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착 중입니다.>
18화. 일상이 된 평범함

연애

by청아

연애는 큰 사건처럼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소개도, 요란한 선언도 없이 그저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고, 어색했던 공기 위로 말이 편해지는 시간이 겹겹이 쌓였을 뿐입니다. 미나는 그 관계를 구태여 설명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번엔 달랐습니다. 예전의 미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늘 긴 문장의 배경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속도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조건들을, 자신을 다루는 법이 담긴 두꺼운 설명서를. 상대에게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 혹은 오해받지 않기 위해 아이는 늘 자기 자신을 먼저 변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같이 걷고, 같이 먹고, 무해한 하루를 나누는 일. 특별한 말 없이도 서로의 서툰 리듬을 기꺼이 기다려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습니다.


어느 주말, 미나가 그 사람을 처음 집에 데려왔습니다.

현관에 들어서며 조금 긴장한 얼굴로 인사하는 청년을 보며, 나는 저녁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했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는 동안, 그는 미나가 좋아하는 나물 반찬을 알아채고 슬쩍 더 덜어주었습니다.

그 작은 배려가 나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둘이 나란히 설거지를 하며 소소하게 웃는 뒷모습을, 나는 거실에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미나는 연애를 통해 대단히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설명되지 않은 나'로 있어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애 첫 확인을 받았을 뿐입니다.

퇴근 후 길가에서 만나 밥을 먹고, 각자의 하루를 짧게 이야기하고, 내일의 안부를 미리 약속하는 시간. 그 밋밋할 정도로 평범한 풍경이 나는 유난히 좋았습니다.

그 평범함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가닿고 싶었던 비범한 목적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는 삶의 많은 순간을 연습하며 살아왔습니다.

숨 쉬는 법부터 걷는 법,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는 법까지. 치열하게 연습해온 아이답게 미나는 연애 앞에서도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기대하지 않고, 억지로 숨기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앞질러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그 담백한 태도가 관계를 뿌리 깊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미나는 툭 던지듯 말했습니다.

"엄마, 이 사람 앞에서는 그냥 나야."

그 말은 연애에 대한 수줍은 고백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온전히 긍정하게 된 사람의 단단한 보고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그제야 오랜 긴장을 조용히 내려놓고 안심했습니다.

이 아이는 이제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일상'이 되었구나.


몇 주 뒤 생일날, 그 청년이 작은 케이크와 함께 손편지를 건넸다는 이야기를 미나가 수줍게 들려주었습니다. "편지에 뭐라고 써 있었는지는 안 가르쳐줄 거야."

그렇게 웃으며 말하는 미나의 얼굴이 얼마나 환하던지, 나는 그 표정 하나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연애는 미나의 삶에 거창한 목표를 더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루하루 무심히 흘러가던 일상을 조금 더 온기 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눌러왔던 '정상생활'이라는 강박 같은 단어를, 이제 조용히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기준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지속 가능한 평범함이 되어주는 자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미나는 오늘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사랑하는 누군가와 저녁을 나누고, 다시 내일의 햇살을 준비합니다. 그 다정한 반복이 가끔 기적처럼 느껴져 코끝이 찡해질 때가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미나가 온몸으로 살아낸 결과이며, 마땅히 도착해야 했을 당연하고도 소중한 일상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삶을 가장 멀리 데려갑니다.


사랑은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걷게 하는 힘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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