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같은) 재회 17>(26-32)
바카라을 읽으면서도 그다음 바카라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승 연애라도 하듯이 바카라에서 바카라으로 옮겨가던 그 시절에 말이다. 읽은 내용을 세 번은 말해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해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날 때 마치 내가 깨우친 것처럼 마구 나대기도 했다. 그것이 주변에 자기 자랑으로 비쳤는지도 모른 채.
온라인 게임 초년 시절 서울 사람들의 말투도, 단어도 전부 낯설었다. 이방인이 된 듯했고, 출퇴근 길은 그만큼 길고도 지루했다. 그러다가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마침내 그 탈출구로 찾은 것이 바카라 읽기였다.
바카라을 읽고 난 후에는 그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 기록을 위해 카페 하나를 불쑥 열었다. 2004년 4월 6일 네이버에 <바카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다음 해 나는 글로 남긴 바카라 소감들과 조금씩 늘어가는 카페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아서 <맛난 바카라 이야기>(2005)라는 바카라을 냈다.
그렇게 삶의 활력이 되었던 바카라 읽고 글 쓰는 일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음 바카라에 쓰일 것이라는 압박에 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전의 순순한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회의가 깊어지면서 한 두해 그러다가 단호히 글쓰기를 멈추었다. 나 자신에게도 공감을 주지 못하는 이런 글 따위라면서.
그렇게 기록 없는 독서로 이어진 세월이 15년이 넘어갈 즈음에 미셀 트루니에를 만나고, 일주일에 한 번 몇 자라도 적어보자는 다짐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기간이 무용하다고만 할 수 없다. 그 또한 나름 내 삶의 디딤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록 없는 독서는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쾌변의 즐거움을 점점 잃어가는 것이고, 변비나 구토 증세가 일상이 되어버리는 심각한 지경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소화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섭취한 큼직한 영양소를 우리 몸의 세포나 혈관이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고 분해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최종 분해된 작은 영양소들은 주로 소장의 융털을 통해 혈액과 림프관으로 흡수되어 온몸의 세포에 에너지원으로 공급된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요즘 젊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소화불량이 잦아들면서 이 의미를 더 크게 느끼고 있다.
기록은 바카라을 소화하는 것이다. 작가가 주는 문장들과 내 서사들이 잘게 부서져 지금을 살아가데 필요한 에너지원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번에 작사가 김이나를 다시 만나고 나서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그녀와의 첫 만남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끔 보게 된 작곡가 김이나는 처음에는 차도녀 같아 보였다. 웬걸, 의외로 생각이 깊고 따뜻하고 솔직한 반전의 면이 있는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그러다가 <보통의 언어들>(2020)이라는 바카라이 나온 것을 보고 곧바로 그녀와 첫 만남을 가졌다. 그때는 코로나가 온 세상을 혼동의 한가운데로 몰아붙일 때였다.
그렇게 첫 만남을 가진 것이 연이 되어 그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눈여겨보게 된다. 작년에는 별밤지기인 그녀가 시인 박준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주고받는 티키타카에 빠지기도 했다.
언젠가 그녀는 바카라을 내고 출판사의 마케팅 행사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시는 바카라을 내지 않을 것처럼 들려 팬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녀의 신간 소식이 들렸다. 무엇보다 반가운 마음으로 <일상 주의자의 감각>(2026)이라는 이번 신간으로 다시 만났다.
유명 작사가가 되고 별밤지기가 꿈이었던 것을 이루고, 이런저런 모습으로 연예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터이다. 그러하기에 그녀가 유명한 작사가로, 성공한 저작권자로, 별밤의 DJ로, TV 방송 패널로, 오디션의 심사위원으로 불러달라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텐데... 그녀는 이번 만남에서 자신을 고작(?) '일상 주의자'로 불러달라고 한다. 먼 훗날 사무치게 그리워할 날이 지금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기 때문이라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먼 훗날 노인이 된 어느 날, 내가 과거의 딱 하루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어느 한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면서 떠올린 그날이 혹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라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 그러고 나면 갑자기 오늘이 너무 찬란하고 사소한 내 주변의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일상 주의자인 김이나는 지금도 그녀의 세밀한 감각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자리의 이면에 깊게 드리워진 소소한 일상의 나날들에서 찬란을, 감사를 쉬지 않고 캐는 재미에 빠져 있다.
은퇴하면 시간 부자가 되는 것을 소망하면서 견뎌온 온라인 게임 생활이었다. 막상 그날을 맞았을 때 나는 그 사용법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랫동안 틀에 갇혀 살아왔기에 넉넉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간의 쓸모를 다시 알아가는 좌충우돌의 여정이었다. 이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로 나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지금이다. 그것을 바카라과 함께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그중 하나다. 무모하게 보이는 이 일이 먼 훗날 내 과거의 한때를 다시 떠올릴 때 소소한 일상의 추억 한 조각 선사해 줄 터이니 말이다.
- 헤리의 반려바카라 이야기
#헤리 #반려바카라이야기 #바카라을좋아하는사람 #바카라좋사 #바카라스타그램 #느림의독서 #반려바카라 #일상주의자의감각 #보통의언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