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의 간섭
어린이집 방학이 끝났다. 내 방학도 아닌데 여러모로 언제 끝날지 마음 졸이는 시간들이었다. 다만 어릴 적과 차이가 있다면 끝나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좀 서운했던 것 같다. 오늘은 엄마랑 놀러 가는 건지, 아빠랑 가는 건지 묻더니 어린이집에 간다니까 잠시 시무룩해했다. 애써 올라가는 입꼬리를 잡아 내렸다. 그리고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게 설레지 않냐면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다행히 집을 나서는 발걸음들은 가벼워 보였다. 아이들은 아마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따로 보낸 시간에 대해 이야기 나눴을 것이다. 휴가 중에 뭘 했다며 자랑도 하고, 힘들었다며 엄살도 부렸을 테다. 아니면 그냥 마치 어제도 만난 듯 잠시 끊어졌던 우정을 이어갈 수도 있겠다. 그 모든 대화까지가 휴가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온라인 게임 동료들과 오랜만에 만나 그런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왜 이 글의 제목에는 변명이 들어갔는가. 사실 그것은 아이들의 방학을 핑계로 흐트러진 일상에 대해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약속된 시간에 글을 쓰지 못했다. 회사에도 오랫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평소라면 평일에는 가지 않았을 물놀이터를 매일 가고, 박물관을 가거나 공연도 보러 다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놀다 보니 요일도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런 쉼 자체도 삶이라지만 부모가 되어보니 좀 다르다. 아이들을 위해 나의 일상을 억지로 멈춰서 만든 휴식이었다.
아니, 사실 모든 건 핑계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일상을 유지할 방법은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스스로 자제력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자제력이라는 게 얼마나 얄팍한 장치인가 다시 한 문단씩 쓰고 싶지만 참는다. 여기서나마 자제력을 발휘해 본다. 대신 휴가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변명을 하고 들었는지 돌이켜봤다. 특히 부모님과의 교류가 기억에 남는다.
방학을 핑계로 친정집에 며칠 가서 부모님과 부대끼다 보니,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생각났다. 멀리서 바라볼 땐 희미했던 소소한 불편함과 결핍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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