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천재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사람』리뷰

천재라는 이름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는 없으니까

byHelia

나는 그림을 볼 때 작가의 삶까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림이 좋으면 좋은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 앞에서 굳이 그 사람의 사생활까지 끄집어내 그림을 판단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작품은 작품이고 사람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폴 고갱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그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다.

고갱이라는 이름은 너무 유명하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다. 강렬한 색채와 이국적인 풍경, 타히티의 사람들을 그린 그림도 익숙하다. 미술사에서는 현대미술에 영향을 준 중요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천재 화가’,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 ‘문명을 떠나 원시적인 순수함을 찾아간 사람’ 같은 말도 그의 이름을 따라다닌다.

그런데 방송을 보다 보니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혹시 ‘천재’라는 단어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덮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천재니까 괴팍할 수도 있고, 예술 가니까 평범하게 살 수 없었으며, 위대한 작품을 남겼으니 개인적인 잘못쯤은 어느 정도 눈감아줘도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그게 이상했다.

아무리 뛰어난 그림을 남겼다고 해도 그것이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남긴 상처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은 아름다운데 사람은 아름답지 않았다

고갱의 그림만 놓고 보면 분명 매력적이다. 현실의 색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자신이 느낀 감정과 인상을 강렬한 색으로 표현했고, 당시 유럽 미술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가 그의 그림을 보고 독특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나 역시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남긴 작품의 가치까지 전부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실제로 미술사에 남긴 영향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삶까지 위대하게 포장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갱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자유로운 예술가’라는 표현이 꽤 불편하게 다가온다. 자유라는 말은 멋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떠나고, 슬롯가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예술을 추구한다는 이야기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한 사람의 자유 뒤에서 누군가가 바카라임을 떠안아야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모든 짐을 넘겨버리는 것을 정말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가족을 떠나 예술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예전 같았으면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화가’ 정도로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가 버린 것이 정말 ‘모든 것’이었을까.

오히려 자신이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이 대신 감당해야 했던 것이 더 많지 않았을까.

자신의 꿈을 선택하는 것과 자신의 바카라임을 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그런데 역사 속 천재들의 이야기를 보면 이상하게도 이런 부분이 자주 낭만적으로 포장된다. 평범한 사람이 같은 행동을 했다면 무바카라임하다고 했을 일을 유명한 예술가가 하면 ‘예술에 대한 광기’가 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나는 그 차이가 꽤 불편하다.

‘천재’라는 단어는 너무 편리하다

천재라는 말은 때때로 이상할 정도로 많은 것을 용서한다.

성격이 괴팍해도 천재니까.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해도 천재니까.

가족에게 상처를 줘도 예술을 위해서였으니까.

타인을 자신의 욕망을 위한 대상으로 삼아도 시대가 달랐으니까.

그렇게 하나씩 이유를 붙이다 보면 마지막에는 작품만 남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면서 오히려 고갱보다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다. 역사에서는 늘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중심에 남는다. 유명한 화가, 왕, 정치가, 장군, 발명가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그들의 선택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름은 대부분 사라진다.

고갱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고갱의 이름은 기억한다.

그림 제목도 기억한다.

미술관에서는 그의 작품 앞에 사람들이 몰린다.

하지만 그의 삶 속에서 상처받았던 사람들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역사는 참 이상하다.

남긴 것이 많으면 잘못도 함께 희미해진다.

업적이 너무 크면 그 사람의 삶에서 불편한 부분은 작은 각주처럼 밀려난다.

나는 그게 싫다.

업적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업적도 보고 잘못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하나의 얼굴만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타히티는 정말 고갱이 꿈꾸던 낙원이었을까

고갱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타히티가 떠오른다.

화려한 색, 낯선 풍경, 자연 속 사람들.

그림만 보면 어딘가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낙원처럼 보인다.

그런데 방송을 보고 나면 그 풍경도 이전과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

고갱은 유럽 문명을 벗어나 순수하고 원시적인 세계를 찾으려 했다. 얼핏 들으면 낭만적이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니 영화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빠져 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섬이 아니었다.

이미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삶과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온 예술가의 시선으로 그들을 ‘순수한 원시’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한 인간이라기보다 고갱이 꿈꾸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배경이 되어버린다.

특히 어린 현지 여성들과 관련된 그의 삶을 접하면서는 불편함이 훨씬 커졌다.

그것을 단순히 ‘당시 시대상이 그랬다’는 말로 끝낼 수 있을까.

물론 과거의 사람을 지금의 기준으로만 재단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시대와 문화적 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과 피해를 없던 일처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시대에는 그랬다’는 말은 설명은 될 수 있어도 모든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고흐와 고갱, 천재들의 우정이라는 말 뒤에서

고갱의 이야기에 반 고흐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이 함께 지냈다는 사실과 고흐의 귀 사건은 워낙 유명하다. 나 역시 예전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성격이 다른 두 천재 화가의 불안한 동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방송을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천재들의 불행한 관계마저 낭만적으로 보는 걸까.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고 작품 세계에도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하지만 실제 관계 속에서는 감정적인 충돌과 불안이 있었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밖에서 보면 전설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냥 고통일 수도 있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이야기가 예쁘게 정리된다. ‘그때는 서로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 ‘서로에게 강한 영향을 준 관계였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관계 속에 있던 당시에는 죽도록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결과만 가지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갱과 고흐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천재가 만났다는 사실보다 그들이 실제로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는 편이 훨씬 흥미로웠다.

작품과 작가를 분리할 수 있을까

결국 방송을 보는 내내 가장 오래 남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볼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작품은 작품일 뿐이라고 한다.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 말도 이해한다.

만약 모든 예술가에게 완벽한 도덕성을 요구한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이 얼마나 남을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예술가라고 특별히 더 선한 인간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몰랐던 때처럼 작품만 바라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알아버렸으니까.

한번 알게 된 사실은 그림 밖으로 완전히 밀어낼 수 없다.

예전에는 타히티의 여인들을 그린 그림을 보면 색감부터 봤다면 이제는 그 그림 속 사람이 누구였는지 생각하게 된다.

고갱에게 그 사람들은 무엇이었을까.

한 명의 인간이었을까.

자신이 찾던 ‘원시적인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소재였을까.

그 질문이 그림 앞에 따라붙는다.

그래서 작품과 작가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지도 않다.

나는 오히려 더 많이 알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만 골라 기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와 예술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위대한 사람보다 복잡한 사람

《벌거벗은 세계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역사바카라 속 인물들은 너무 쉽게 한 단어로 정리된다.

영웅.

폭군.

천재.

악인.

개혁가.

예술가.

하지만 사람 하나가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면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세상을 바꾸는 작품을 남기면서 자신의 가까운 사람에게는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고갱도 그런 인물이었다.

그의 그림이 미술사에서 중요하다는 사실과 인간 고갱에게 불편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굳이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나쁜 사람이니까 그림도 형편없다.”

이것도 이상하고,

“위대한 화가니까 사생활은 중요하지 않다.”

이것 역시 너무 단순하다.

나는 이제 그 중간에서 보고 싶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평범하면서도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천재라는 이름을 걷어내고 나면

방송을 다 보고 나니 고갱이라는 이름 앞에 붙어 있던 ‘천재’라는 두 글자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천재라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경계하게 된다.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평범한 인간에게 적용하는 기준 밖으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천재니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천재니까 남들과 다르다.

천재니까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할까.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과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할 의무는 별개의 문제다.

위대한 작품을 남기는 것과 좋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도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그 둘이 반드시 함께 갈 필요도 없다.

고갱은 뛰어난 화가였을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무바카라임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두 문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할 때 비로소 한 사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는 역사 속 유명한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이 무엇을 남겼는지를 먼저 봤다.

이제는 조금 다르다.

그 사람이 무엇을 남겼는지만큼 무엇을 밟고 지나갔는지도 궁금해진다.

찬란한 결과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 뒤에서 희생한 가족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자유 뒤에서 바카라임을 대신 떠안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아름다운 작품 뒤에 이름조차 남지 못한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 사실까지 알아야 비로소 역사가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 고갱 편은 그림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다.

고갱의 그림이 갑자기 싫어진 것도 아니다.

그의 작품이 미술사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전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볼 수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그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예술가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작품을 인정한다고 그 사람의 모든 행동까지 이해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그림 앞에서 감탄하면서도 그 그림을 만든 사람의 삶을 비판할 수 있다.

그 정도의 모순은 가지고 있어도 된다.

사람도 원래 모순투성이니까.

어쩌면 우리가 역사 속 인물에게 너무 쉽게 붙여왔던 ‘천재’라는 이름부터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천재 고갱이 아니라 인간 폴 고갱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훨씬 많은 것이 보인다.

재능도 보이고 욕망도 보인다.

열정도 보이고 이기심도 보인다.

예술을 향한 집착도 보이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도 보인다.

그 모든 것을 보고도 그의 그림이 좋다면 좋다고 말하면 된다.

다만 아름다운 그림이 그 사람의 삶까지 아름답게 만들어준다고 착각하지만 않으면 된다.

《벌거벗은 세계사》의 고갱 편을 보고 내가 가장 오래 생각했던 것도 결국 이것이었다.

천재라는 이름은 업적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한 인간의 잘못을 지워주는 지우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림은 액자 안에 남지만 사람의 삶은 액자 밖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정말 봐야 하는 것은, 화려한 액자 안의 천재보다 그 그림 뒤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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