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러지 않기로 했는데
엄마가 서하 누나한테 무슨 말을 한 거지.
도훈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다시 물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소용없을 것 같았다.
조금 전에도 몇 번이나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별거 아니야.
너는 몰라도 돼.
그리고 마지막에는,
도진이한테 말하지 마.
그 말이 가장 걸렸다.
정말 별일이 아니었다면 굳이 형에게 숨길 이유가 없었다.
도훈은 휴대폰을 꺼냈다.
서하에게 연락할까.
한참 메시지 창만 바라봤다.
[누나.]
두 글자를 썼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오늘 우리 엄마 만났어요?]
그것도 지웠다.
괜히 자신이 끼어드는 게 맞나 싶었다.
서하가 먼저 말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분명 도진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형에게는.
자신에게 서하와 연락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도훈은 피식 웃었다.
"뭐 이런 걸 말장난까지 하고 있냐."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오늘은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
다음 날.
건축학과 전공 수업이 끝난 뒤 도훈은 유찬성과 함께 강의실을 나왔다.
"밥?"
찬성이 물었다.
"응."
"학식?"
"아무거나."
"너 요즘 왜 맨날 아무거 나냐."
"그럼 네가 골라."
"제일 싫은 유형이네."
도훈이 웃었다.
"먹기 싫으면 말고."
"아니, 먹을 건데."
두 사람은 계단을 내려왔다.
찬성이 옆에서 오늘 제출한 과제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도훈은 절반도 듣지 못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훑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회관 앞을 지나던 순간,
익숙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서하였다.
혼자였다.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도훈의 걸음이 느려졌다.
찬성이 몇 걸음 앞서가다 뒤를 돌아봤다.
"뭐 해?"
"... 찬성아."
"왜."
"너 먼저 먹어."
"갑자기?"
"볼일 좀 생겼어."
찬성이 도훈의 시선을 따라갔다.
서하를 발견한 순간 바로 표정이 달라졌다.
"아."
"... 뭔 아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 얼굴이 말하고 있거든."
찬성이 씩 웃었다.
"알았다. 간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난 아무 생각도 안 했어."
"했잖아."
"안 했다니까."
찬성은 손을 흔들며 먼저 걸어갔다.
도훈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갈까.
말까.
어제도 같은 고민을 했다.
결국 이번에는 서하에게 다가갔다.
"누나."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도훈을 발견하자 표정이 밝아졌다.
"도훈아."
평소와 똑같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혼자 뭐 해요?"
"도진이 기다려."
"형 수업 아직 안 끝났어요?"
"응. 조금 있으면 끝나."
도훈이 서하 옆에 앉았다.
"너는?"
"저도 끝났어요."
"찬성이랑 같이 있지 않았어?"
"봤어요?"
"응. 저기 지나가던데."
"배고프다고 먼저 갔어요."
정확히는 자신이 보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서하는 다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도훈은 그런 서하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웃을 때도 똑같았고,
목소리도 똑같았다.
그런데 어제 멀리서 봤던 모습이 자꾸 겹쳤다.
혼자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던 뒷모습.
"누나."
"응?"
"어제."
서하의 손이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봤다.
"어제 왜?"
서하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도훈은 잠시 서하를 바라봤다.
"우리 엄마 만났죠?"
서하의 표정이 굳었다.
"... 봤어?"
역시.
도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어디서?"
"카페 근처에서요."
"..."
"누나 가는 것도 봤어요."
서하는 시선을 피했다.
도훈이 물었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요?"
"별말 안 하셨어."
도훈의 미간이 좁아졌다.
"누나."
"왜."
"그건 우리 엄마가 어제 한 말이랑 똑같은데."
서하가 도훈을 바라봤다.
"엄마도 별거 아니라고 했어요."
"..."
"근데 별거 아닌 사람들 표정이 둘 다 왜 그랬는데요."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훈이 몸을 조금 돌려 서하를 마주 봤다.
"진짜 무슨 일 있었어요?"
"없었어."
"거짓말."
서하가 피식 웃었다.
"너 언제부터 사람 표정 그렇게 잘 읽었어?"
"원래 잘 읽어요."
"그래?"
"누나 표정은 특히."
말이 먼저 나왔다.
도훈은 순간 멈칫했다.
서하 역시 눈을 깜빡였다.
도훈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 형 때문에 많이 봐서 그렇다는 뜻이에요."
"뭐야."
서하가 웃었다.
"괜히 놀랐네."
도훈도 따라 웃었다.
다행이었다.
서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늘 그랬듯이.
도훈은 잠시 바닥을 내려다봤다.
"형한테 말 안 했죠?"
이번에는 서하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왜 안 했어요?"
"굳이."
"굳이?"
"좋은 얘기도 아닌데 뭐 하러 말해."
도훈의 표정이 굳었다.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가 형이랑 헤어지라고 했어요?"
서하가 놀란 눈으로 도훈을 바라봤다.
"... 너."
그 반응만으로 충분했다.
도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진짜 그랬구나."
"도훈아."
"엄마가 진짜 누나한테 형이랑 헤어지라고 했어요?"
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 좀 낮춰."
"아니, 어떻게..."
"도훈아."
서하가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자 도훈은 입을 다물었다.
서하는 주변을 한번 살폈다.
다행히 가까이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거 아니야."
"헤어지라고 했다면서 뭐가 안 심각해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뭐가요."
도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형이 누나 좋아하고 누나도 형 좋아하는데."
"..."
"둘이 알아서 잘 만나고 있는데 왜 엄마가 헤어지라고 해요."
서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걱정되시나 봐."
"뭐가."
"우리 아직 어리잖아."
"그게 이유예요?"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훈은 금방 알아챘다.
"그게 다가 아니구나."
"..."
"또 뭐라고 했어요?"
"그만 물어."
"누나."
"도훈아."
이번에는 서하의 목소리가 조금 단호했다.
"정말 괜찮아."
도훈은 답답했다.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데 계속 괜찮다고 했다.
"누나는 왜 자꾸 괜찮다고 해요?"
서하가 도훈을 바라봤다.
"그럼 어떡해."
"형한테 말해야죠."
"싫어."
대답은 생각보다 빨랐다.
"왜요?"
"말하면 도진이가 어떻게 할 것 같아?"
도훈은 입을 다물었다.
안 봐도 뻔했다.
도진은 화를 낼 것이다.
그것도 크게.
자기 몰래 서하를 불러 헤어지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말해야죠."
"그래서 둘이 싸우게?"
"..."
"난 싫어."
서하가 작게 말했다.
"나 때문에 도진이랑 어머니가 싸우는 거."
"누나 때문이 아니잖아요."
"결국 이유는 나잖아."
"그건 다르죠."
도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누나가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고, 헤어지라고 한 것도 엄마잖아요."
"..."
"왜 그게 누나 때문이에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훈은 그런 서하를 바라보다가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형이 알 권리도 있잖아요."
"알아서 뭐가 좋아."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죠."
그 말에 서하가 도훈을 바라봤다.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형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예전의 도진이라면 아마 서하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상대가 알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
싸움이 날 것 같아서.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러니까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게 두 사람 사이를 얼마나 여러 번 망가뜨렸는지도 도훈은 알고 있었다.
"누나."
"응."
"형이 예전에 왜 누나한테 혼났는데요."
서하가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형도 맨날 그랬잖아요."
"..."
"말하면 누나가 싫어할 것 같아서 안 했다고."
서하의 표정이 조금씩 굳었다.
"소개팅도."
"..."
"군대 가는 것도."
도훈은 잠시 말을 멈췄다.
"클럽 갔던 것도."
서하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거랑 이거랑 같아?"
"완전히 같다는 건 아니죠."
"그런데요."
도훈이 서하를 바라봤다.
"상대방이 알면 싫어할 것 같으니까 내가 알아서 숨긴다는 건 똑같잖아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아팠다.
도진에게 그렇게 화를 냈던 자신이었다.
왜 혼자 결정하냐고.
왜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까지 혼자 정하냐고.
그런데 지금 자신도 똑같은 이유를 대고 있었다.
도진이 알면 화낼 테니까.
어머니와 싸울 테니까.
그러니까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 오늘 왜 이렇게 말 잘해."
도훈이 피식 웃었다.
"원래 잘해요."
"아닌데."
"너무하네."
서하도 작게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아."
도훈의 표정이 다시 진지해졌다.
"왜요?"
"그냥."
서하는 잠시 생각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
"..."
"어머니가 하신 말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도훈은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그 마음까지 자신이 결정할 수는 없었다.
"알았어요."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대신."
도훈이 말했다.
"계속 혼자 끌고 가지는 마요."
"..."
"형한테 말하기 싫으면 오늘 당장 안 해도 되는데."
도훈은 잠시 머뭇거렸다.
"적어도 혼자서 다 감당하려고 하지는 말아요."
서하는 도훈을 가만히 바라봤다.
평소에는 웃고 장난치는 모습만 많이 봤다.
그래서 가끔 잊는다.
도훈도 이제 스무 살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많이 컸네, 한도훈."
"제가 애예요?"
"나한테는 좀."
"두 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요."
"두 살이나 차이 나거든."
"와, 꼰대."
"뭐?"
서하가 웃으며 도훈의 팔을 툭 쳤다.
도훈도 웃었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마음 한편은 무거웠다.
서하가 웃으니까 좋았다.
그런데 그 웃음을 만든 사람이 자신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바로 뒤따랐다.
서하가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잠시 후,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냐, 둘이."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도진이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형."
도훈이 먼저 불렀다.
도진이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너 왜 여기 있어?"
"학교니까 있지."
"건축대 반대쪽이잖아."
"산바카라."
"네가?"
"왜. 나도 걸어요."
도진이 의심스럽다는 듯 동생을 바라봤다.
"둘이 무슨 얘기했는데."
순간,
도훈과 서하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도진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뭔데."
"아무것도 아니야."
서하가 먼저 대답했다.
도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도훈은 서하를 바라봤다.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상대방이 알면 싫어할 것 같으니까 내가 알아서 숨긴다는 건 똑같잖아요.
하지만 이건 서하가 말해야 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대신 말할 수는 없었다.
도훈은 일부러 웃었다.
"형 욕했어."
"뭐?"
"누나한테 형이 어릴 때 얼마나 재수 없었는지 알려주고 있었는데."
"야, 한도훈."
"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사실이잖아."
서하가 두 사람을 바라보다 웃었다.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도진도 더 묻지 않았다.
"밥 먹었어?"
서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가자."
"어디?"
"너 어제 파스타 먹고 싶다며."
"기억했어?"
"그걸 왜 까먹어."
도진이 자연스럽게 서하의 손을 잡았다.
도훈의 시선이 잠시 두 사람의 맞잡은 손에 머물렀다.
도진이 그제야 동생을 돌아봤다.
"너도 갈래?"
도훈은 잠시 망설였다.
평소 같으면 따라갔을 것이다.
"됐어."
"왜."
"찬성이 기다려."
"아까 먼저 밥 먹으러 갔다며."
서하가 말했다.
도훈이 멈칫했다.
"... 누나 그걸 기억해요?"
"방금 들었는데 당연히 기억하지."
도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진짜 둘이 뭔 얘기 했어?"
"아, 몰라."
도훈이 가방끈을 고쳐 멨다.
"나 간다."
"야."
"데이트나 해."
도훈은 두 사람에게 등을 돌렸다.
몇 걸음 걸어가다 뒤를 돌아봤다.
도진과 서하는 이미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도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서하가 웃었다.
도진도 웃었다.
평범한 연인이었다.
도훈은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서하가 형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서하에게 직접 들었다.
좋아해. 많이.
결국 다시 도진이더라.
그 말을 들었을 때도 씁쓸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감정이 더 컸다.
걱정됐다.
어머니가 여기서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도훈은 자신의 어머니를 잘 알았다.
한번 마음에 걸린 일은 쉽게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도진 역시 잘 알았다.
형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라면 평소보다 훨씬 고집스러워졌다.
둘이 정면으로 부딪히면 어떻게 될지 뻔했다.
그 사이에 서하가 끼게 될 것이다.
도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찬성이었다.
[야 한도훈]
[볼일 5분이라며]
[나 밥 다 먹음]
도훈이 피식 웃었다.
[미안]
곧 답장이 왔다.
[여자냐]
도훈은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답장을 썼다.
[아니.]
보내고 나서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서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형 여자친구.
그게 가장 정확했다.
그리고 자신은 동생이었다.
그 선을 넘을 생각은 없었다.
도훈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거실에 있었다.
"왔어?"
"응."
도훈은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방으로 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엄마."
"응?"
"나 오늘 서하 누나 봤어."
어머니의 손이 멈췄다.
"어디서?"
"학교에서."
"... 그래?"
"응."
도훈은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 신경 쓰고 있었다.
"엄마."
"왜."
"누나한테 형이랑 헤어지라고 했지?"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잠깐의 침묵.
"서하 학생이 말했어?"
"그게 중요해?"
"내가 너한테 도진이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형한테 말 안 했어."
"그럼 됐어."
어머니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도훈은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안 됐는데."
어머니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뭐?"
"엄마가 왜 둘이 헤어질지 말지를 정해."
"도훈아."
"형 스물두 살이야."
"알아."
"서하 누나도 스물두 살이고."
"..."
"둘 다 애 아니잖아."
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너는 모르는 일이야."
"뭘 몰라."
"결혼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야."
도훈은 어머니를 바라봤다.
"엄마가 서하 누나 싫어하는 이유가 뭐야?"
"싫어한다고 안 했어."
"싫지도 않은데 헤어지라고 해?"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훈은 그 침묵이 더 답답했다.
"엄마."
"그만하자."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다."
도훈은 물러서지 않았다.
"형 알면 진짜 가만히 안 있을걸."
어머니의 걸음이 멈췄다.
"그러니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 말에 도훈의 표정이 굳었다.
어머니는 잠시 도훈을 바라보다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도훈만 거실에 남았다.
한동안 닫힌 방문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형에게 들키지 않으면 되는 일처럼 말하는 게.
도훈은 문득 불안해졌다.
오늘 서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여기서 멈출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았다.
도훈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도진의 이름을 찾았다.
통화 버튼 바로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말해야 하나.
하지만 서하는 아직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먼저 말하면 서하의 선택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도훈은 결국 화면을 껐다.
그리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형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었다.
서하에게도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머니가 다시 서하를 힘들게 한다면,
그때는 모른 척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도훈은 닫힌 어머니의 방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형과 서하 사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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