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생활

아버지의 일기장, 서른 무렵에

아버지는 30년 넘게 교도소에서 일하셨다. 아버지가 온라인 게임 생활을 막 시작하셨을 때가 서른 무렵이었다. 서재의 해묵은 기록을 뒤적이다, 1984년 1월 14일이라는 날짜가 적힌 빛바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지금의 나보다 열 살도 더 어렸던 그 시절 그때 아버지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나는 아직 10살도 안 된 아이였기 때문이다.

머리가 백발이 된 아버지를 곁에 두고, 서른 무렵 청년이었던 아버지의 고백을 이제야 마주하다.

(아버지에게 사전에 동의를 구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일기를 글로 써도 되겠냐고 여쭤보았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글을 써봅니다.)


1984.01.14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지나가는 것일까? 생활의 리듬도, 생각의 여유도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이곳. 오직 세월의 흐름만이 있을 뿐, 적막과 고요만이 주위를 감돌고 쓸씀 함과 고독을 씹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옆에서 오고 가는 세월의 흐름을 멈추기라도 한 듯, 조용한 주위가 너무도 무섭다.


어찌해야 이 고통, 이 어려움의 생활을 뒤로할 수 있을까? 오늘도 굳은 마음으로 출근해서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 하루, 아니 이틀 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나가면 다음날에야 돌아올 수 있는 이곳. 가정, 슬롯 모두가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남들은 생활이 어떻고, 사는 보람이 어떻고 하건만, 나의 삶은 어디에서 삶이며 보람을 찾아야 된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끝없는 한탄의 메아리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리라.


믿음은 나의 목자이시니라고 말하셨다지만 나의 믿음은 무엇이려는 지. 인생의 참뜻을 생각해 보면 뜻 모를 이 마음속에 사무쳐 오는 것이 있다. 인생 30년에 남는 것은 무엇이냐고 반문도 해 보건만,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것이 있겠지만, 허무하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슬퍼질 때도 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이 방법 이외에는 살아갈 수 없을까? 그렇지만 모든 사람 아니 모든 인간이 이렇게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나도 살기 위해서는 뛰고 날고 해서 남보다 훨씬 보람찬 삶을 영위해야 될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삶도 살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아니하고 항상 곁에 있다고 하던가? 등잔 밑이 어둡다


아버지는 평생을 독실한 불교도로 살아가셨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 결코 배타적이지 않으셨다. 성경의 구절이든 불가의 말씀이든, 인간의 영혼을 달래주는 진리라면 편견 없이 마음으로 받아들이셨던 분이다.


일기 속 "믿음은 나의 목자이시니라고 말하셨다지만 나의 믿음은 무엇이려는 지"라는 대목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불교도였던 젊은 아버지가 밤샘 근무의 그 적막한 교도소 안에서, 신을 찾고 인생의 참뜻을 물으며 홀로 쓸쓸함과 고독을 씹었을 뒷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다음 날에야 겨우 돌아올 수 있었던 격리된 공간. 그 속에서 아버지는 허무함과 슬픔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계셨다.


"꼭 이렇게 해야만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이러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시간을 돌려 2026년, 지금 나의 바카라상을 본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복잡한 리스크를 검토하며 하루의 피로와 바카라임감을 견뎌낸다. 세상은 변했고 일하는 도구도 달라졌지만, 42년 전 서른 무렵의 아버지가 마주했던 인간의 숙명은 지금의 나에게도 고스란히 흐르고 있다.


살기 위해 뛰고 날아야 하는 고단함 속에서도, 남보다 훨씬 보람찬 삶을 영위하기 위해 오늘을 버텨내는 것. 그리고 일기의 마지막 문장처럼, 그 안에서 결국 "행복은 항상 곁에 있다"는 사실을 믿어보는 것.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 역시 삶에 대한 답을 모른다. 빛바랜 일기장을 덮으며, 몇 십 년 후 장성한 나의 아들이 마흔을 넘어 내 글을 보며 42년 전 서른 무렵 청년이었던 할아버지와 마흔 무렵의 아버지도 같은 고민을 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내 글은 그걸로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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