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발견한 것

자외선

by미지의 세계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새로 알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들이 있다. 그런데 특히 좋지 못한 면을 발견할 때는 그때의 상황과 내 행동을 여러 번 곱씹게 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못난 면을 보였다는 죄바카라감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이를 씻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가 씻기 싫다고 한다. 이성적인 엄마라면 '씻어야 하는 거야. 땀도 흘리고 병균들도 많이 붙어있으니까. 이리 와. 엄마 기다릴 거야. 우리 씻고 밥 먹자.' 하며 기다릴 것이다. 이때 감정이 섞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 단호하지만 다정한 느낌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고, 나는 너를 도울 뿐이다'라는 태도를 갖춘 채 기다려야 한다. 만약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면 타협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거 5분만 가지고 놀고 씻자. 엄마랑 약속해.' 그래서 아이가 약속을 지키면 칭찬해 주면 된다. 행복하고 우아하게 샤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이렇다. 일단 아이를 협박한다. 당장 씻지 않으면 밖에서 묻혀 온 각종 병균들이 몸 안에 들어갈 것처럼 엄포를 놓는다.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유혹한다. 사실 요즘은 이런 잔꾀들이 통하지 않을 때도 많다. 아이들이 그만큼 큰 탓이다. 그래서 여러 시도를 했는데도 엄마 말을 못 들은 척하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를 제지하기 시작한다. 우선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뺏어든다. 이 과정에서 이미 짜증이 올라와 있지만 두 번 정도는 참는다. 그리고 결국 소리를 친다.


"빨리 와!"


..... 풀어서 쓰고 보니 더 못된 엄마인 것 같다. 아무튼 아직 아이들이 어려선지 소리까지 지르고 나면 대부분 빠르게 달려온다. 하지만 꼭 나중에, 할 말 다 하는 둘째가 소곤소곤 귓가에 말한다.


"아까, 엄마가 소리쳐서 무서웠어. 마음이 슬펐어."



다른 사람에게 절대 보이지 않을 모습을 보이는 건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남편과 다툴 때면 과거 일까지 끌어올 때도 있다. 유치하고 치사한 과정이다. 그렇게 다투고 나면 서로 한참을 씩씩대며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하루는 한참 투닥대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서 결국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나 여보 한 대만 쳐도 될까? 진짜 너무 얄미워서."

"안되지. 그럼 나도 때려야지."


그래도 못 들은 척하고는 등을 퍽 쳤더니 그가 바로 내 배를 쳤다. 어이없고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웃긴 건 그다음이다. 본인도 놀랐는지 벌떡 일어났다. 결국 함께 웃어버렸다.


"날 쳤어, 지금? 배를? 어이없네."

"안 보였어. 배인 줄 몰랐어."


물론 등을 쳤다고 해서 더 나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설픈 변명을 덧붙일 정도의 유치한 몸싸움이었다. 그런 몸싸움을 한 우리는 앞자리가 3과 4인 어른이었다.​


다툼 없는 사이가 어디 있을까. 어린아이들을 훈육하다 보면 큰 소리가 날 수도 있고,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하는 사람은 자꾸 고민이 깊어진다. 편한 상대에게 내 본모습 중 하나가 쉽게 나와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는 동료가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해도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집에서는 다르다. 아이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못 들은 척하면 금세 목소리가 커지고, 남편이 무심코 던진 말에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라서일까. 역설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 나면 이상하게도 밤이 길어진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집이 조용해지면 낮에 있었던 일들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씻기 싫다고 버티던 아이의 표정, 무섭다고 말하던 둘째의 목소리, 다투고 나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어버린 남편의 얼굴 같은 것들이 번갈아가며 스친다.​



'원래 있던 것이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고, 특정한 상황에서만 존재를 드러내는 것.'


어느 날 과학 해설을 준비하면서 형광 물질에 자외선램프를 비추고 있었다. 하얀 종이는 하얗다 못해 푸르게 빛났고, 평범한 형광색 물건들은 원래보다 더 선명한 색을 드러냈다. 비추는 빛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게 신기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문득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리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자외선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형광물질을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이지 않던 빛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희미하던 색은 선명하게 살아난다.


가족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형광물질이 자외선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와 남편은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던 어떤 모습을 비춰준다. 외면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보이지 않는 것은 고칠 수도 없으니까.


가족들은 오늘도 내 안의 자외선을 비춘다. 때로는 눈부실 만큼 선명하게. 덕분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오늘도 조금씩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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