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상처가 중독으로 번질 때
처음에는 차 한 잔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황당하기까지 하다. 따뜻한 물에 찻잎을 우려 마시는 일이 어떻게 한 나라를 아편에 빠뜨리고, 결국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우리가 카페에서 별생각 없이 차를 주문하고 마시는 것처럼 당시 영국인들도 차를 즐겼을 것이다. 문제는 그 차를 너무 많이 좋아했다는 데 있었다.
영국에서 중국산 차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중국과의 무역에서 영국이 지불해야 하는 은도 늘어났다. 중국에서는 영국이 팔 만한 상품을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았으니 영국 입장에서는 계속 돈을 내보내면서 물건을 사 오는 모양새가 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무역 문제다.
돈이 너무 많이 나간다면 다른 상품을 개발하거나 수입량을 조절하거나 새로운 교역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영국은 기가 막힌 방법을 찾아낸다.
아편이었다.
이 지점부터 나는 영국이 상당히 비겁하게 느껴졌다.
물론 역사를 지금의 도덕 기준 하나로만 재단할 수는 없다. 당시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확대하고 무역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일이 벌어지던 시대였다. 그렇다고 그 시대에 벌어진 일이 덜 잔인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자신들의 상품을 사주지 않으니 중국 사람들이 중독될 물건을 팔아 돈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발상.
나는 이것을 영리한 무역 전략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상대의 약점을 만들어놓고 그 약점으로 돈을 버는 장사에 가까워 보였다.
더구나 그 상품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아편이었다.
한 번 시장이 형성되고 사람들이 중독되기 시작하면 스스로 수요가 만들어지는 물건이었다.
영국에게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었겠지만 그 시장 안에 있던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망가질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방송을 보면서 계속 그 생각이 들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이 망가져도 상관없었던 것인가.
차를 샀더니 은이 사라졌다
아편전쟁을 단순히 영국과 청나라가 싸운 전쟁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기억도 대충 이렇다.
영국이 중국에 아편을 팔았다. 청나라가 아편을 단속했다. 영국이 전쟁을 일으켰다. 청나라가 패배했다.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시험에서는 이 정도 순서만 기억해도 문제를 풀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를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영국은 중국의 차를 비롯한 상품을 원했다. 반면 중국이 영국 상품을 그만큼 원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영국의 은이 중국으로 흘러갔다.
영국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해결 방법이 왜 하필 아편이었는가.
영국은 인도에서 생산된 아편을 중국 시장으로 흘려보냈고 상황은 뒤집히기 시작한다. 이제 중국의 은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참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전혀 감탄하고 싶지는 않은 방식이다.
차를 사느라 잃었던 은을 아편으로 되찾는다.
장부만 보면 성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장부의 반대편에는 중독된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역사를 볼 때 이런 순간이 가장 싫다.
숫자로 보면 성공인데 사람으로 보면 재앙인 순간.
무역수지는 개선됐을지 몰라도 누군가는 아편 없이는 하루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 됐다. 개인의 중독이 늘어나면서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가 되어갔다.
결국 청나라의 경제와 슬롯까지 흔들렸다.
그러니 이 전쟁의 시작을 총소리에서 찾는 것은 늦다.
전쟁은 대포가 발사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아편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었을 때부터 말이다.
중독된 사람만 욕하면 가장 중요한 사람이 사라진다
중독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중독된 사람부터 탓한다.
왜 시작했느냐.
왜 끊지 못했느냐.
정신력이 그렇게 약하냐.
물론 개인에게 아무 바카라임도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아편전쟁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그런 질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누군가는 계속 아편을 공급했다.
그리고 그 공급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수요가 있으니까 팔았다고 말한다면 너무 간단하다.
그 논리대로라면 사람에게 해로운 것이든 무엇이든 돈만 된다면 팔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오히려 공급한 쪽을 더 보고 싶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운반했는지.
누가 팔았는지.
누가 돈을 벌었는지.
그리고 그 돈을 지키기 위해 누가 군함까지 움직였는지.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결국 전쟁까지 도착한다.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된 것은 개인들의 문제였을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의 중독이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이용된 순간부터 그것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차이를 분명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칙서는 정말 무리한 사람이었을까
청나라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편을 단속하기 시작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라 안에서 사람들이 아편에 빠지고 은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 중심에 임칙서가 있었다.
아편을 몰수하고 폐기하는 그의 행동을 영국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긴 사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
애초에 남의 나라에 불법적으로 아편을 팔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의 집에 들어가 문제를 일으켜놓고 집주인이 내쫓으려 하자 화를 내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다음이다.
아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힘의 논리가 등장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그래도 안 되면 더 강한 힘을 보여준다.
당시 영국에게 그 힘은 군함과 대포였다.
그 순간부터 이 싸움은 공정할 수 없었다.
강한 나라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다.
청나라는 영국의 군사력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청나라가 답답하기도 했다.
세상은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었는데 청나라는 자신들이 여전히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다. 상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기존의 질서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감과 현실감각은 다르다.
과거에 강했다고 현재도 강한 것은 아니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다는 기억이 지금의 힘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는 청나라 역시 분명히 돌아볼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의 행동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청나라가 시대 변화에 둔감했던 것과 영국이 아편 문제를 빌미로 무력을 행사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역사를 볼 때 나는 이 두 가지를 자꾸 한쪽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다.
청나라가 무능했으니 당해도 싸다는 것도 이상하고, 영국이 강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강함은 행동의 결과를 결정할 수 있지만 행동의 옳고 그름까지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그 전쟁의 명분까지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다 보면 승리한 나라의 행동에는 ‘전략’이라는 말이 붙고 패배한 나라의 행동에는 ‘무능’이라는 말이 붙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것도 조금 경계하고 싶다.
영국의 방식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성공했다는 말과 옳았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패배보다 더 잔인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전쟁에서 지면 전쟁만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패배한 청나라는 난징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홍콩을 영국에 넘기고 여러 항구를 개방하는 등 청나라가 원하지 않았던 조건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때부터 청나라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서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전쟁 자체보다 이런 장면들이 더 잔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전쟁은 언젠가 끝난다.
총을 내려놓고 군대가 물러가는 날이 온다.
하지만 패배의 결과는 남는다.
영토가 달라지고 경제 질서가 달라지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달라진다. 그때 만들어진 상처가 수십 년, 때로는 백 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한 나라의 상처라는 표현이 이해됐다.
상처는 전쟁이 끝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이 끝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남기도 한다.
제일 끔찍한 것은 중독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편에서 내가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역시 아편이었다.
전쟁에서 총과 대포를 사용하는 것은 끔찍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무기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아편은 조금 달랐다.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스스로 다시 찾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사람의 의지까지 붙잡는다.
그래서 나는 아편이 당시 영국에게 총보다 먼저 사용된 무기처럼 느껴졌다.
총은 상대를 쓰러뜨리지만 중독은 상대가 스스로 다시 그것을 찾게 만든다.
그 차이가 무섭다.
더구나 처음부터 청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거대한 계획 하나로 모든 것이 움직였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우연, 경제적 목적과 정치적 판단이 얽혀 있으니까.
그래도 결과만큼은 분명했다.
아편은 중국 슬롯를 병들게 했고, 영국은 그 거래에서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청나라가 그것을 막으려 하자 결국 군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그 과정을 보고 있으니 ‘자유무역’이라는 말조차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상대가 싫다고 하는 물건을 계속 팔 권리까지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 물건이 사람을 중독시키는 아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원하는 자유를 위해 상대의 자유를 짓밟는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청나라는 아편 하나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다
제목만 보면 아편 하나로 청나라가 몰락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번 편을 보면서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느꼈다.
아편은 분명 청나라를 흔든 거대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미 내부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고, 세계는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산업혁명을 거친 영국과 기존 질서 안에 머물러 있던 청나라 사이에는 군사력과 기술력에서 큰 차이가 생겨 있었다.
결국 아편전쟁은 그 차이가 잔인할 정도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러니 청나라의 몰락을 아편 하나로 설명하는 것도 부족하다.
아편은 원인이면서 동시에 이미 존재하던 문제를 폭발시킨 도화선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이 역사가 더 무섭다.
나라는 어느 날 갑자기 망하지 않는다.
조금씩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변화해야 할 때 변하지 않고, 문제를 미루다 보면 어느 날 외부의 충격 하나가 들어왔을 때 와르르 무너진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것처럼 보여도 그전부터 작은 균열이 있었던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만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다.
역사를 거꾸로 걸어가야 하는 이유다.
차 한 잔에서 전쟁까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면 결국 차였다.
영국 사람들이 좋아했던 중국의 차.
그 차를 사기 위해 은이 중국으로 흘러갔고, 무역 불균형을 뒤집는 과정에서 아편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다.
아편은 사람들을 중독시켰고 중국의 은은 다시 밖으로 빠져나갔다.
청나라가 그것을 막으려 했고, 결국 영국과 충돌했다.
전쟁이 벌어졌고 청나라는 패배했다.
그리고 그 패배는 중국 근대사의 거대한 상처 중 하나로 남았다.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고 보면 역사가 얼마나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차 한 잔이 무역과 아편과 전쟁으로 연결된다.
물론 차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그 사이에는 돈이 있었고, 제국주의가 있었고, 무역이 있었고, 중독이 있었고,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청나라의 한계도 있었다.
무엇보다 힘이 있었다.
결국 자신의 요구를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편을 보고 난 뒤 내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아편전쟁’이라는 전쟁의 이름보다 그 전쟁이 시작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 중독성 물질을 팔아 이익을 얻는다.
그 나라가 막으려고 하자 군사력이 등장한다.
싸움에서 이긴 뒤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받아낸다.
글로 몇 줄 적어놓으면 너무 단순하다.
하지만 그 몇 줄 사이에서 실제로 삶이 망가진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역사바카라에는 황제와 장군과 조약의 이름이 남는다.
하지만 나는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도 생각하게 된다.
아편에 중독된 사람.
가족이 중독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
갑자기 다른 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
그들에게 아편전쟁은 시험에 나오는 사건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삶 자체가 뒤집힌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알고 난 뒤에는 예전처럼 ‘청나라는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했다’라는 한 문장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겠다.
그 문장 앞에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
차를 갖고 싶었던 욕망.
돈을 잃고 싶지 않았던 욕망.
더 많은 시장을 차지하고 싶었던 욕망.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믿음을 내려놓지 못했던 오만.
그것들이 뒤엉켜 결국 전쟁까지 갔다.
나는 그래서 이번 편의 소제인 ‘한 나라의 상처가 중독으로 번질 때’라는 말이 꽤 오래 남았다.
조금 바꾸어 말하면 이런 생각도 든다.
한 사람의 중독은 그 사람 하나를 망가뜨릴 수 있지만, 그것을 누군가 돈과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 한 슬롯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고.
그리고 그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중독된 사람에게 왜 그것을 선택했느냐는 질문만이 아니다.
누가 그것을 가져왔고, 누가 팔았으며, 누가 돈을 벌었는가.
아편전쟁을 보고 나서 나는 그 질문을 빼놓을 수 없었다.
결국 역사를 움직인 것은 거창한 명분만이 아니었다.
돈이었고, 욕망이었고, 힘이었다.
그리고 힘을 가진 쪽이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시작했을 때 한 나라의 상처는 너무 쉽게 다른 나라의 이익이 되었다.
차 한 잔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총을 쏘기 전에도 전쟁은 시작될 수 있다는 것.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반드시 총과 칼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한 시대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어쩌면 사람들이 그것을 무기라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아편은 그렇게 청나라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상품으로.
다음에는 중독으로.
그리고 끝내 한 나라가 감당해야 할 거대한 상처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