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우연히 본 다큐 영상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아있다. 어느 노인이 요양원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주변에서 "방 좋아요?" 물어도 대충 응, 응 답하던 노인은 잠시 후 단발머리의 다른 노인이 이제 가겠다고 일어서자 입을 삐죽였다. 가겠다고 일어난 노인은 79세, 처음 등장한 노인의 딸이다. 엄마 노인은 계속 딸을 쳐다보지 못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가겠어. 정말 웃기네." 딸은 단호하게 말하고 방을 나섰다. 그러나 그렇게 단호했던 딸도 요양원 밖에서 나와 바닥에 한참 앉아 있었다. 고개 숙인 딸의 얼굴 옆으로 하얀 머리칼이 힘없이 떨어졌다.
인간은 이제 늙은 채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영상의 댓글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제가 아는 집은 100세 노인이 돌아가시니까 7,80대 자식들이 요양원에서 기저귀 차고 나와서 상주를 서더라고요.' 사실 여부를 떠나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처음엔 보고 피식 웃었다가 곧 한참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어쩌면 먼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노후 대비일 수도 있다. 지금 나는 30대로 '늙었다'는 말을 농담으로 할 수 있는 젊은이다. 하지만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은 우리 부모 세대와 조부모 세대가 이미 겪고 있는 현실이다. 노쇠한 자녀가 더 노쇠한 부모를 돌보는 모습은 마치 구운 지 오래된 페이스트리 빵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사랑과 미움, 애틋함과 지긋지긋함 같은 수많은 감정 층위가 켜켜이 쌓여있다. 물론 나 역시 시간 흐름을 따라 윗 세대 사람들과 감정의 층을 쌓아간다. 노인의 애환이 마냥 내 일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