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착 중입니다.>
14화. 연습 그리고 친구

by청아

고등학교

포기하지 않는 연습, 그리고 친구


고등학교에 들어서며 미나는 더 이상 자기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아주 성숙한 선택이었습니다.

빨라지지 않겠다는 선택, 대신 끝까지 가겠다는 선택.

나는 그 선택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안도에 가까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이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고도 자기 길을 씩씩하게 갈 수 있겠구나' 하고요.

미나는 자기 속도를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았고,

대신 그 속도를 자연스럽게 자기 것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차이가, 이 시기 전체를 완전히 다르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았습니다.

같이 앉아 있는 시간이 조금씩 쌓였고, 굳이 함께 웃지 않아도 편안하게 같이 있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갔습니다. 어느 주말엔 친구 두 명이 집에 놀러 와 미나 방에서 몇 시간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갔습니다. 그 웃음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올 때,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몰래 미소 지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예전의 미나를 떠올렸습니다.

조용히 부름을 기다리던 그 아이가, 이제는 말이 많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편안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작지 않은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말이 많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 먼저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는 관계.

미나는 그런 관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만들어갔습니다.


나는 그 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 정도면 정말 충분하고도 넘친다.'

슬롯성이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무르는 힘이라는 걸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여유로워졌습니다.

수업을 잘 따라가고, 과제를 스스로 해내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그 시간을 지켰습니다.

시험 기간엔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오기도 했고, 시험이 끝난 날엔 다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느라 저녁 늦게 신나게 귀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평범한 날들이 나에게는 하나하나 눈부시게 다가왔습니다.


누군가는 그걸 그냥 '보통'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수많은 정성과 연습 끝에, 아주 단단하게 완성된 하루하루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보통'이 얼마나 긴 시간과 사랑을 거쳐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인지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른둥이였다는 사실은 더 이상 굳이 설명이 필요한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미나는 그저 자기만의 충실한 일상을 살고 있었고, 그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특별하고 단단한 결실이었습니다. 나는 그 단단함을 보며 조금씩, 편안한 마음으로 손을 놓는 연습을 해나갔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늘 온 힘을 다해 애쓰는 게 아니라,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다정한 습관이라는 걸 미나는 몸으로 배워갔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도망치지 않았고, 어색한 순간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 힘이 친구를 만들었고, 세상을 배우게 했고, 자기만의 자리를 조금씩 넓혀주었습니다.


나는 이 시기부터 미나의 삶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 완전히 자리를 옮겨왔습니다.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습니다.

그 변화가 처음엔 조금 낯설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나는 이제 그 말을 조심스럽게가 아니라, 확신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른둥이들도 자랍니다.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확실하게.

조금 늦게 시작했을 뿐,

끝내 씩씩하게 도착합니다.


미나는 그 사실을 오늘 하루하루의 삶으로 증명하고 있었고,

나는 그 하루하루를 일기장 가득 기쁨으로 기록해나갔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이란 어떤 기준에 맞춘 삶이 아니라,

스스로 씩씩하게 유지해나가는 삶이었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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