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얼굴, 다른 광기

한 남자는 죽은 여자를 찾고, 한 남자는 살아 있는 여자를 무너뜨린다

byHelia

두 남자가 하린의 양팔을 붙잡아 억지로 일으킨다.

하린의 다리는 이미 힘이 풀려 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끌려가자 맨발이 차가운 바닥을 스친다. 형광등 아래로 세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놔…….”

하린이 팔을 비틀어보지만 소용없다.

한 남자가 손목을 더욱 세게 움켜쥔다.

“가만히 있어.”

“싫어. 놓으라고!”

하린의 목소리가 텅 빈 격리실에 부딪혀 되돌아온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두꺼운 방음문 너머로는 복도의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얀 벽과 바닥,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침대 하나. 천장 구석에는 CCTV가 붙어 있다.

그리고 벽 가까이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차도현은 그곳에 앉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손에 든 것도 없다.

그저 하린을 바라본다.

그게 오히려 더 끔찍하다.

“도현아.”

하린이 그를 부른다.

차도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도현아, 저 사람들 보내.”

대답이 없다.

하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제발.”

그제야 차도현이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인다.

하린은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머리가 엉킨다.

권도현.

2년 동안 사랑한 남자.

태성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전무였던 남자.

정장을 입고 회사 복도를 걷던 남자.

자신이 화를 내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 옆에 남아 있던 남자.

그 권도현과 눈앞의 남자는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눈.

코.

입술.

웃을 때 한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는 버릇까지.

처음 정신병원에서 차도현을 마주쳤을 때 하린은 자신이 정말 미친 줄 안다.

권도현이 왜 여기 있지?

그 생각부터 한다.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는다.

“오빠.”

차도현은 자신을 내려다보다 묻는다.

“누구세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무너진다.

목소리까지 비슷하다.

그런데 권도현이 아니다.

차도현.

같은 이름.

다른 성.

그리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닮은 사람 하나쯤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아니다.

얼굴만 보면 가족조차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똑같다.

하린은 그 얼굴 때문에 차도현에게 가까이 간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선택을 후회한다.

“도현아.”

하린이 다시 부른다.

차도현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느 도현?”

하린이 굳는다.

차도현은 그 반응을 즐긴다.

“나?”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아니면 그 새끼?”

“…….”

“권도현.”

그 이름이 떨어지는 순간 하린의 얼굴이 굳는다.

차도현이 웃는다.

“또 나 보면서 걔 생각했지?”

“아니야.”

“거짓말.”

“아니라고.”

“너 처음부터 그랬잖아.”

차도현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나 처음 봤을 때도 오빠라고 했잖아.”

한 걸음.

“내 얼굴 보고 울었잖아.”

다시 한 걸음.

“내 손까지 잡았잖아.”

하린이 뒤로 물러나려고 하지만 양팔이 붙잡혀 움직일 수 없다.

차도현이 하린 앞에 선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하린은 그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권도현 같다.

너무 똑같다.

그래서 더 싫다.

“보지 마.”

하린이 고개를 돌린다.

차도현이 웃는다.

“왜?”

“네 얼굴 보기 싫어.”

“진짜?”

“응.”

“그런데 처음에는 좋아했잖아.”

“착각했으니까.”

차도현의 웃음이 사라진다.

하린은 그 변화를 바로 알아챈다.

이 남자는 감정의 속도가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 웃다가도 순식간에 표정이 사라진다.

화를 낼 것 같은 순간 갑자기 다정해지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다가 돌연 폭발한다.

같은 병동에 있던 환자들이 차도현을 피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

차도현이 낮게 묻는다.

“내가 걔 대신이었어?”

하린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해.”

“…….”

“내가 권도현 대신이었냐고.”

“너도 나 이용했잖아.”

차도현의 눈이 멈춘다.

“뭐?”

하린이 그를 똑바로 바라본다.

두려워도 이번에는 피하지 않는다.

“너도 내가 망가진 거 아니까 접근했잖아.”

“…….”

“정상적인 사람은 너 상대 안 해주니까.”

차도현의 턱이 굳는다.

하린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한테 온 거잖아.”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옆에 있던 남자들조차 차도현의 눈치를 본다.

하린은 안다.

건드렸다.

이 남자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차도현이 웃는다.

그런데 눈은 웃지 않는다.

“계속해봐.”

하린은 입을 다문다.

“왜. 잘하더니.”

차도현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다.

“계속해.”

“싫어.”

“하린아.”

그가 처음으로 하린의 이름을 부른다.

권도현과 똑같은 목소리다.

하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차도현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봐.”

“…….”

“또 흔들리잖아.”

하린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내가 걔처럼 말하면 네 눈부터 달라져.”

“닥쳐.”

“하린아.”

“닥치라고!”

하린이 소리를 지른다.

차도현이 웃는다.

하린은 그 웃음을 보는 순간 깨닫는다.

일부러다.

자신이 권도현을 잊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같은 말투를 흉내 낸다.

같은 표정을 짓는다.

같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너 미쳤어.”

하린이 말한다.

차도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알아.”

“…….”

“그래서 여기 있잖아.”

그 한마디에 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차도현이 손짓한다.

두 남자가 하린을 안쪽으로 끌고 간다.

하린이 다시 몸부림친다.

“놔!”

차도현은 멈추라고 하지 않는다.

“도현아!”

하린이 소리친다.

차도현의 시선이 따라온다.

“차도현!”

이번에는 정확한 이름을 부른다.

그가 멈춘다.

하린도 숨을 몰아쉰다.

“제발.”

목소리가 작아진다.

“이러지 마.”

잠깐.

차도현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흔들린다.

그러나 너무 짧아 하린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차도현은 다시 무표정해진다.

“늦었어.”

남자들이 하린을 데려간다.

안쪽 문이 닫힌다.

철컥.

그 뒤의 일은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격리실 바깥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차도현은 홀로 의자에 앉는다.

천장의 형광등이 낮게 웅웅거린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손가락을 폈다가 다시 쥔다.

이상하다.

분명 화가 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 감정도 없다.

하린이 자신을 권도현의 대용품으로 본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싫다.

그런데 동시에 재미있다.

자신을 볼 때마다 하린의 눈에 다른 남자가 비친다는 사실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가 있다는 것도.

권도현.

차도현은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뇐다.

태성그룹 회장의 아들.

전무.

돈도 있다.

권력도 있다.

정상적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남자.

그리고 자신과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

차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벽에 붙은 작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그는 한동안 거울을 바라본다.

그러다 피식 웃는다.

“권도현.”

마치 처음 듣는 자신의 이름처럼 중얼거린다.

“넌 대체 뭐 하는 새끼냐.”

*

그리고 그 시각.

권도현은 산 아래에 서 있다.

정신병원의 하얀 형광등과는 전혀 다른 어둠이다.

오래된 암자 앞.

스님이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말한다.

“찾지 마십시오.”

권도현의 표정은 굳어 있다.

“이유가 뭡니까.”

스님은 대답하지 않는다.

걸음을 옮기며 낮게 중얼거린다.

“나무아미타불…….”

염주가 부딪치는 소리가 어둠 속으로 멀어진다.

권도현은 홀로 남는다.

오늘만 세 번째다.

아니.

이제 몇 번째인지 세지도 않는다.

무당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오예은은 죽었다고.

첫 번째 무당은 예은의 사주를 받아 들자마자 단정한다.

“죽었네.”

권도현은 믿지 않는다.

“시신을 본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러자 무당이 기가 막힌다는 듯 되묻는다.

“시신을 봐야 알아?”

“죽었다는 증거가 있어야죠.”

“사주가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죽었다고.”

권도현은 비웃는다.

“사주가 사람 생사까지 압니까?”

무당은 화를 낸다.

“사주는 거짓말 안 하지.”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친다.

“내가 이 바닥에서 오십 년이야.”

권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그때 무당이 말한다.

“그리고 너.”

권도현이 멈춘다.

“이 여자 너 하나 잘못 만나서 죽은 거야.”

그 말만큼은 그냥 넘기지 못한다.

“말조심하십시오.”

“왜. 찔려?”

“모르는 사람 인생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내가 모르는 게 아니라 네가 모르는 거야.”

무당이 오예은의 사주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이 여자는 너 만나면서 팔자가 다 망가졌어.”

“그만하시죠.”

“찾지 마.”

“…….”

“죽었으니까 찾지 말고.”

무당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만에 하나 살아 있어도 찾지 마.”

권도현의 눈빛이 달라진다.

“방금 죽었다면서요.”

“죽었어.”

“그런데 살아 있어도 찾지 말라?”

“그래.”

무당이 권도현을 똑바로 바라본다.

“네가 또 망가뜨릴 테니까.”

그 뒤로 찾아간 곳에서도 말은 같다.

죽었다.

찾지 마라.

끝난 인연이다.

놓아줘라.

마지막으로 찾아온 스님마저 같은 말을 한다.

찾지 마십시오.

파멸할 겁니다.

또 부술 겁니다.

그런데 권도현은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빛이 더 단단해진다.

“파멸?”

낮게 중얼거린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그런 건 상관없어.”

차 문을 연다.

운전석에 앉는다.

조수석에는 오예은의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권도현이 사진을 집어 든다.

사진 속 예은은 카메라를 막으려고 손을 뻗고 있다.

얼굴 절반이 가려져 있다.

좋은 사진도 아니다.

그런데 버리지 못한다.

권도현은 사진을 한참 바라본다.

“다 죽었다고 하네.”

대답은 없다.

당연하다.

사진이니까.

“너 진짜 죽었어?”

그가 묻는다.

이번에도 대답은 없다.

권도현은 사진을 조수석에 내려놓는다.

시동을 건다.

무당이 오십 년을 이 바닥에서 살았든 백 년을 살았든 상관없다.

사주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도 상관없다.

스님이 파멸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자신이 확인해야 한다.

오예은이 정말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그리고 정말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인지.

차가 어둠 속으로 출발한다.

권도현은 모른다.

같은 시각 정신병원 어딘가에서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가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을.

차도현 역시 모른다.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하기 시작한 권도현이 죽은 여자 하나를 찾아 미친 듯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한쪽에는 정하린이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얼굴을 한 미치광이에게 붙잡혀 있는 여자.

다른 한쪽에는 오예은이 있다.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권도현이 끝내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여자.

그리고 그 두 여자 사이에,

똑같은 얼굴을 가진 두 남자가 있다.

차도현.

권도현.

한 남자는 거울 속에서 다른 남자를 찾기 시작한다.

다른 남자는 죽은 여자에게서 살아 있다는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아직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다.

하지만 이미 각자의 세계 한가운데에는 상대의 이름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언젠가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마주 보는 순간,

누가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남게 될 것이다.

둘 중 누가 더 미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