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18>(26-36)
인생을 비유하는 단어들이 여럿 있다.
인생은 산과 같다. 태어나서부터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가야 한다. 나만 오르지 않는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그런 이들로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앞선 이를 제치고 싶고, 옆에 있는 이보다는 더 올라가고 싶고, 뒤에 오는 이에게 추월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그렇게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비교라는 열매가 어느덧 열리고, 그것을 따 먹으면서 극단의 이기심은 당연해진다.
정상이 어딘지도 모른 채 거기에 빨리 다다르기 위한 온갖 발버둥을 친다. 다 이르렀다는 정상에서는 내려갈 갈 말고는 없다. 그제야 그렇게 잘 만들어왔다던 관계망의 무용함을 깨우친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 혼자라도 좋다. 이 정상에서 유유히 오래 있고 싶다. 자의든 타의든 거기에서 서서히 또는 급하게 내려가야 한다. 나 홀로.
그렇게 내려가고 있는데 또 하나의 다른 산이 나타난다. 내 나이가 어때 서라며 또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고 나면 또 내려가야 한다. 내려갈 때 조심한다. 다치기라도 하면 이제 더 이상 산을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걸 반복하는 인생의 그 끝자락에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문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내세를 믿는 자는 그것을 문턱으로 여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그 앞에서 있는 힘껏 버티기도 한다. 그러다 이내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잔하다.
그 외에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도 하고, 계절에 비유되기도 한다. 욘 포세는 인생을 <아침 그리고 저녁>(2019)으로 풀었다. 그때 나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어린아이들도 이렇게 말한다. 나이에 따라 그 가속도는 더 붙는다고도, 요즈음 나도 그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빠른 것이 이 소설이다. 한 페이지만 넘기면 방금 태어났던 요하네스가 바로 노인이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한 적도 있다.
육십 고개를 앞두고 있는 정도의 내가 아직 인생을 이렇다 저렇다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지나온 나날보다 남은 시간이 훨씬 짧은 이 시점에서 그 단어가 나오면 내가 살아온 여정을 조금이라도 돌아다보게 된다. 회고하게 된다. 이러다 보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이런 허무를 다룬 이가 있다. 그는 소식의 <적벽부>에서 그 답을 찾아간다. '인생은 허무하다'로 시작한 그가 마침내 다다른 곳은 지극히 소박한 일상이다. 바로 '산바카라'이다. 철학자라면 뭐 대단한 해답을 내놓겠지 했는데 고작 '산바카라'이라니... 정말 고작일까? 그러고 보니 그의 발견은 이스라엘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던 솔로몬이 후배들에게 유언처럼 남긴 것과 그 결이 다르지 않다. 허무를 허무하게 허물어주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다. 바로 우리의 일상에 있다. 그렇게 거기에서 찾으라고 한 그는 바로 김영민 교수다.
그가 소설집을 세상에 내놓았단다. 그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동명이인의 다른 이라고 여겼다. 몇 번을 확인해 보니 그가 맞다. 이 엉뚱함은 뭐지? 철학자가 쓴 소설이라니. 그렇게 해서 그의 첫 소설집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2026)로 그를 내 생각보다는 이르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개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라는, 인간은 결국 슬롯적 동물이야. 슬롯적 동물이란 아부적 동물이라는, 모든 계급 투쟁은 성격 투쟁이라는, 홍콩 간다가 스톡홀름 간다가 되었다는,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외치는 동어 스님의, 삼천포가 한반도의 버뮤다 삼각지대가 되었다는, 나는 더 이상 바카라이 아니라 파일이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의 철학적 상상력에 세밀한 구체성까지 갖춘 것들이어서 독특하면서도 깊다.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 하나가 있다. 바로 <낙하 중에 하는 말들>이다. 다 잊어버려도 이것은 앞으로도 되새김질할 것이다. 인생 처음을 '낙하'라고 하는 그 전제가 충격적이고도 신선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축하해 주는 탄생의 자리가 최고층이라니, 그 아이에게 들려준 첫 마디가 '옥상층에서 출발합니다'라니. 해도 너무 한 거 아니야, 그걸 따질 틈이 없이 밑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그 아이를 따라가야 한다. 유년층, 소년층, 청년층, 그리고 장년층을 지날 때마다 들려주는 말들에 연신 공감을 하다가 어느새 나는 추락의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익숙해지고 만다.
그다음은 중년층이다. 마치 지금의 나한테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는다. 실제로 지상층까지 이제 하나만 남아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마침내 나도 그다음의 노년층에 접어들 것이다. 어쩌면 들어서 있는 줄도 모른다. 의사를 볼 일이 많아진다는, 그냥 내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만 한 쾌락이 없다고 하는 그 층에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지상뿐이다. 아무리 기를 쓰고 땅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도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생을 살면서 그렇게도 원했던 '삶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좋은 날일 수도 있다. 하나 죽음은 여전히 두렵다. 나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세를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러다 보니 또 허무와 공포가 밀려온다. 이렇게 약한 것이 인생이다. 여기에서는 선택이 중요하다. 어차피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다. 절망의 늪에 빠져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 것인가? 아니면 역으로 소중한 오늘을 감사하며 주위와 더불어 살 것인가? 나는 끊임없이 후자를 선택하려 한다. 땅에 떨어질 때까지. 허무를 허무하게 허물어버리는 삶을 지양하고 싶다. '의미에 굶주린 필멸자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김영민 교수의 말대로 소설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와 함께.
- 헤리의 반려바카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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