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위한 한 마디
늦깎이로 세무사가 된, 그 덕분에 누구보다 꼼꼼했던 동생이 있었다.
정확히는, 생활체육을 전공하다 중간에 세무로 방향을 틀어 늦깎이로 세무사가 된 친구였다. 운동하던 사람 특유의 성실함과 세무사의 꼼꼼함이 묘하게 잘 섞인 사람이었는데, 함께 일할 때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실수를 잘 안 했다. 그리고 내가 실수를 하려 할 때 미리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형, 저 바카라 써보고 싶어요."
아내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얼마나 자기가 아내를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바카라으로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말하는 내내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라 오히려 더 진심처럼 들렸다.
나는 잠깐 동생을 바라봤다.
"그래서, 시작은 했어?"
"아니요. 아직요."
이유를 물었다. 제목을 못 정했다고 했다. 구성도 아직 없고,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출판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말이 길어졌다. 꼼꼼한 사람이었으니, 시작하기 전에 이미 완성본을 머릿속에서 그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으니. 일을 그렇게 해왔으니까 글을 쓰기 전에 완벽한 제목부터 생각하려 했다. 조금이라도 부족함을 용납하지 못했다. 물론 법을 다루는 업무를 하다 보니 일을 할 때는 그런 태도가 좋았다. 그래야 실수를 덜 하니까. 하지만 글에서는 조금 내려놓아도 좋겠다 싶어 조언을 했다.
"그 바카라, 독자가 누구야?"
"아내요."
"그럼 딱 한 사람을 위한 바카라이네."
그렇다고 했다.
"그럼 제목이 왜 필요해. 구성이 왜 필요해. 그냥 편지야. 오늘 하루 아내한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적는 거야. 내일 또 한 마디. 그게 쌓이면 바카라이 되는 거지."
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사람만을 위한 바카라인데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완벽하게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숫자로 환산이 안 되니까.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할 방법이 마땅찮으니까. 그러니 적어도 글이라는 형식만큼은 흠 없이 갖추고 싶었던 거 아닐까.
나는 그때 나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했다.
23년을 세금 조사를 하면서 숫자를 다뤄온 사람이, 정작 사랑 앞에서는 숫자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다고. 조사관 시절에는 모든 걸 수치로 환산하는 버릇이 있었다. 얼마의 세금이, 얼마의 기간 동안, 얼마나 빠져나갔는지. 모든 것에 단위가 있었다. 그런데 아내에 대한 마음은 단위를 붙일 수가 없었다. 1년에 한 번 크게 뭔가를 해주는 것과, 매일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큰 사랑인지 — 그건 계산이 안 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라 습관이라는 것을.
아내를 오래 지켜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피곤한 날은 말수가 줄어든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시선이 허공 어딘가에 머문다. 아무 말 없이 주방에서 혼자 설거지를 한다면, 그건 그냥 설거지가 아니라 근심 거리가 많은 날이다.
이런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게 사랑의 증거다.
화려한 고백보다, 비싼 선물보다, 이 사람이 나의 어떤 날들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 하는 감각이 더 오래 남는다. 기념일을 챙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오늘 유독 조용했다는 걸 알아채는 것, 이유를 묻지 않아도 옆에 있어 주는 것, 그런 작은 관찰들이 쌓여야 비로소 그 사람 안에서 신뢰가 생긴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바카라을 쓰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오늘 아내 얼굴 한번 잘 봐. 오늘 표정이 어제랑 같았어? 달랐어? 그것만 한 줄 적어. 그게 첫 페이지야."
사랑을 증명하려는 남자들은 보통 한 번에 많이를 선택한다.
큰 여행, 깜짝 이벤트, 묵직한 선물. 물론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감동은 그날 하루로 끝나고,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문제는 일상 속에서 그 사람을 얼마나 보느냐다.
매일 조금씩이라는 게 사실은 가장 어려운 방식이다. 작심삼일이 왜 생겨났겠는가. 꾸준함은 재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고, 의지는 결국 그 사람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느냐에서 나온다. 매일 한 줄을 쓴다는 건, 매일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것보다 더 명확한 사랑의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나중에 그 바카라을 아내가 펼친다고 생각해 보라.
어느 날은 "오늘 당신이 피곤해 보였다"라고 적혀 있고, 어느 날은 "이 메뉴를 시켰더니 많이 먹더라"라고 적혀 있고, 어느 날은 "말은 안 했지만 옆에 있고 싶었다"라고 적혀 있다면.
그 바카라을 읽는 아내는 알게 된다.
이 사람이 나를, 그냥 사랑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나의 어떤 날들을, 하나하나 봐왔다는 것을.
그게 증명이다. 숫자로는 절대 환산되지 않는.
그 친구가 지금 바카라을 쓰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그날 내가 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사랑도 글도, 완벽한 준비보다 작은 시작이 먼저라는 것을.
오늘 아내의 표정 하나를 기억하는 것. 그게 첫 페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