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길을 잃고도 끝내 자신에게 돌아오는 사람에 대하여
트로이 전쟁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트로이 목마다. 거대한 목마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들어가 성문을 열고, 결국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트로이를 무너뜨린 이야기. 너무 유명해서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히려 잘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겼으면 영웅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잘 먹고 잘 살았겠거니 했다.
그런데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이상하게도 트로이 전쟁보다 전쟁이 끝난 다음이 더 오래 남는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다. 그것도 힘으로 밀어붙여 승리한 장수가 아니다. 트로이 목마라는 기발한 계바카라을 생각해 낸 지략가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전쟁은 끝났는데 집에 가지를 못한다.
10년 동안 전쟁을 치르고 또다시 10년에 걸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간다. 집에 한번 돌아가는 데 10년이라니. 길을 잘못 들어도 너무 심하게 잘못 들었다. 지금 같으면 내비게이션부터 의심할 일이다.
그런데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따라가다 보면 그 10년이 단순히 운이 없어서 생긴 고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히려 그 긴 귀향길 때문에 오디세우스라는 사람이 완성됐다고 느낀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인생까지 이긴 것은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승자다. 하지만 《오디세이아》는 승리한 영웅에게 곧바로 행복한 결말을 주지 않는다.
이게 나는 꽤 마음에 든다.
현실도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큰일 하나를 해결하면 인생이 정리될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시험에 붙으면, 취업하면, 돈을 벌면, 누군가와 헤어지면, 힘든 일을 끝내면 그다음부터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다.
오디세우스에게도 트로이 전쟁의 승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전쟁터에서는 적이 분명하다. 싸워야 할 상대가 있고 이기면 된다. 하지만 귀향길의 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바다도 상대해야 하고 신들의 분노도 감당해야 한다. 괴물과 싸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 욕망과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판단 때문에 동료들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트로이 전쟁보다 귀향길의 오디세우스가 훨씬 흥미롭다.
전쟁에서는 영웅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그냥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인데 꼭 한 번씩 일을 키운다
오디세우스의 가장 큰 무기는 힘이 아니라 머리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혔을 때도 그렇다. 그는 자신을 ‘아무도 아닌 자’라고 소개하고 꾀를 써서 위기에서 빠져나온다.
여기까지만 보면 감탄스럽다.
그런데 안전하게 빠져나왔으면 그냥 가면 된다.
굳이 자기 이름을 밝힌다.
“내가 바로 오디세우스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기껏 머리를 써서 살아났는데 마지막 순간에 자존심을 못 참는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상대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폴리페모스의 아버지인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면서 귀향길은 더 험난해진다.
솔직히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조용히 가지.’
사람이 이상하게 그렇다. 일을 잘 해결해 놓고 마지막 한마디를 참지 못해서 일을 키우기도 한다. 이미 이겼는데 상대에게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까지 확인받으려 한다.
오디세우스는 지혜롭지만 완벽하게 현명하지는 않다.
나는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이 인물이 마음에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판단이 완벽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야기가 되었을까 싶다.
세이렌보다 무서운 것은 내 안의 호기심이다
오디세우스의 모험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세이렌이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파멸한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듣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를 막는다.
그런데 자기 귀는 막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몸을 배의 돛대에 묶으라고 한다.
여기서 또 오디세우스다운 성격이 나온다.
위험한 줄 안다.
그런데 궁금하다.
듣고 싶다.
나는 이 장면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보통 영웅 이야기라면 유혹을 이겨 내는 강한 정신력을 보여줄 것 같은데 오디세우스는 조금 다르다.
“나는 절대 유혹되지 않는다”가 아니다.
“나는 유혹될 테니까 미리 나를 묶어라.”
오히려 현실적이다.
사람이 언제나 의지로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훨씬 솔직하다.
나도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궁금해서 해 본 일이 있고, 연락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을 알면서 연락하고 싶었던 적도 있고, 이미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확인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의지가 아니라 어쩌면 돛대일지도 모른다.
내가 흔들릴 것을 인정하고 미리 선을 만드는 것.
나는 세이렌 이야기를 보면서 오디세우스의 지혜가 단순히 머리가 좋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도 지혜다.
그런데 페넬로페 입장에서 생각하면 조금 억울하다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아내 페넬로페다.
남편은 20년 동안 집을 비운다.
10년은 전쟁이고 10년은 귀향이다.
그동안 페넬로페는 이타카에서 남편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기다린다. 수많은 구혼자가 몰려와 재산을 축내고 결혼을 강요하지만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낮에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고 밤에는 다시 풀면서 시간을 번다.
이것도 상당한 지략이다.
그래서 나는 오디세우스만 지혜로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졌다.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썼다면 페넬로페 역시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쓴다.
무엇보다 남편의 모험에는 수많은 여성과 여신이 등장한다. 키르케도 있고 칼립소도 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는 20년의 기다림과 정절이 요구된다.
고대 그리스 이야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야겠지만 지금의 감각으로 보면 썩 공평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이런 부분까지 포함해서 《오디세이아》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고전을 읽는다고 해서 모든 가치관까지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도 고전을 읽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집은 장소가 아니라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계속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순간도 있었고 유혹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돌아간다.
이타카로.
여기서 나는 조금 이상한 생각을 했다.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한 것은 정말 이타카라는 땅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원래 누구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을까.
전쟁터에서는 장수였고 바다에서는 표류자였으며 낯선 섬에서는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이타카에서는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왕이다.
사람에게도 그런 장소가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밖에서는 계속 역할을 바꾸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학생이고 누군가에게는 직원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다. 계속 사람을 만나고 설명하고 때로는 눈치를 본다.
그러다가 혼자 있는 공간으로 돌아오면 굳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한 사람이라 그런지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사람이 많고 화려한 곳이라고 반드시 머물고 싶은 곳은 아니다.
결국 내가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다.
영웅이라기에는 너무 많이 실수한다
처음에는 오디세우스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 보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 사람, 생각보다 사고를 많이 친다.
호기심 때문에 위험에 들어가고 자존심 때문에 일을 키우고 판단을 잘못해 동료들을 위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다.
나는 완벽한 영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옳은 판단을 하고, 언제나 용감하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기보다 현실감이 떨어진다.
사람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때로는 잘못된 사람을 믿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떠올리고, 괜히 확인했다가 상처받는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한다.
‘내가 그걸 왜 했지?’
오디세우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는 실수하고도 계속 간다.
나는 그 점에서 영웅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모든 유혹을 이기는 사람보다 다시 방향을 잡는 사람
예전의 나는 강한 사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사람은 흔들린다.
아무리 똑똑해도 잘못 판단하고, 아무리 단단해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질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오디세우스의 10년은 거의 길을 잃는 과정이다.
섬에 머물고, 괴물을 만나고, 동료를 잃고, 신에게 미움을 받고, 죽을 뻔한다.
그런데 계속 이타카를 향한다.
그래서 제목처럼 영웅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완성된다는 말이 이해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오디세우스는 이미 유명한 영웅이다.
하지만 그때의 그는 자신의 지략을 증명한 사람일 뿐이다.
귀향길에서는 다르다.
자기 오만 때문에 대가를 치르고, 욕망 때문에 흔들리고, 자신보다 강한 존재 앞에서 무력해지고,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스무 살의 내가 읽었다면 모험담이었을 것이다
아마 더 어릴 때 《오디세이아》를 읽었다면 괴물과 신과 마녀가 나오는 판타지 모험담으로 읽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살다 보면 인생에도 이상한 섬들이 나타난다.
머물면 편하지만 계속 머물 수는 없는 관계가 있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고, 내 자존심 때문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을 완전히 잊게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 중요한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는 원래 어디로 가려고 했지?’
오디세우스에게 그 답은 이타카였다.
그래서 《오디세이아》가 수천 년 전 이야기인데도 아직 읽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괴물은 사라졌고 신들이 인간의 배를 뒤집는다고 믿는 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길을 잃는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트로이 목마가 아니다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기 전까지 오디세우스라고 하면 트로이 목마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보고 난 뒤에는 오히려 그 장면이 가장 덜 중요하게 느껴진다.
전쟁에서 어떻게 이겼는가 보다 전쟁이 끝난 뒤 어떻게 자기 삶으로 돌아왔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승리는 한순간이다.
돌아오는 데는 10년이 걸린다.
나는 그 차이가 좋다.
인생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은 의외로 짧다. 합격하는 날도 하루고, 헤어지는 날도 하루고, 어떤 관계를 끝내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도 길지 않다.
그다음이 길다.
결정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는지가 훨씬 어렵다.
그래서 내게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무너뜨린 사람이기보다 끝내 이타카로 돌아간 사람으로 남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 번 사고를 치고, 쓸데없이 자기 이름을 자랑하고, 유혹에 흔들리고, 동료들을 잃는다.
완벽해서 영웅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데도 끝까지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영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부분은 이상하게 지금의 내 삶과도 겹쳐 보인다.
나 역시 살면서 사람 때문에 방향을 잃은 적이 있고, 혼자 있는 것이 싫어서 불편한 관계를 붙잡았던 적도 있다. 반대로 상처를 받고 난 뒤에는 혼자가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 시간도 있다.
예전에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돌아오는 과정.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어떤 관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지를 알게 되는 데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떠돌면서 계속 이타카를 기억했듯 사람도 결국 자기 삶에서 돌아갈 좌표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꼭 사람이거나 장소일 필요도 없다.
나에게는 내가 편안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그런 곳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디세이아》를 보고 난 뒤 내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거대한 트로이 목마도, 외눈박이 괴물도, 세이렌의 노래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지나고도 집으로 돌아가려는 한 사람이다.
영웅은 전쟁터에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전쟁터에서는 다른 사람을 이기면 된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자기 자신을 견뎌야 한다.
아마 그래서 오디세우스에게 트로이 전쟁 10년만큼이나 귀향의 10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보다, 그렇게 엉망으로 길을 헤매고도 끝내 자기 집의 문 앞에 도착한 오디세우스가 훨씬 마음에 든다.
완벽한 사람의 승리보다 많이 흔들린 사람이 결국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내게는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기억한다면 나는 이렇게 적어 두고 싶다.
영웅은 멀리 떠난 사람이 아니라, 수없이 길을 잃고도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끝내 잊지 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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