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결혼식 날짜가 적힌 종이를 앞에 두었을 때, 나는 한참을 그 글자들만 들여다보았습니다.
기쁘다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아주 벅차고 깊은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아이를 시집보낸다는 애틋함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이제 이 아이가 자기만의 삶이라는 거대한 숲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여보, 우리 미나가…"
남편이 말을 잇지 못하자,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슬픔이 아니라, 오래 기다려온 벅찬 순간이 마침내 도착했다는 것에 대한 감격이었습니다.
결혼 준비가 시작되자 미나는 몰라보게 단단해졌습니다.
예식장을 정하고, 드레스의 결을 고르고, 초대할 이들의 이름을 적어 내려가는 모든 과정의 주인은 내가 아닌 미나였습니다.
나는 그저 곁에서 묻는 말에 조심스레 의견을 보탤 뿐, 결코 앞서 걷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 길은 내가 안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내 손을 잡고 걷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에 지나왔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첩장 문구를 함께 정하던 날, 미나는 노트북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엄마, 이 문장 어때?"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조금 다른 속도로, 그러나 씩씩하게 걸어와 이제 함께 걷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으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미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들을 이렇게 근사하게 품고 있었습니다.
드레스를 고르던 날, 눈부신 조명 아래 거울 앞에 선 미나를 보며 나는 문득 숨을 멈췄습니다.
하얀 베일 아래 비치는 아이의 옆모습을 보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아, 이제 정말 이 아이를 다 키웠구나.'
부모에게 '키운다'는 말은 밥을 지어 먹이고 옷을 입히는 물리적인 돌봄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무게를 온전히 자신의 어깨로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거울 속의 미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보호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삶의 한복판에서, 차분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미래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예식장 리허설이 있던 날, 텅 빈 버진로드를 함께 걷던 미나가 내 손을 가만히 쥐었습니다.
"엄마, 나 괜찮아."
그건 나를 안심시키려는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겠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굳건한 '보고'였습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끄덕임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미나는 특별히 애틋한 표정을 짓지도, 눈물을 훔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나를 바라보며 아주 짧고 환하게, 단 한 번 웃어주었습니다.
그 찰나의 미소 속에 담긴 평온함을 보며 나는 확신했습니다.
이 아이는 이제 나라는 울타리 없이도, 세상의 어떤 바람 속에서도 자기만의 삶을 견디고 또 피워내겠구나.
식이 끝난 뒤, 하객들이 하나둘 빠져나간 예식장 한쪽에서 미나가 웨딩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고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엄마, 고마워."
짧은 그 한마디에, 지난 시간의 모든 장면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미나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순간 찾아온 감정은 환희보다는 '완성'에 가까웠습니다.
오랫동안 쥐고 있던 고삐를 비로소 편안하게 놓아주어도 되는 날.
나는 딸을 떠나보내는 슬픈 엄마가 아니라, 한 생명을 온전한 독립체로 길러낸 '다 키운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에서 미나를 향한 불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뜨거운 응원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잠 못 이루게 하던 걱정은 더 이상 머물지 않습니다.
아이를 다 키웠다고 느끼는 순간은 곁을 떠나는 날이 아니라,
아이를 완전히 믿게 되는 날이라는 것을 그제야 배웠기 때문입니다.
미나는 결혼을 했고, 나는 인생의 큰 역할 하나를 마쳤습니다.
그것은 서글픈 끝이 아니었습니다.
내 생의 가장 아름답고 정성스러웠던 한 장면이,
아주 근사하게 마무리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