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잊어버리는 편이다.

기억보다 오래 남은 것

byHelia

우산을 두고 온 적도 많고, 가방을 놓고 나왔다가 다시 가지러 간 적도 있다.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몰라 한참 찾다가 엉뚱한 곳에서 발견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넌 왜 그렇게 잘 잊어버리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잘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휴대전화는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다.

수많은 우산이 내 손을 떠났고 몇 번의 가방이 나를 기다렸지만 휴대전화만큼은 늘 내 손에 있었다.

어쩌면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기계 안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사진을 좋아한다.

특별한 날만 찍는 것도 아니다.

음식을 먹다가 찍고, 길을 걷다가 찍고, 카페에 앉아서 찍는다. 처음 가본 가게라면 간판도 찍는다. 누구를 만나면 셀카도 찍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까지 사진 속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그걸 왜 찍어?”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찍는다.

그 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까워서.

그리고 오래전에는 사진 대신 다른 방법으로 내 것을 기억했다.

인형에 표시를 해두는 식으로.

어렸을 때 엄마에게 인형 하나를 사달라고 졸랐다.

한 번 말해서 사주는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 이거 사주면 안 돼?”

“안 돼.”

다음 날 또 물었다.

“엄마, 진짜 안 돼?”

“집에 인형 있잖아.”

며칠을 졸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엄마가 인형을 사줬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것이니 나는 그 인형을 꽤 아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잘 보지 않는 곳에 작은 표시를 해두었다.

어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내 것이라는 걸 나만 알아볼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같이 놀다가 친구가 돌아갔다.

얼마 뒤 인형이 없어졌다.

처음부터 친구를 의심한 것은 아니다.

내가 어딘가에 뒀겠지 싶었다.

서랍을 뒤졌다.

없었다.

장난감 상자를 뒤집었다.

없었다.

침대 밑도 봤다.

없었다.

집 안을 아무리 찾아도 인형은 나오지 않았다.

그날 우리 집에 왔던 사람은 그 친구뿐이었다.

그래도 설마 했다.

친구니까.

친구를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거기에 내 것과 똑같은 인형이 있었다.

나는 한참 바라봤다.

“이거 어디서 났어?”

친구가 말했다.

“내 거야.”

“언제 샀어?”

“우리 할머니가 사줬어.”

이상했다.

새것 같지 않았다.

내 인형과 너무 비슷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은 흔적까지 비슷했다.

무엇보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내가 남겨둔 표시.

“잠깐만 보여줘.”

친구는 인형을 뒤로 감췄다.

“싫어.”

“왜?”

“내 건데 왜 보여줘?”

그럴수록 더 의심스러웠다.

결국 옆집 언니와 함께 다시 찾아갔고 나는 그 인형을 가지고 돌아왔다.

내 것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페이스북 메시지였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인형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당연히 친구도 나와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친구는 나를 자기 인형을 가져간 애로 기억하고 있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내 기억 속에서는 내가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친구 집에서 발견했고, 찾아왔고, 그래서 끝난 사건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기억 속에서는 내가 도둑이었다.

같은 인형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의 기억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그때 처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내 기억이 맞는지 친구의 기억이 맞는지 이제 와서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그 표시를 사진으로 찍어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표시를 해두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원래 잘 잊어버리는 아이였다.

그 사실은 자라면서 꽤 편리한 이유가 되었다.

나에게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엄마 지갑에서 돈이 없어질 때가 있었다.

동생이 종종 엄마 지갑에서 돈을 가져가곤 했다.

그런데 돈이 비면 엄마는 나부터 의심할 때가 있었다.

“너 돈 가져갔어?”

“아니.”

“정말?”

“안 가져갔다니까.”

“네가 가져가고 잊어버린 거 아니야?”

그 말이 싫었다.

나는 우산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

가방을 두고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산을 놓고 오는 것과 엄마 지갑에서 돈을 가져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 가지를 쉽게 연결했다.

쟤는 잘 잊는다.

그러니까 자기가 한 일도 잊을 수 있다.

그 논리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 약해졌다.

처음에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물으면 나중에는 나도 나를 의심했다.

혹시 정말 내가 그랬나.

기억을 못 하는 건가.

그럴 리 없는데.

그런데 내가 워낙 잘 잊어버리니까.

나는 하지 않은 일을 기억해 내려고 머릿속을 뒤졌다.

없었던 장면을 찾으려고 애썼다.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비슷한 일이 다시 생겼다.

이번에는 큰돈이었다.

경리 오빠가 같이 일하던 언니에게 돈을 맡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돈이 없어졌다.

언니는 자신이 나에게 돈을 줬다고 했다.

“저한테요?”

“응. 너한테 줬잖아.”

“저 안 받았는데요.”

“줬어.”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경리 오빠까지 나를 몰아붙였다.

어디에 뒀느냐고.

나는 계속 말했다.

“저 진짜 안 받았어요.”

그러자 또 익숙한 말이 돌아왔다.

“네가 깜빡한 거 아니야?”

나는 하루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내가 언제 출근했지.

어디에 있었지.

누구와 이야기했지.

혹시 정말 봉투를 받았나.

어딘가에 올려뒀나.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있다고 말하니 없는 기억까지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돈은 나중에 찾았다.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돈을 찾았으니 사건은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아니었다.

의심할 때는 그렇게 큰 목소리였던 사람들이 자기들이 틀렸다는 사실 앞에서는 너무 쉽게 조용해졌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나는 조금 달라졌다.

억울하면 끝까지 따지게 됐다.

언제?

어디서?

내가 뭐라고 했는데?

누가 봤는데?

증거 있어?

사람들은 그런 나를 피곤해했다.

그냥 넘어가면 될 일을 왜 그렇게 따지냐고 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내가 인형 도둑이 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확인해야 했다.

적어도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내 일이 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오빠들과 술을 마셨다.

한 군데에 오래 있지 않고 몇 번 장소를 옮겼다.

술집에 들어가면 사진을 찍었다.

간판을 찍기도 하고, 음식이 나오면 테이블을 찍고, 셀카도 찍었다.

사진 속에는 사람만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술잔도 있었고 가방도 있었고 옷도 있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한참 놀다가 문득 스카프가 없다는 걸 알았다.

목에 있었던 스카프였다.

“내 스카프 어디 갔지?”

오빠들이 주변을 둘러봤다.

없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첩을 열었다.

우리가 처음 갔던 곳부터 사진을 하나씩 넘겼다.

첫 번째 가게.

스카프가 있었다.

다음 장소.

있었다.

다음 사진.

또 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은 얼굴이 아니라 스카프만 따라갔다.

언제까지 있었지.

마지막으로 찍힌 곳이 어디지.

그러다 한 사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상호명이 보였다.

그리고 사진 속에 스카프도 있었다.

“여기야.”

내가 말했다.

오빠들이 사진을 봤다.

“거기 아닐걸?”

“여기서 마지막으로 찍었을 때 있었어.”

“그래도 거기는 아닐 것 같은데.”

예전 같았으면 그 말에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래?

내가 착각했나?

다른 데서 잃어버렸나?

하지만 사진이 있었다.

나는 다시 화면을 확대했다.

분명히 내 스카프였다.

“아니. 여기 가볼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그 가게에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정말 거기에 있었다.

내 스카프.

그 순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겨우 스카프 하나 찾은 것뿐인데 오래된 숙제를 하나 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진이 내가 맞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은 누구 편도 아니었다.

사진은 그냥 그 순간을 찍어두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

사진은 나를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덤벙거린다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내가 평소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다.

그저 그 시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남겨두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그날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사진 속에서 나는 웃고 있었고 스카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옆에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인형이 생각났다.

그때도 나는 표시를 해두었다.

내 것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 표시를 끝내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엄마 지갑의 돈도 그랬다.

아르바이트할 때 사라진 돈도 그랬다.

그때마다 나는 내 기억만 가지고 사람들의 확신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사진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 중 아주 작은 일부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사진을 증거로 남기려고 찍는 것은 아니다.

예쁜 하늘이 좋아서 찍고, 길가의 꽃이 좋아서 찍고, 그날의 내가 좋아서 찍는다.

지나가는 순간을 그냥 보내기 싫어서 찍는다.

하지만 사진에는 내가 찍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까지 남는다.

테이블 구석에 놓인 가방.

의자에 걸린 외투.

목에 두른 스카프.

그날의 간판.

함께 있던 사람.

내가 잊어버린 것까지 사진은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산은 잃어버렸다.

가방도 두고 온 적이 있다.

그런데 휴대전화는 이상하리만큼 잘 챙겼다.

어쩌면 그 안에 내 기억의 일부가 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나를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인정한다.

나는 잘 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너무 멀리까지 가져갔다.

물건을 잘 두고 오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돈을 받아놓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고,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을 가능성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나의 특징이 사람 전체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사실은 쉽게 밀려난다.

나는 오랫동안 그 앞에서 나를 먼저 의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질문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했어?

언제?

어디에서?

확실해?

확인해 봤어?

그래서 나는 집요해졌다.

가끔은 나도 내가 피곤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따지고 싶은 것은 누가 이겼는지가 아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의 확신 때문에 내가 나를 의심하는 일은 조금 줄이고 싶다.

기억은 틀릴 수 있다.

내 기억도 그렇다.

친구의 기억도 그렇고 엄마의 기억도 그렇고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기억도 그렇다.

확신한다고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되찾은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그리고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별것 없는 사진이었다.

밤거리와 내 얼굴.

그리고 목에 두른 스카프.

사진을 확인하다 웃었다.

이번에는 잘 찍혔다.

스카프도 보였다.

나는 사진을 지우지 않았다.

언젠가 이 사진을 왜 찍었는지조차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잊어버려도 사진에는 남아 있을 테니까.

어릴 때 나는 인형에 작은 표시를 남겼다.

커서는 사진을 남긴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같은 일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내가 본 것을 붙잡아두는 일.

그리고 가끔은,

내 기억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조용히 꺼내 보여주는 일.

여기 있었다고.

나는 가지고 있었다고.

내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여전히 잘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잊어버린 빈칸을 아무에게나 내어주지는 않는다.

그 빈칸에 무엇이 있었는지 정말 중요하다면 확인한다.

기억을 되짚고, 기록을 찾아보고, 사진을 넘긴다.

그리고 그날처럼 마지막 사진 한 장에서 답을 발견하면 나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사진 속에는 스카프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 가니 스카프가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진은 내가 옳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진은 그저,

그곳에 있었던 것을 그곳에 있었다고 남겨두었다.

어쩌면 내가 평생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도 결국 그런 것인지 모른다.

사람의 기억은 변하고 말은 뒤집히지만,

찍힌 순간만큼은 아무 말도 보태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