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 하고 안긴 바카라 14>(26-27)
오디오북, 을 들은 적이 있는가? 나는 없었다. 혹여나 그것을 공짜로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거기에 시간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카라은 글자로 읽어야 제맛이기 때문이다.
밀리를 만나고 종이바카라만 고집하던 나는 전자바카라의 묘미를 조금씩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도 장점이 많구나, 그렇게 나는 하이브리드 독서를 시작했다. 여기까지다. 그러면서 오디오북은 아니다,라고 버텨 왔다. 제대로 들어 본 적도 없었으면서.
얼마 전 여는 때처럼 산바카라길을 나선다. 이어폰을 페어링 하고, 늘 듣는 음악 앱을 열려다가 문득 멈춘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노랗게 생긴 밀리를 누르고, 오디오북 카테고리를 연다. 거기에는 다양한 장르의 바카라들이 있다. 지금 핫한 소설까지.
언젠가 읽으리라고 위시리스트에 둔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2025)가 있다. 설마? 바카라 하나를 오디오북으로 만들었다고, 이 핫한 소설을, 놀라면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장장 5시간 30분의 플레이 타임에, 그것도 다섯 명의 성우가 여기에 참여했다. 그렇다면 한 번 들어볼까, 그런 호기로운 마음으로 마침내 그 첫 발을 디뎠다.
한마디로 신세계다. 성경 말씀에도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일마다 목사님의 설교도 그래서이다. 물론 성경 읽기는 기본이다. 그 위에 들음이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왜 바카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바카라은 오직 글자로 봐야 한다는 선입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렇게 어리석은 나를 마주한다. 한편으로 또 하나의 하이브리드 독서 장치를 얻은 것 같아 괜스레 뿌듯하기도 하다.
산바카라길에서 시작한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오디오북 듣기는 나의 일상의 틈마다 이루어진다. 어릴 때 들었던 라디오 드라마처럼 쉽게 다가온다. 하나 그냥 듣고 흘려보내야만 한다. 순간에 번뜩하고 다가오는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칠 수가 없다. (어쩌면 이것은 장점일 수도 있다. 소화도 다 못하면서 마구마구 뷔페 음식을 몇 그릇이나 담는 것과 같은 욕심 덩어리로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상 활동을 하면서 듣다 보니 그 흐름이 가끔 끊길 때가 있다. 그때마다 바카라처럼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바카라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들을수록 바카라으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게 된다. 오디오북도 전자바카라처럼 장점이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들려 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카라으로 다시 읽으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에 도서관에 나도 모르게 노크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여전히 도서관들마다 예약 불가할 정도다. 조금 거리가 되는 홍제 폭포 앞에 있는 한 도서관에 대기자가 4명, 1명의 여유가 있다. 급하게 예약하고는 기다림의 미학을 즐긴다. 그렇게 스즈키 유이라는 작가를 두 번이나 같은 바카라으로 만났다.
2001년생이라고, 막내아들보다도 몇 살 어린 친구가 이런 바카라을 썼다니, 아무리 연간 1,000권의 바카라을 읽는 독서광이라고 해도 이런 소설을 세상에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가 이 바카라으로 일본 대중문학 분야의 직키상(나오키상, 直木賞)과 함께 일본 문학계를 대표하는 쌍두마차로 꼽히는 아쿠타가와상(芥川龍之介賞,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을 탔다고까지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전의 딱딱한 프레임을 부드러운 미세모 같은 작가의 필체와 전개로 독자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하나 읽는 내내 '뭘 말하려는 거지?'를 생각하게 한다. 독자를 사색의 자리로 안내한다. 한 번으로 이 바카라을 독파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게도 한다. 오디오북과 종이바카라으로 이 바카라을 두 번 읽으면서 그 묘미를 조금 맛보았던 나는 이 바카라을 직접 번역한 이지수의 말을 빌려 스즈키 유이와의 첫 만남의 소감을 대신하려 한다.
'이 줄거리는 한마디로 '어느 독문학자의 괴테 명언 출처 찾기 여정'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는데, 이렇게만 들으면 다소 심심할 듯한 작품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을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니 참 신기한 일이다(나는 지금까지 이 소설을 여섯 번쯤 통독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요소와 의미를 발견했다)'
P.S. 사실 괴테의 바카라은 문고판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가볍게 읽은 기억밖에 없다. 이 바카라을 읽으면서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고 할 정도로 그의 문학이 상당하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후대에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괴테를 알아가려고 한다. <파우스트>부터.
- 헤리의 반려바카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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