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을 동경하는 마음

골드버그 장치

by미지의 세계

과학 원리를 설명할 때 꼭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관람객이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다. 최근에는 자외선 해설을 하고 있는데 말미에 자외선 빛이 나오는 펜을 사용해 비밀 편지를 쓰도록 하고 있다. 편지의 수신인과 발신인은 늘 달라지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특히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 관람객 상당수가 쓰는 말은 거의 100% 이것이다.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서툰 글씨로 쓴 마음이 자외선 빛을 받는 순간, 한걸음 뒤에서 아이들 체험만 시키던 어른 관람객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햇빛만큼이나 따뜻한 시간이다.



왜 우리는 사랑을 고백할 때 기꺼이 비효율을 감수할까. 사실 효율적으로 하려면 굳이 글을 쓰거나 꽃을 준비하거나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다. 그냥 말로 해도 되고, 얼굴 보기 어렵다면 문자나 전화를 해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효율적인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마음 전달이라는 목표를 향해, 얼마나 정성스럽게 돌아가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가 보이는 사랑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비효율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례는 많다. 최근에는 어떤 관람객이 울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주말이어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겨우 막 쉬러 가려던 참이었다.


"얘가 아빠를 잃어버렸대요. 혼자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와서 울고 있었어요."


다행히 그 아이는 가족들과 과학관에 자주 와서 낯이 익었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이 그를 데리고 온 관람객은 저 멀리 자신의 가족들 곁으로 돌아갔다. 관람객이 직원을 찾아오는 동안 자신의 가족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아무튼 감사 인사를 드리고 안내방송을 위해 중앙 안내데스크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이름과 나이 등을 계속 물었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래대로라면 미아는 데스크에 있는 동료에게 맡기고 가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실내 공간 안에서 보호자를 찾는 것이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있는 우리 아이 생각도 났다. 아이의 보호자 얼굴을 내가 알고 있으니 남아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10분가량 있었나 보다. 아이와 직접 1층을 돌아봐야 하나 하는데 문득 저 멀리서 아이의 보호자가 보였다.


"아버님! 아버님! 여기예요!"


아이가 아버지에게 안겨 엉엉 우는 것을 보고 다시 근무하는 위치로 올라갔다. 쉬는 시간은 끝나있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그저 직원으로서, 바카라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하지만 직원도 발견 못했던 아이를 굳이 직원에게 데려다준 어느 관람객의 시간과 마음이 크게 느껴졌다. 우는 아이에게 마음 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 아이들도 데리고 온 상황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직원을 찾아와 조치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 돌아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효율과 비효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자니 문득 그게 명확히 구분되는 것인가 돌아보게 된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바카라을 읽어줄 때 종종 내용을 녹음한다. 그러고는 다음번에 아이가 같은 바카라을 들고 오면 녹음된 걸 튼다. 아이들이 매번 같은 바카라을 들고 오는데 목도 아프고, 자기도 가끔 다른 할 일이 있어 읽어주지 못할 때가 많으니 녹음하면 효율적이란다.


'아니, 실제로 읽어주는 거랑 녹음된 거 듣는 거랑 같나. 그때그때 읽어주고 아이들 말에 반응해 줘야 더 좋을 텐데... '


처음에는 아이와 눈을 맞추는 시간을 기계가 대신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 그러나 마음을 바꿨다. 얼핏 효율만 따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효율 역시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집안일이 밀렸을 때 아이들이 바카라을 읽어달라고 하면 "엄마 지금 이거하고 있어서, 다 하고 읽어줄게." 라며 아이들의 요구를 뒤로 미룬다. 왜냐하면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의 바카라을 읽어준다음 다시 돌아와 멈췄던 일을 하는 것보단 "안돼"라고 말하는 게 훨씬 쉽다. 하지만 남편은 그럴 때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가서 녹음된 걸 틀어준다. 물론 아이들이 직접 읽어달라고 조를 때는 나처럼 똑같이 하지만 말이다. 결국 사람은 언제나 효율을 추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정도의 효율은 원하지 않는다.​


과학관에 가면 거의 대부분 볼 수 있는 전시물 중 하나가 '골드버그 장치'이다. 가장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하는 장치이다. 불을 켜기 위해 공을 굴리고, 종을 울리기 위해 수십 개의 과정을 거친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 비효율을 좋아한다. 공이 굴러가는 걸 보면서 다음엔 어떤 일이 생길지, 무엇이 변할지 기대하게 된다. 사랑도 그런 거 아닐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


우리는 거대한 골드버그를 만들 듯 사랑한다.​ 천천히. 시간과 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서.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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