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무관심

전쟁터를 바꾼 것은 총이 아니라 물과 비누, 그리고 한 사람의 고집이다

byHelia

역사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보인다. 사람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적군이 아니다. 누구도 바카라임지지 않는 체계다. 지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자기 담당이 아니라며 돌아서는 사람들,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창고 문을 잠가 두는 행정이다.

《벌거벗은 세계사》 272회 〈전쟁의 판도를 바꾸다! 크림전쟁과 나이팅게일〉을 보면서 내가 가장 섬뜩하게 느낀 것도 바로 그것이다. 크림전쟁은 현대식 무기와 새로운 통신기술이 등장한 전쟁이다. 그런데 정작 전쟁터의 병사들은 총탄보다 더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 간다. 부상을 입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오염된 물을 마시고, 배설물과 악취가 뒤섞인 공간에 누워 있다가 감염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무기는 현대화되는데 사람을 살리는 체계는 한참 뒤에 머물러 있다.

이 모순이 너무 끔찍하다.

사람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죽이는 기술은 발전하는데 다친 사람에게 깨끗한 물 한 그릇을 건네는 일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쟁의 판도를 바꾼다는 말은 보통 강력한 무기나 뛰어난 전략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방송이 보여 주는 변화의 중심에는 총도 대포도 없다. 물과 비누, 깨끗한 침구와 환기, 통계표가 있다. 그리고 그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 싸우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있다.

나는 나이팅게일이라는 이름을 아주 오래전부터 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교과서에서 ‘백의의 천사’라는 표현과 함께 배운다. 밤마다 등불을 들고 부상병을 돌보는 헌신적인 간호사.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아 주고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환자를 간호한 따뜻한 여성. 내가 알고 있던 나이팅게일은 대체로 그런 이미지 안에 머물러 있다.

물론 그 모습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 사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천사’라는 말이 나이팅게일이 실제로 해낸 일을 지나치게 부드럽게 덮어 버린다는 생각이 든다. 천사는 희생하고 헌신한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희생만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관찰하고 기록하고 따지고 요구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고, 필요한 물자가 든 창고가 열리지 않으면 망치까지 든다. 누군가 허락해 주기를 얌전히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 사람이 죽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이 좋다. 아주 많이 좋다.

사람을 살리는 일 앞에서 지나치게 공손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 잘못된 체계와 무능한 행정 앞에서 예쁘고 얌전하게만 행동하지 않는 모습. 나이팅게일은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고집이 세고 단호하며 때로는 주변 사람을 질리게 할 만큼 집요하다. 그런데 바로 그 성격이 수많은 생명을 살린다. 세상은 여성이 순종적이고 조용하기를 바라지만, 전쟁터에는 얌전한 천사보다 문을 부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크림전쟁은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충돌에서 출발해 영국과 프랑스 등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으로 확대된다. 여러 강대국이 종교와 세력 균형, 해상 진출권과 국익을 앞세운다. 명분은 그럴듯하게 포장되지만 전장에 끌려간 병사들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지도를 펴 놓고 국경과 영향력을 논하는 동안, 평범한 병사들은 진흙탕을 걷고 추위에 떨며 배고픔과 질병을 견딘다.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과 전쟁에서 죽는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은 늘 불쾌하다. 결정권자는 명예와 승리를 말하지만 병사에게 전쟁은 젖은 군복과 썩은 음식, 곪은 상처와 끊임없는 설사다. 국가의 자존심이라는 말은 거창한데, 그 자존심을 지키겠다며 데려간 사람들에게 깨끗한 잠자리조차 제공하지 못한다. 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묻게 된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병사를 소모품처럼 쓰면서 무엇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는가.

크림전쟁은 현대전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철도와 전신, 증기선과 새로운 무기가 활용되고 종군기자가 전장의 참상을 본국에 전한다. 이전의 전쟁에서는 전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국민이 바로 알기 어렵다. 그러나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쟁의 실상이 빠르게 전달된다. 정부가 말하는 영광스러운 전쟁과 실제 전장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 사이의 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변화도 흥미롭다. 기술은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지만, 동시에 감춰진 죽음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데도 사용된다. 권력이 보여 주고 싶은 장면만 보여 주던 시대에 종군기자의 기록은 불편한 창문을 연다. 병사들이 전투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과 질병으로 죽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움직인다. 감춰진 고통은 개인의 불운으로 끝나기 쉽지만, 기록된 고통은 슬롯가 대답해야 할 질문이 된다.

어쩌면 나이팅게일의 가장 강력한 무기도 기록이다.

그는 단순히 환자 곁에 앉아 위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지, 그들이 무엇 때문에 죽는지를 숫자로 남긴다. 전투에서 입은 상처보다 비위생적인 환경과 감염병 때문에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자료로 보여 준다. 말로만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했다면 권력자들은 감상적인 주장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숫자는 변명을 어렵게 만든다. 몇 명이 들어왔고, 몇 명이 죽었으며, 위생 상태를 개선한 뒤 사망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제시하면 더는 외면하기 힘들어진다.

나는 이 부분에서 나이팅게일을 새롭게 본다. 그에게 따뜻한 마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차가운 숫자를 다룰 줄 아는 능력도 있다. 따뜻한 마음과 냉정한 증거가 함께할 때 비로소 체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문제를 바꾸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증명하고, 누구에게 바카라임이 있는지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이팅게일을 ‘백의의 천사’보다 ‘집요한 개혁가’라고 부르고 싶다. 천사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너무 편리하다. 한 여성이 수많은 반대와 편견을 뚫고 전문성을 쌓고, 군대와 병원 행정의 문제를 파악하고, 자료를 만들어 제도 개선을 요구한 과정을 모두 개인적인 희생정신으로만 설명해 버리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을 잘 돌보는 존재이니 나이팅게일도 타고난 모성으로 환자를 간호했다는 식의 해석은 그의 성취를 오히려 축소한다. 그는 단순히 마음씨 좋은 여성이 아니다. 훈련받은 간호 인력을 조직하고, 위생과 급식, 세탁과 병동 운영을 점검하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의료제도의 문제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전문가다. 간호를 착한 여성이 하는 봉사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이 필요한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나는 누군가의 노력을 칭찬하면서 그 사람을 천사라고 부르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천사라는 말에는 이상한 함정이 있다. 인간이라면 견디기 힘든 희생을 마치 그 사람의 본성인 것처럼 만든다. 밤을 새우고, 아픈 사람을 돌보고, 불합리한 일을 대신 처리해도 “원래 좋은 사람이니까”라는 말로 넘어간다. 그렇게 개인의 헌신을 찬양하는 동안 정작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나이팅게일이 위대한 이유는 혼자 모든 환자를 돌봤기 때문이 아니다. 한 사람의 초인적인 희생에 의존하지 않아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깨끗한 병동과 체계적인 간호, 훈련받은 인력과 정확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슬롯에 납득시킨다. 영웅 한 명이 밤마다 등불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누구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드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방송을 보면서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수많은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죽음도 있겠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기본적인 위생을 지켰다면 살 수 있었던 사람도 많다. 전쟁이니까 사람이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 뒤에 너무 많은 무능과 무바카라임이 숨어 있다. 전투에서 총을 맞고 죽은 병사는 영웅으로 기록되지만, 더러운 병상에서 감염병으로 죽은 병사는 쉽게 숫자가 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은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이며 남편이고 친구다. 집으로 돌아갈 날짜를 세며 버티던 사람이다. 적군의 총알은 피했지만 자기 나라가 마련한 병원에서 죽는다. 이보다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크림전쟁을 보며 지금의 현실도 떠올린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사람을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은 종종 문제 그 자체보다 그것을 처리하는 체계다. 분명히 아픈데 담당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같은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하고,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받는다. 모든 사람은 자기 절차를 지켰다고 말하지만 그 사이에서 한 사람은 계속 아프다. 바카라임이 여러 곳으로 나뉘면 결국 아무도 바카라임지지 않는다.

나이팅게일이 망치를 든 장면이 유난히 통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평소 규칙을 잘 지키는 편이다. 괜히 문제를 만들기 싫고, 큰소리를 내는 것도 피곤하다. 하지만 규칙이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필요한 물건을 가로막는다면 그 규칙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창고의 물자는 보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기 위해 존재한다. 서류가 생명보다 앞설 수는 없다.

물론 나이팅게일 한 사람만으로 크림전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적 변화는 언제나 여러 사람의 노동과 슬롯적 조건이 함께 만든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간호사와 의료진, 병사들을 도운 수많은 사람도 있다. 한 명의 영웅만 남기면 역사는 이해하기 쉬워지지만, 그만큼 많은 존재가 지워진다. 방송이 나이팅게일을 중심에 세우더라도 나는 그 뒤에서 함께 병동을 닦고 환자를 씻기고 옷과 침구를 정리했을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이팅게일이라는 인물이 특별하게 남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눈앞의 환자를 돌보는 일과 제도를 바꾸는 일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늘 한 명을 살리는 동시에 내일 같은 이유로 수백 명이 죽지 않게 만들 방법을 찾는다. 감정에 머물지 않고 행동하며, 행동에 머물지 않고 기록하고, 기록에 머물지 않고 정바카라을 움직인다.

돌봄은 흔히 부드러운 것으로만 표현된다. 그러나 진짜 돌봄에는 분노가 필요할 때도 있다. 왜 이 사람이 이런 환경에 방치되어야 하는지 묻는 분노.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드는 구조를 참지 않는 분노. 나이팅게일의 돌봄에는 그 분노가 있다. 그래서 약하지 않다. 그의 등불이 따뜻함을 상징한다면, 손에 든 망치는 바카라임을 요구하는 의지를 상징한다.

나는 등불보다 망치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등불을 든 나이팅게일은 익숙하다. 망치를 든 나이팅게일은 낯설다. 그런데 그 낯선 모습이 훨씬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누군가를 살리려면 다정한 말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있다. 닫힌 문을 열어야 하고, 잘못된 명령에 맞서야 하며, 듣기 싫어하는 사람 앞에 불편한 숫자를 들이밀어야 한다.

《벌거벗은 세계사》의 크림전쟁 편은 전쟁이 얼마나 많은 신기술을 탄생시켰는지를 보여 주면서 동시에 묻는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도 함께 발전하는가. 더 빠른 통신과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진 슬롯가 반드시 더 많은 생명을 지키는가.

내 대답은 아니다.

기술은 저절로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 그것을 어디에 쓰는지 결정하는 사람과 제도가 필요하다. 크림전쟁은 현대전의 시작이지만, 인간을 살피는 시선이 따라오지 못한 현대화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전쟁이기도 하다. 발전이라는 말이 언제나 좋은 방향을 뜻하지는 않는다. 죽이는 기술만 앞서 나가고 살리는 바카라임이 뒤처진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더 효율적인 비극일 뿐이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나는 병원 복도를 걷는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생각한다. 어두운 밤, 등불 하나를 들고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 하지만 이제 그 장면은 예전처럼 마냥 성스럽고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 등불 아래에는 씻기지 않은 상처와 오염된 물, 부족한 식량과 무능한 행정이 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또 싸워야 하는 한 사람이 있다.

역사는 그를 천사로 기억하지만, 나는 인간으로 기억하고 싶다. 화를 내고, 고집을 부리고, 숫자를 모으고, 문이 열리지 않으면 망치를 드는 인간. 세상이 정해 놓은 여성의 자리를 거부하고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선택한 인간. 아픈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을 죽게 만든 원인을 끝까지 추적한 인간.

전쟁의 판도를 바꾼 것은 더 강한 무기만이 아니다. 죽어 가는 사람을 숫자로만 보지 않은 시선이다. 당연하다고 넘기던 죽음 앞에서 “이것은 당연하지 않다”라고 말한 목소리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거창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두가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는 사람. 닫힌 문 앞에서 돌아서지 않고 기어이 손에 망치를 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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