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장면 위의 새 풍경

착시와 잔상

by미지의 세계

군 단위 시골에 산지 벌써 1년 8개월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시골과 도시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해 왔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걸 요즘에야 느낀다. 최근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두 건의 제사였다. 도시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종류의 일이다.


첫 번째 제사를 치른 사람은 우리 시부모님이다. 어느 날 어머님 댁에 갔더니 각종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제사 준비라고 했다. 순간 며느리 입장에서 뭔가 빠뜨렸나 싶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명절 때만, 그것도 제사를 간단히 지내는 것으로 알았는데 말이다. 알고 보니 집안의 일은 아니었다. 마을 이장 집에서 해마다 치러야 하는 행사가 있다고 했다.


"옛날에 어떤 할아버지가 후손 없이 돌아가셨어. 그런데 그분이 자기 재산을 마을에 다 기부하면서 마을 이장집에서 자기 제사 좀 지내달라고 했대. 그게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야."


그분이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모르나 그런 전설 같은 일이 아직도 누군가의 현실로 유지되고 있었다. 집안 어른들의 제사도 사라지는 시대에 말이다.



그 외에도 어머님은 이장의 아내로서 이것저것 더 하는 일이 있었다. 지역 행사가 있으면 마을 어른들을 위해 음식을 하고, 읍내에 나갔다 올 때 장 보는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아니, 어머님도 어버이신데 어버이날 행사를 준비하세요?"


하루는 어버이날을 맞이해 식사나 하시면 어떻냐고 했다가 바쁘시다는 거절을 들었다. 이유를 듣고 나서 다시 웃으며 여쭈니 더 큰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아이고. 이 마을에선 우리가 청년이야!"


아무리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유튜브를 보시고 트럭도 몰고 다니는 세상인데, 어떤 면에서는 과거부터 이어져오던 습관들이 남아있구나 싶었다.



또 이런 일도 있다. 수영을 같이 하는 언니 중 한 분은 소 축사를 운영한다. 보통 축사는 건물의 크기나 가축의 울음소리, 분뇨 냄새 등의 이유로 부지를 정할 때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언니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니 언니가 무심하게 말했다.


"축사를 지으려면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한테 다 동의를 받아야 해. 나도 했지. 옛날에는 돈도 다 드렸다고 하더라. 요즘은 그렇게까진 안 해도 되고."


그럼 이제는 돈을 주지 않아도 되는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우리는 마을 축제를 하거나 행사를 할 때 기부금 형태로 돈을 내. 그래도 많이 안 낸 편이긴 한데... 다른 지역에서 축사하는 분 말 들어보니까 엄청 냈더라고. 그리고 젊으니까 나와서 음식 좀 하라고 자꾸 불러. 계속 거절해서 남편 혼자 참석해 왔는데 '이번 대보름 날에는 색시 올 거냐'라고 계속 물으셨다데. 아휴. 이번엔 한번 가긴 가야지..."


"정월대보름 날 무슨 행사를 해요? 달집 태우기?"


순진한 내가 묻자 언니가 답했다.


"달집도 태울걸? 거기 바위가 있어. 마을을 지켜주는 바위. 바위한테 제사 지낸다."


"바위요? 아....."


물론 사람들이 정말 순수해서 진짜 바위를 믿는 건 아닐 것이다. 계기를 만들어서 다 같이 모여 단합하자는 의미일 테다. 안녕을 빌면 더 좋고. 이처럼 사라졌다고 믿었던 풍경들이 어느 시골에서는 나름 현대식으로 재해석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스쳐 들은 농촌의 특이한 풍경들이 다시 떠오른 건 착시와 잔상을 공부하면서였다. 착시란 주변 환경에 의해 눈과 뇌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고, 잔상은 우리 눈이 어떤 장면을 봤을 때 0.1초에서 0.2초가량 붙들어두려는 성질이다. 만화 영화가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사실은 연속된 정지 화면이 잔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잔상이 이어지면 움직이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고 말이다.


착시와 잔상은 흔히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과 함께 소개된다. 하지만 직접 교구를 만져보며 이야기를 듣는 관람객들의 눈은 여지없이 빛난다.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즐거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눈으로만 착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착시가 있다. 우리는 흔히 도시의 삶을 현재라고 여기고, 시골의 풍경은 오래된 과거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와 키오스크, 배달앱이 익숙한 풍경만이 지금의 세계를 대표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보면 전혀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흐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는 여전히 바위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빌고, 누군가는 이름 모를 사람의 제사를 이어간다. 연로한 공동체 안에서도 나름대로 젊은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맡고, 행사 때마다 얼굴을 비추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것은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는 생활 방식이다.


그걸 알게 되었다고 시골의 풍경이 갑자기 삭막해질까. 아니다. 착시와 잔상을 알고도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그저 새로운 사실을 더해 다채로운 현실을 살아갈 뿐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여러 겹으로 존재한다.


트럭을 몰고 읍내를 다녀온 할머니들이 이름 모를 누군가의 제사를 아직도 치른다. 누군가는 실리적인 이유 때문에 마을 공동 행사에 돈을 내고, 음식을 하러 나선다.


어쩌면 시대는 어느날 갑자기 완전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장면 위에 새 풍경이 겹쳐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전 02화눈부신 가능성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