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의 세계와 면의 세계

장력과 압축력

by미지의 세계

아침 일찍 출근을 위해 차에 타면 묘한 냄새가 난다. 오래된 차에 타면 나는 특유의 냄새다. 이걸 나는 가죽 냄새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보통 차의 가죽 냄새는 고급 차를 묘사할 때 쓰이는 거지만 오래된 차에도 시트는 있으니까.

아무튼 가죽 냄새, 그것은 마치 어른의 세계로 넘어가는 도입과 같다. 출근을 하면서 나는 엄마의 온화한 얼굴을 지운다. 대신 조금 딱딱하지만 진지한 어른의 얼굴을 끼운다. 가죽 냄새를 맡으며, 가죽의 세계로 간다.


가죽의 세계란 무엇인가.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세계는 가죽의 성질을 가졌다. 가죽은 까다롭고 어렵다. 물이 닿으면 안 되고, 정해진 틀이 있어 몸에 맞게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슬롯생활을 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그렇게 가죽을 입거나 걸치면 포스랄까, 카리스마 같은 게 생긴다. 강인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고 얼굴도 진지해진다. 왜인지 행동도 평소보다 거칠어지는 것 같다. 어른의 세계는 결국, 정말 편하지는 않지만 몸에 맞게 길들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적당히 날카롭게 스스로를 다듬어야 하는 세계이다.

그에 반대되는 것은 순면의 세계다. 면은 쉽고 단순하다. 어떻게 구겨도 다칠 위험이 없으며 더러워져도 물에 빨면 된다. 그래선지 아이들이 쓰는 대부분의 물건은 면으로 만든다. 어린아이의 물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면에는 심지어 유기농도 있다. 아이들을 돌볼 땐 나 역시 면 티셔츠를 입는다. 육아에 계산이나 체면치레는 필요 없다. 그저 편한 면 옷을 입고, 포근하게 아이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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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하고 마침내 육아 휴직에 들어갈 때, 모든 뻣뻣함과 날카로움을 전부 버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가죽 냄새를 맡으며 출근하지 않아도,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런 엄숙한 슬롯생활에 지쳐있었다. 가죽을 버린 대신 나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에 따라 아이가 태어나 쓸 모든 면을 빠는 데 며칠을 썼다. 면 손수건과 면 기저귀, 면 옷들을 세 번이나 빨고 널었다. 그렇게 면의 세계, 육아의 세계로 갔다.

그땐 몰랐다. 서로 다른 힘이 동시에 작용해야만 형태를 유지하는 구조들이 있다는 걸.

우울감에 빠진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아이는 세상에 나와서 나의 모든 것, 이를테면 시간과 몸, 잠, 꿈같은 것들을 전부 요구하기 시작했다. 매일 면 빨래들을 하고 널면서, 나는 거의 처음으로 내가 두고 온 가죽의 세계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이대로 엄마로 살다 가는가. 내 정체성은 엄마로 이제 끝인가. 엄마라는 이름을 감사하게 받아들였으면서도 밤이 되면 혼자 눈물이 나곤 했다. 그랬기에 다시 회사로 나가게 된 그 순간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던지도 모르겠다.


관람객들께 과학을 알려주는 삶이 시작됐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해서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조금 줄었다. 처음에는 그게 많이 어려울 줄 알았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면서, 나쁜 엄마가 되거나 모자란 슬롯인이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출근 전날에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여러 차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하지만 일과 양육이 병행하는 삶은 의외의 시너지가 있었다. 삶이 더 다채롭고, 즐거워진 것이다. 일단 매일 새로운 걸 공부해야 하니 지적 자극이 커졌다. '슬롯인의 나'는 사람들에게 과학을 쉽게 알려주는 사람이었으므로 과학을 공부해야 했다. 그리고 그걸 아이들의 언어로 풀어서 외웠다. 새로 배워야 할 게 있다는 것은 지루한 일상에서 낯선 사람이 되는 것만큼이나 짜릿했다.


관찰하는 일도 주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사실 많이 안다고 뭘 잘 알려주는 건 아니다. 해설을 듣는 초, 중학생들에게 뭐가 어려운 개념인지, 어떤 표현이 도움이 되는지 알아야 더 효과적인 해설이 가능해서다. 일단 출근을 해서 마이크를 들면 나는 관람객들의 얼굴을 유심히 봤다. 그리고 반응을 반영해 스스로의 해설을 고쳤다. 이런 태도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도 이어졌다. 아이들의 말이 더 잘 들렸다.



그럼에도 몸은 정직하게 고단해졌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싶을 때 즈음 퇴근을 했다. 아이들은 불과 몇 시간 떨어졌던 엄마를 몇 년만 에라도 본 듯 반겼다. 해맑게 달려오는 아이들의 땀냄새와 아기 비누 냄새를 맡으면 피곤이 사라졌다.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은 채 출근하는 엄마를, 아이들은 예쁘다고 해 주었다. 앞으로의 삶이 '누군가를 돌보는 삶'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예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할 때의 뿌듯함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해설을 준비하며 알게 된 개념 중 장력과 압축력이 있다. 장력은 쉽게 말해 당기는 힘이고 압축력은 눌려도 견디는 힘, 미는 힘이다. 이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면 무거운 쇠도 허공에 띄울 수 있다. 이를 이용해 만든 구조물을 '텐세그리티'라고 한다. 텐세그리티의 예는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예시는 우리 몸이다. 뼈와 근육이 서로 밀고 당기며 균형을 이룬다.

과학 원리를 공부하면서 엄마와 슬롯인으로 살아가는 스스로의 생활이 겹쳐졌다. 텐세그리티란 본래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팽팽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게 핵심이므로, 만약 줄 하나를 끊거나 하면 다른 하나도 무너진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덜 흔들린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가죽의 세계와 면의 세계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지금의 내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 하나의 역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적당한 압축과 장력 사이에서 형태를 유지하는 구조물처럼, 사람 역시 서로 다른 얼굴과 삶이 함께 버텨줄 때 더 단단해진다.



아침마다 여전히 오래된 차의 가죽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땀냄새와 비누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끝낸다. 하루 동안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오늘도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