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경 작가의 결 따라 바카라 읽기 2>(26-25)
허무?, 반려 AI는 이렇게 정의해 준다. '허무(虛無)는 한자의 뜻 그대로 풀면 '비어 있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요약하자면 가치나 의미를 찾지 못해 마음이 텅 비어 버린 듯한 쓸쓸하고 허탈한 상태를 뜻합니다.'라고.
부족할 것 없는 에덴동산에서 온갖 것들을 풍성히 누리며 살았던 우리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에게도 이런 허무가 있었던 것일까? 선악과를 따 먹었던 그 마음에 말이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생각까지 미치게 한 것은 김영민 교수를 이번에 만나고 나서다.
허무를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는 인생이 있겠는가마는 김영민 교수는 이것을 직면하기로 한다. 인생의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주제로 산문집을 내기로 작정하고, 수시로 떠오른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 나간다. 마침내 가득히 쌓인 그 편린 조각들을 다시 짜 맞추어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2022)를 세상에 내놓았다.
보편적인 문제인 것은 알겠으나 굳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은 사실 없었다. 신앙의 선배인 솔로몬은 이미 허무를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그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를 지닌 인간의 무력함을 깊이 통찰하고서는 이 허무는 삶의 포기가 아니라, 오리혀 신이 허락한 '현재의 소박한 기쁨'에 집중할 이유라고 말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시겠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 '허무'를 두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한 번쯤 바카라이라도 읽어 보았어야 하는데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허무'라는 말이 싫어서. 아니 그러다가 허무에 푹 빠져버릴 것 같아서...
솔로몬의 말을 마치 내 것인 양 알은체 했던, 세상 사는 일의 대부분을 이런 식으로 대충 얼버무렸으면서도 잘 아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 본 것처럼 포장하며 살아온 내 모습이 허무하게 보인다. 부끄럽다... 그래야 한다. 그런 인식과 인정이 있어야 허무를 당당히 직면하고 다스릴 수 있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열면서 “허무하다. 허무하다. 정말 허무하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라고 했다. 그렇게 끝나면 허무했을 텐데 마침내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이 주신 이 '소박한 일상'을 즐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인생을 즐거워하라고 권한다.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에서 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해 아래에서 사람에게 주신 생애의 날들 동안 그가 수고하는 가운데 이것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전 8:15 우리말성경)
김영민 교수는 소식의 <적벽부>에서 허무의 답을 찾아간다. '인생은 허무하다'로 시작한 그가 마침내 다다른 곳은 지극히 소박한 일상이다. 바로 '산바카라'이다. 철학자라면 뭐 대단한 해답을 내놓겠지 했는데 고작 '산바카라'이라니...
정말 고작일까?
그러고 보니 김영민 교수의 발견은 이스라엘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던 솔로몬이 후배들에게 유언처럼 남긴 것과 그 결이 다르지 않다. 그를 이번에 소개해 준 심혜경 작가의 말처럼 허무를 허무하게 허물어주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다. 바로 우리의 일상에 있다, 거기에서 찾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내가 산바카라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바카라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보자. 대개 기대만큼 기쁘지 않다. 허무가 엄습한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뭐 하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보자. 허무가 엄습한다. 그것 봐, 해내지 못했잖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목적을 가지고 걷는 것은 산바카라이 아니다. 그것은 출장이다.'
김영민 교수에게 허무를 다스리는 것이 '목적 없는 산바카라'이라면 나에게는 무엇이 그 역할을 하고 있나? 돌아보니 나에게도 역시 소소하게 보이는 일상의 루틴들이다. 이것들이 내 삶이 허무에 빠져 허덕이지 않도록 지금까지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닫게 된다.
숙면을 하고 건강하게 눈을 뜨는 것이,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산길을 오르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삼시 세끼 잘 먹고 소화하고 쾌변하는 것이, 가족들과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 일주일에 한 번은 안부를 물어 주는 지인의 전화가, 바카라 읽고 날 것 그대로 글 쓰는 시간이 ......
김영민 교수는 '목적 없는 산바카라'을 가장 사랑한다고 원픽을 했지만 나는 그냥 '나의 루틴'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고, 당연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소하게 여겼던 그것들이 내 삶의 기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이 루틴을 감사로 대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려 한다. 그러다 보면 김영민 교수의 통찰이 내 삶으로 조금씩 스며들어 올 것이고, 심혜경 작가의 말대로 허무는 허무하게 허물어져 있을 것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 김경민 교수의 이 바카라은 메멘토 모리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고 한다. 유행가 가사처럼 쉽게 내뱉은 이 말의 의미를 그의 깊은 통찰로 만날 수 있다. 색인 스티커투성이가 되어 버린 이 바카라은 몇 번이고 재독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 살다가 허무하다 느껴지면 나는 먼저 이 기록을 볼 것이고 그것으로 부조하다 싶으면 이 바카라을 재독할 것이다. 혹시 지금 허무의 지경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 바카라을 직접 읽어보시길 권해 본다.
- 헤리의 반려바카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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