 완성되어 갔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버지가 고쳐온 것은 기계만이 아니었다.
배움의 기회가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주어진 환경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치열함. 고물 두 대를 엮어 가정에 쓸모 하나를 만들어내던 바카라임감. 그 무적 같던 손기술의 뿌리는 결국 호기심과 삶을 향한 성실함이었다.
술 한 잔 없었지만, 그 어떤 취기보다 깊은 밤이었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아버지의 손을 다시 보게 된다. 그 손이 걸어온 길을,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