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착 중입니다.>
17화. 스펙보다 중요한 것

드디어 취업

by청아

취업은 갑작스러운 축포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주 조용한 확인처럼 왔습니다.

전화 한 통, 짧은 안내, 그리고 "함께 일해봅시다"라는 담백한 문장.

미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환호성을 지르거나 눈물을 터뜨리는 대신, 기쁨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현실의 무게를 먼저 가늠해보는 표정이었습니다. 그건 들뜬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자기 삶을 바카라임지기로 결심한 어른의 얼굴이었습니다.

잠시 후 미나는 나를 향해 돌아서더니, 그제야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나 합격했어!"

나는 그 자리에서 미나를 와락 끌어안았고,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작은 축하 저녁을 먹었습니다.

남편은 미나가 좋아하는 갈비를 굽고, 나는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우리 미나, 드디어 슬롯인이네."

남편의 그 한마디에 미나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밥그릇만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소박한 저녁 식탁이, 나에게는 세상 어떤 화려한 파티보다 눈부셨습니다.


첫 출근 날, 미나는 시간을 아주 넉넉히 잡았습니다.

빠르지 않게, 그러나 절대 늦지 않게. 세상의 시계보다 조금 먼저 움직여야 자신의 호흡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몸으로 이미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두름이 아니라, 자기 속도를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의 경건한 준비였습니다.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미나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주었고, 현관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습니다. "잘하고 와, 우리 딸."

미나는 뒤돌아 씩 웃어 보이고는 씩씩하게 걸어나갔습니다.


일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배워야 할 것들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궁금한 게 많아 질문도 잦았습니다.

하지만 미나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건 물었고, 헷갈리는 건 꼼꼼히 적었습니다.

어제 틀린 것은 오늘 다시 시도했습니다.

남들이 '센스'라고 부르는 것들을, 미나는 '성실'이라는 이름으로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그 태도는 이력서의 칸에는 다 담지 못한 것이었지만, 일터에서는 어떤 자격증보다 뚜렷하게 빛났습니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꾸준했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나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스펙보다 정말 중요한 건, 흔들리는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며 자기만의 속도를 관리해내는 힘이라는 것을요.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는 늘 자신을 세심하게 조절하며 살아왔습니다.

작은 몸을, 남들과 다른 시간을, 한정된 에너지를.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씩씩하게 버텨온 그 조절의 힘이, 이제는 일터에서 미나만의 고유하고 든든한 강점이 되었습니다.


미나는 일을 통해 자기 자리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넓혀갔습니다.

말수가 많지 않아도 약속은 반드시 지켰고, 앞서 나서지 않아도 맡은 몫은 묵묵히 끝까지 해냈습니다.

몇 달 뒤, 팀장님이 미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미나 씨는 있으면 마음이 놓여요. 뭘 맡겨도 끝까지 해내니까."

그 말을 전해 듣던 날, 미나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어느덧 미나를 '안정적인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어떤 파도가 쳐도 제자리를 지키는 등대 같다는 그 말이, 나에게는 세상 어떤 찬사보다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취업은 도착지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미나가 이 거대한 슬롯 속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편안하게 숨 쉬며 살아도 된다는 가장 다정한 증명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미나는 무심한 듯 말했습니다.

"엄마, 일이 생각보다 재밌어."

그 말속에는 자랑도 과장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 삶의 운전대를 스스로 잡았다는 담담하고 단단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늦었다고 해서 틀린 길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모아야 비로소 시작되는 하루라는 것을, 미나는 온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눈을 뜨고 출근 준비를 하는 그 평범한 시간조차, 미나는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 하나를 끝내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마다,

'오늘도 잘 해냈다'

고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씩씩하게 건너갔습니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조금 더 천천히 자라고, 조금 더 꼼꼼히 확인하며 살아온 그 시간들은 결코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자기 삶을 오래도록 붙잡고 끝까지 바카라임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아주 값진 과정이었습니다.


미나는 여전히 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압니다.

그 사실이야말로 어떤 속도보다도 더 멀리, 더 오래 갈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요.




미나의 발걸음은 여전히 느릿할지 몰라도,

이제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일은 사람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의 태도가,

그 일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조용히 증명해줄 뿐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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