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도착 중입니다.>
최종화. 에필로그

미나의 편지

by청아

미나가 엄마에게!



엄마에게,


결혼식 날짜를 받아두고 마음이 가장 먼저 머문 곳은 화려한 예식장도, 눈부신 드레스 앞도 아니었어.

이상하게도 자꾸만 바카라상 앞에 앉아 펜을 쥐게 되더라.

엄마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문장들이 내 안에서 오랫동안 발효되고 있었나 봐.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왔고, 그만큼 조금 더 느리게 자랐지.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내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걷고 있다는 걸.

하지만 그 사실을 나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몸으로 체감했던 건 아마 엄마였을 거야.


어릴 적의 나는 세상이 왜 이렇게 다양한 속도로 굴러가는지, 나는 왜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어.

다만, 내 시선이 닿는 곳마다, 내가 비틀거리는 골목 끝마다 항상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의 온기가 있다는 것만은 선명히 느꼈어. 그 다정한 그림자가 엄마였다는 걸,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았어.


얼마 전 우연히 예전 사진첩을 넘기다가, 인큐베이터 옆에서 웃고 있는 젊은 시절 엄마 사진을 봤어.

그 사진 속 엄마는 지쳐 보이면서도, 동시에 세상 누구보다 단단해 보였어.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처음으로 그 시절의 엄마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어.


엄마는 나를 대신해 세상에 수많은 말을 건넸지.

서툰 나를 위해 끝없는 설명을 보탰고, 내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까지 기꺼이 자신의 생을 멈춰 세우며 기다려주었어.

그 때는 몰랐어. 엄마가 왜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치열하게 애쓰고 있었는지.

이제야 보여. 엄마는 단 한 번도 나를 억지로 앞당기려 채찍질하지 않았고, 나를 다른 누군가로 바꾸려 하지 않았어. 무엇보다, 나를 포기하지 않았지.

엄마는 그저 내가 나만의 속도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그 '시간' 자체를 온 마음으로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었어.


기억나? 초등학교 때 내가 발표를 못 하고 자리에 앉아 속상해하던 날,

엄마가 저녁에 나를 무릎에 앉히고 이렇게 말해줬잖아.

"미나야, 오늘 말은 못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지? 그거면 충분해."

그 말 한마디가 그날 밤 내내 나를 감싸주었어.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나는 지금도 하나씩 떠올리며 놀라곤 해.


엄마, 나는 지금 오롯이 내 삶을 살고 있어.

매일 아침 일터로 향하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며, 이제 곧 한 남자의 아내가 되려 해. 남들이 말하는 대단한 성공은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 일상이 기적 같고 충분히 벅차.

이 '충분함'이라는 선물은 사실 엄마가 20여 년에 걸쳐 정성껏 포장해 내게 건네준 거야.

엄마가 조급해하지 않았기에 나는 나를 다그치지 않을 수 있었고, 엄마가 세상을 향해 나를 설명해주었기에 나는 마침내 내 목소리로 세상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어.

가끔 사람들이 내게 "참 곧게 잘 컸다"라고 말해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대답해.

"나는 혼자 자라지 않았어요. 엄마의 기다림을 먹고 자랐습니다."


엄마, 이제 나는 나만의 가정을 꾸리려 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엄마가 내게 가르쳐준 그 방식 그대로 사랑할 거니까.

서두르지 않고, 무리하게 애쓰지 않으며,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온기로 전해지는 그런 따뜻한 사랑 말이야.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된다면, 그 아이에게도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너의 속도로 와줘서 고마워."


결혼식 날, 화장을 곱게 한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면 목이 메어 많은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아.

그래서 이 편지에 미리 적어둘게.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끝까지 나의 속도를 믿어줘서 고마워.

나는 세상에 늦게 도착한 게 아니야.

엄마라는 든든한 길잡이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도착한 거야.


그리고 엄마, 나는 여전히 도착 중이야.

멈추지 않고, 엄마가 보여준 그 사랑의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갈게.


사랑하는 엄마의 딸,

미나 올림.







아이의 삶은 부모의 기다림을 닮아간다.



"딸아이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펜을 놓는다.

이제 내 아이는 나의 문장이 아니라, 자신만의 문장으로 삶을 기록해 나갈 것이다.

그것으로 나의 연재는 충분히 행복한 결말이다."


그동안 '아직, 도착 중입니다'를 읽어주시고,

미나와 엄마의 걸음에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 여정이 외롭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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