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 하고 안긴 바카라 17>(26-35)
라디오 <손석희의 12시>, 시사 전문가들이 즐비하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종종 문학 작가들이 나온다. 황정음과 박연준은 고정이다. 금요일마다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오래된 고전에서 오늘의 답을 찾습니다,라는 <오래된 대답> 코너를 맡고 있다. 오호라! 경사로다. 그들에게 감명을 준 고전들이 한 편씩 소개되는데 유익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두 사람의 바카라은 우연찮게도 내 서재에 나란히 붙어 있다. 그러니 여기에 애정이 더 간다.
이 정규 편성 외에도 신간을 낸 유명 작가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그것도 이틀 동안 2회에 걸쳐서 말이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북토크를 챙겨서 갈 정도가 아닌 나에게는 딱이다. 관심이 가는 작가가 생겼을 때, 나는 그들의 작품을 만나기 전에 그들의 에세이나 산문을 먼저 찾아서 읽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작품 속에 있는 작가의 말을 몇 번이고 읽는다.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통로가 생겨서 여간 기쁜 것이 아니다. 유튜브로 그 부분만 편집해서 올려주는 제작진의 노력 덕분에 언제든지 접속해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시사의 답이 어쩌면 문학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해서 앞으로 더 기대가 된다.
지난번에 만난 천명관에 이어 정지아도 여기에 나왔다. 때마침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 일지>(2022)를 오디오북으로 다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이 말이 유독 강하게 남는다. '젊은 날에는 단도 직입, 단칼 이런 거를 좋아했다면 나이가 드니까 쓰리쿠션이 제일 좋다. 이렇게 해야 베인 사람이 베인 줄도 모르고... 이게 바로 삶의 지혜 아닌가?' 손석희 선생도 웃음을 지으면서 당구 쳐 보셨냐고 묻자 구경만 했다고 한다.
그녀는 빨치산의 딸이다. 환갑을 넘은 정지아는 2011년 어머니 간병을 위해 과감하게 고향 구례로 귀향한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서. 1,2년 예상하고 갔다가 감사하게도 빨치산 어머니는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하시단다. 구례에 계속 사는 오직 하나의 이유다. 방송 중에도 바로 내려가서 어머니 저녁을 차려드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녀의 효심이 깊게 드러난다.
그런 정지아를 원래는 <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다시 바카라으로 읽은 후 그 첫 만남을 기록하려고 했다. 계획을 변경한다. 2회에 걸친 인터뷰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녀의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2023)로 바꾸었다.
모든 에피소드에 술이 등장한다. 그것도 다양한 이름의 술이. 삶에 체기가 있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술이 소화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정지아는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회고한다. 어찌 보면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일화들이 쌓여서 그녀의 소설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하나하나가 내게는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친애하는 블루라고 부른다. 건배를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가 좋아하는 술을 각자의 페이스대로! 그것을 술자리의 기본 원칙으로 여긴다. 블루 한 병, 던힐 라이트 한 보루면 행복해한다. 한때 춤바람도 났었다. 평소 싫어하는 사람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주사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나이 들어가면서 쓰리쿠션이 삶의 지혜 같다는 깨달음은 여기에서 온 것일까?) 친구를 사귀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고기를 잘 못 먹는 밥순이다......
이런 정지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추억 여럿이 맞물려 떠오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회를 처음 가서 맞은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를 했던 때, 밤샘을 하고 새벽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맞이한 둥근 고리 모양의 달무리가, 대학교 때 3박 4일로 30kg 이상의 배낭을 메고 서른여 명이 지리산을 등반했던 때, 마지막 날 하산한 후 어느 강가에서 캠 파이어를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우정을 다졌던 그들의 얼굴이, 대학교 때 지금은 사라져 버린 동방유량 창업주가 설립한 눌원 문화 재단에서 3년간 장학금을 받았던 그때, 매 학기마다 받았던 따뜻한 환대가 말이다.
정지아는 그녀가 마신 술만큼의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그녀의 소설 속 인물로 재창조되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터이다. 그러고 보니 극내향의 소설가 정지아에게 술은 필수템이다. 그녀만의 독특한 소설은 여기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한 작가의 에세이는 그를 온전히 드러내어 독자와 친숙하게 할 뿐만이라 그것을 읽는 독자의 추억까지도 길어 올리는 두레박 같다. 술과 담배를 좋아한다는 그녀가 100세 가까이 살아계시는 어머니처럼 건강하길, 오래도록 술로 빚은 소설을 계속 만들어가길, 한 사람의 팬으로서 이런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 헤리의 반려바카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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