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순간보다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을 바라보며
우리는 결과를 보고 원인을 찾는 데 익숙하다. 전쟁에서 졌다면 마지막 전투를 들여다보고, 한 나라가 몰락했다면 멸망한 그날을 기억한다. 관계가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싸웠던 날, 연락을 끊었던 날, 누군가 돌아서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모든 것이 그날 시작된 것일까.
『벌거벗은 세계사』의 「패배는 마지막 전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를 보면서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생각도 이것이었다. 역사에서 패배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마지막 장면이라고 기억하는 순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균열이 눈앞에 드러난 순간일 뿐이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몇 초면 충분하지만 균열은 훨씬 오래전부터 생긴다. 처음에는 벽 한쪽의 가느다란 금 정도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당장 건물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나친다. 조금 더 벌어져도 페인트를 덧칠하고, 가구로 가려버리고, 아직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다 어느 날 건물이 무너진다.
그제야 사람들은 묻는다.
왜 무너졌을까.
하지만 어쩌면 질문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왜 무너졌을까’가 아니라 ‘언제부터 무너지고 있었을까’를 물어야 한다.
역사를 볼 때도 그렇다.
전쟁의 결과를 승리와 패배라는 두 단어로 정리하면 모든 것이 지나치게 간단해진다. 어느 전투에서 누가 이겼고, 어느 장수가 실수했고, 병력이 몇 명이었으며 어떤 전략이 실패했는지를 정리하면 시험 문제의 답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마지막 전투에 도착하기 전까지 수많은 결정이 있었고, 그 결정 사이에는 욕심과 오판과 방심이 있었다. 경고를 듣고도 무시한 사람이 있었고,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성공 방식을 붙잡은 사람이 있었으며,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 더 깊숙이 들어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패배보다 ‘패배의 과정’이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패배하는 순간에는 적어도 결과를 알 수 있다.
과정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패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승리가 사람을 더 위험하게 만들 때
성공 경험은 분명 중요하다.
한 번 성공해 본 사람은 자신감을 얻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조금은 알게 된다. 하지만 성공에는 이상한 부작용도 있다. 반복되면 자신감과 확신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번에도 되겠지.’
이 짧은 생각이 때로는 굉장히 위험하다.
과거에 통했던 방법이 지금도 통할 것이라고 믿고, 예전의 승리가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역사를 보면서 나는 이런 장면이 이상할 만큼 익숙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경고한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조금 멈춰야 한다고.
상대가 생각보다 강하다고.
계획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몇 번 성공한 사람에게 그런 말은 겁쟁이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하거나 충성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판단은 현실을 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을 지키는 일이 된다.
나는 이것이 역사에서 반복되는 꽤 무서운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실패해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성공 때문에 무너지기도 한다.
성공했던 기억이 너무 강하면 변화한 현실보다 자신의 경험을 믿게 되기 때문이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판단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
이 사실이 묘하게 씁쓸했다.
마지막 전투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도착해 있다
우리는 마지막 전투를 극적인 장면으로 기억한다.
군대가 맞붙고, 명령이 떨어지고, 누군가는 돌격하고 누군가는 후퇴한다. 영화로 만든다면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갈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승패의 상당 부분이 결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군대의 사기는 어땠는지, 보급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지휘관들은 서로 신뢰했는지,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지는 않았는지, 지도자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는지.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병사들은 총과 칼만 들고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누적된 결정까지 함께 들고나간다.
잘못된 판단도 들고나가고, 지도자의 욕심도 들고나가며, 부족한 식량과 무너진 신뢰와 늦어진 명령도 함께 전장으로 간다.
그래서 마지막 전투에서 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결과만 본 표현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전투는 그동안의 선택이 한꺼번에 계산되는 순간에 가깝다.
나는 이 부분에서 역사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사람의 관계를 생각했다.
관계도 이상할 정도로 비슷하다.
사람들은 헤어진 날을 관계가 끝난 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날 끝난 것일까.
어쩌면 훨씬 전부터 끝나고 있었을 것이다.
대답하기 싫은 연락에 억지로 답했던 날부터.
불편한데도 괜찮다고 했던 순간부터.
상대의 행동이 싫었지만 싸우기 귀찮아서 넘어갔던 날부터.
내 마음을 설명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던 순간부터.
마지막 이별은 전투의 결과처럼 눈에 보이는 사건일 뿐이다.
관계의 패배 역시 마지막 싸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참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예전에는 참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싫어도 조금 참고, 불편해도 넘어가고,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 어른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말해서 분위기를 망치는 것보다 내가 한 번 삼키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는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인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불편함이다.
‘뭐, 이 정도는.’
두 번째도 넘긴다.
세 번째쯤 되면 약간 짜증이 나지만 이미 두 번이나 넘어갔으니 또 참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말 별것 아닌 일 하나에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다.
상대는 황당할 것이다.
고작 이것 때문에?
하지만 사실 고작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전에 있었던 수십 개의 ‘이 정도는’이 마지막 하나 뒤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 사이의 끝도 마지막 사건만 가지고 설명하기 어렵다.
마지막 사건은 방아쇠일 뿐이다.
총알은 이미 장전되어 있었다.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면서 전쟁의 패배를 설명하는 이야기에서 이상하게 인간관계가 떠올랐던 이유도 이것이었다.
규모만 다를 뿐 구조는 묘하게 닮아 있다.
국가도, 조직도, 관계도 작은 문제를 계속 무시하면 어느 순간 그것을 작은 문제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철수도 판단이다
나는 예전에는 포기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포기는 왠지 패배자의 단어처럼 느껴졌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며, 중간에 돌아서는 것은 내가 졌다는 뜻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계속 가는 것만 용기가 아니다.
멈추는 것도 판단이고, 돌아가는 것도 능력이다.
전쟁에서도 철수는 무조건 패배를 뜻하지 않는다. 병력을 보존하고 다음을 준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하게 이미 많은 것을 투자했을수록 돌아서지 못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만큼 했는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들어간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잃는다.
관계에서도 그랬다.
이미 오래 만났으니까.
내가 들인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래도 좋은 순간도 있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끝났어야 할 관계를 붙잡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오래 버텼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버텨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십 년 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걸었다고 해서 십 년을 아까워하며 십일 년째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멈추는 순간부터 다른 길이 생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철수를 예전처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어떤 전투에서는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용감하지만, 어떤 전투에서는 더 늦기 전에 돌아가는 사람이 현명하다.
문제는 그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면 패배가 길어진다
역사를 보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이미 상황이 좋지 않은데 왜 계속했을까.
왜 멈추지 않았을까.
왜 주변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밖에서 결과를 알고 보는 사람에게는 답답할 정도로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상황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뒤집을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물러서면 지금까지의 선택이 모두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권력이 크고 바카라임져야 할 것이 많을수록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더 큰 패배를 선택한다.
이 아이러니가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된다.
나 역시 살면서 비슷한 실수를 한다.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바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조금 더 지켜보자며 시간을 끈 적이 있다.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를 붙잡는다.
혹시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혹시 내가 너무 성급한지도 모르니까.
혹시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혹시’라는 말이 희망일 때도 있지만 미련일 때도 있다.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사람이 꽤 오래 같은 자리에서 맴돈다.
무너진 뒤보다 무너지기 전을 보는 일
역사를 공부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결과를 알고 과정을 거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어떤 나라가 무너졌고, 어떤 전쟁에서 누가 패배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있었던 신호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서 멈췄다면?’
‘이때 판단을 바꿨다면?’
‘이 경고를 들었다면?’
물론 역사는 다시 돌릴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내 삶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래서 역사에서 발견한 질문을 지금의 나에게 가져올 수는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무시하고 있는가.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없는가.
과거에 잘됐다는 이유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은 불편하다.
그런데 꽤 필요하다.
큰 실패를 막는 것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이상 신호를 알아차리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몸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돈도 그렇다.
대부분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징조가 있다.
문제는 그것을 보고도 우리가 얼마나 자주 ‘아직 괜찮아’라고 말하느냐에 있다.
패배의 반대말은 승리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번 이야기를 보고 나서 나는 패배의 반대말이 꼭 승리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수정일 수도 있고, 철수일 수도 있고, 인정일 수도 있다.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
이미 손해를 봤더라도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멈추는 것.
사람 하나를 잃는 것이 두려워 나 자신까지 잃지 않는 것.
그것 역시 패배를 막는 방법이다.
우리는 결과가 좋으면 과정의 문제를 쉽게 잊는다.
이겼으니까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운 좋게 한 번 이겼다고 잘못된 판단이 옳은 판단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결과적으로 졌다고 해서 모든 선택이 잘못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역사를 승자와 패자로만 나누는 방식이 나는 점점 재미없어진다.
누가 이겼는가 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무엇을 놓쳤는지, 어떤 경고를 무시했는지, 어느 순간 돌아갈 기회가 있었는지를 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역사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나 역시 계속 선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아직 끝나지 않은 전투가 있고, 이미 철수한 전투가 있으며,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어야 했던 전투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싸움에서 이길 필요는 없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져줘도 됐고, 어떤 관계에서는 설명을 포기해도 됐으며, 어떤 순간에는 돌아서는 것이 맞았다.
내가 지켜야 했던 것은 승패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전투가 오기 전에
「패배는 마지막 전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방송을 다 보고 난 뒤 오히려 처음보다 더 무겁게 남았다.
패배는 마지막 전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이미 너무 늦었을 수도 있다.
패배는 작은 경고를 무시했을 때 시작될 수도 있고, 과거의 성공을 지나치게 믿었을 때 시작될 수도 있다.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을 때, 체면 때문에 돌아서지 못했을 때, 아직 괜찮다는 말로 문제를 미뤘을 때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사가 알려주는 것은 ‘어떻게 하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가’가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언제든 틀린다.
판단을 잘못하고, 사람을 잘못 믿고, 상황을 오판한다.
중요한 것은 틀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틀렸다는 신호가 왔을 때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앞으로 완벽한 선택만 하며 살지는 못할 것이다.
또 잘못된 사람을 믿을 수도 있고, 괜한 일을 시작할 수도 있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끝까지 가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멈출 수도 있다.
돌아갈 수도 있다.
다시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패배는 이미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깝다는 이유로 계속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 속 마지막 전투에는 언제나 그 이전의 시간이 함께 도착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전부터 작은 균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마지막 순간보다 그 이전을 보고 싶다.
무너진 뒤에 이유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금이 가기 시작했을 때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이든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놓아야 할 때 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겨야 할 싸움과 굳이 싸울 필요 없는 싸움을 구분하면서 살고 싶다.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전투만큼은 피할 수 있다.
어쩌면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이미 끝난 전쟁의 승패를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내 삶에서 마지막 전투가 오기 전에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