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결혼을 약속하다

결국 다시 도진이더라

byHelia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클럽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문이 열릴 때마다 거리까지 새어 나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뒤섞였다.

서하는 도진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화가 났는데, 이제는 화를 낼 힘조차 없었다.

"... 됐어."

서하가 돌아섰다.

도진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어디 가."

"집."

"서하야."

"오늘은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

도진이 서하의 앞을 막았다.

"잠깐만."

"비켜."

"내 말 좀 들어."

"무슨 말을 더 들어?"

서하가 도진을 올려다봤다.

"친구들이 갑자기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

"잠깐만 있다가 나오려고 했다고?"

"..."

"아니면 내가 싫어할 것 같아서 말 못 했다고?"

도진의 입이 다물렸다.

전부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서하가 허탈하게 웃었다.

"다 들었어."

"그러니까 이제 비켜."

"서하야."

"나 지금 너 얼굴 보고 있으면 더 화날 것 같아."

서하는 도진을 피해 옆으로 지나갔다.

도진이 다급하게 서하의 손목을 붙잡았다.

서하가 바로 돌아봤다.

"... 이거 놔."

도진의 손에 힘이 빠졌다.

곧바로 놓아주었다.

서하가 다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마."

서하의 걸음이 멈췄다.

도진 자신도 그 말을 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무서웠다.

지금 서하가 돌아서면 정말 끝날 것 같았다.

이미 두 번이나 겪었다.

처음에는 소개팅이었다.

자기가 거짓말했고,

서하를 잃었다.

두 번째는 군대였다.

상의 한마디 없이 혼자 입대를 결정했고,

또 서하를 잃었다.

그리고 지금.

또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도진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억울함이 사라졌다.

"... 미안해."

서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아까도 들었어."

"아니."

도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랑 다른 얘기야."

그제야 서하가 천천히 돌아봤다.

도진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변명하지 않았다.

"내가 계속 똑같이 했어."

"..."

"소개팅 때도."

서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군대 갈 때도."

도진이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도."

"네가 싫어할 것 같으면 말을 안 했어."

"말하면 싸울 것 같으니까 숨기고."

"내가 먼저 결정해 놓고, 나중에 들키면 미안하다고 하고."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상황이 다르니까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도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아니네."

"..."

"너한테는 계속 같은 일이었던 거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서하의 눈가가 붉어졌다.

소개팅이 문제가 아니었다.

군대가 문제가 아니었다.

클럽도 아니었다.

언제나 문제는 하나였다.

믿음이었다.

"왜 이제 알아."

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 미안."

"나 진짜 지쳤어."

"알아."

"아니. 넌 몰라."

서하가 결국 눈가를 닦았다.

"나 너랑 두 번이나 헤어졌어."

"..."

"두 번이나 다시 믿어보려고 했고."

"이번에는 정말 괜찮을 줄 알았어."

서하가 힘없이 웃었다.

"근데 또 이러잖아."

도진은 고개를 숙였다.

"나 이제 네가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무서워."

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다음에 또 똑같은 일이 생길까 봐."

서하는 한참을 망설였다.

"우리 그냥..."

도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다음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다.

"서하야."

도진이 다급하게 말을 잘랐다.

"잠깐만."

"..."

"그 말하기 전에 한 번만 들어줘."

도진은 한 걸음 다가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하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나 너랑 또 헤어지기 싫어."

"..."

"아니."

도진이 고개를 저었다.

"못 헤어지겠어."

서하의 눈에서 결국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건 네 마음이잖아."

"알아."

"내가 힘들면?"

"..."

"내가 이제 너 못 믿겠으면?"

도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믿게 만들게."

서하가 눈물을 닦던 손을 멈췄다.

"당장 믿어달라고 안 할게."

"..."

"말로만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도 안 할게."

도진이 서하를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보여줄게."

"얼마나 걸려도."

"네가 다시 나 믿을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어?"

"해야지."

"또 숨기고 싶어 지면?"

"말할게."

"내가 화낼 것 같아도?"

"응."

"싸우게 되더라도?"

도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응."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차라리 너랑 싸울게."

"..."

"거짓말하고 너 잃는 것보다 그게 나아."

서하는 울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도진도 작게 웃었다.

"맞잖아."

잠시 후 도진이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억지로 잡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서하는 한참 그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손을 도진의 손 위에 올렸다.

도진이 조심스럽게 그 손을 감싸 쥐었다.

"진짜 마지막이야."

"알아."

"또 거짓말하면."

서하가 도진을 바라봤다.

"그때는 진짜 끝이야."

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잠시 후 말했다.

"약속할게."

---

그날 이후 도진은 조금씩 달라졌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 날에는 먼저 말했다.

수업이 늦게 끝나면 연락했다.

태민이나 기호가 갑자기 놀러 가자고 해도 숨기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이런 메시지까지 왔다.

[기호가 술 먹자는데 가도 돼?]

서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다 피식 웃었다.

[내가 엄마야?]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아니.]

[근데 말하라고 했잖아.]

서하는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가.]

[대신 너무 늦지 마.]

[ㅇㅋ.]

그리고 정말 늦지 않게 들어갔다.

완벽하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끔 연락을 깜빡하기도 했고,

서하와 의견이 달라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그래도 숨기지는 않았다.

도진은 싸우더라도 말했고,

서하는 조금씩 다시 도진을 믿기 시작했다.

---

며칠 뒤.

도진과 서하는 학교 근처 식당에서 도훈을 만났다.

"형이 밥 산다고?"

자리에 앉자마자 도훈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진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왜. 내가 밥 사는 게 그렇게 이상해?"

"응."

서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좀 이상한데."

"너까지 왜 그래."

도훈이 메뉴판을 펼쳤다.

"마음 바뀌기 전에 비싼 거 먹어야겠다."

"적당히 해."

"형이 산다며."

"내가 언제 마음껏 먹으랬냐."

도훈이 서하를 바라봤다.

"누나, 봤지?"

"응. 사람이 말을 금방 바꾸네."

"둘이 아주 죽이 잘 맞는다."

도진이 혀를 차자 서하와 도훈이 동시에 웃었다.

음식이 나오고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수업 이야기.

과제 이야기.

도훈이 밤새 만든 건축 모형이 망가져 다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서하는 안타까워했고, 도진은 옆에서 웃었다가 동생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한참 밥을 먹던 중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도훈이 바로 말했다.

"계산하고 도망가는 거 아니지?"

"진짜 맞을래?"

도진이 도훈의 뒤통수를 가볍게 툭 치고 지나갔다.

"아, 왜 때려."

서하가 웃었다.

"너희 진짜 친하다."

"저게 친해 보여?"

"응."

"누나 눈에 문제가 있네."

"왜. 보기 좋은데."

도훈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도훈이 무심한 척 물었다.

"누나."

"응?"

"누나는 아직도 형 좋아해?"

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그냥 궁금해서."

서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무슨 그런 말이 어딨 어."

"왜."

"사귀고 있는데 당연히 좋아하지."

"둘이 그렇게 싸우는데도?"

서하가 잠시 도훈을 바라봤다.

"너 다 들었어?"

"대충."

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형이 말했어."

"별 걸 다 말하네."

"그러니까 궁금하지."

도훈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직도 그렇게 좋아해?"

서하는 처음에는 웃었다.

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응."

도훈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좋아해."

서하가 조용히 덧붙였다.

"많이."

도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두 번이나 헤어졌는데도?"

"응."

"왜?"

서하는 잠시 생각했다.

"글쎄."

그러다 작게 웃었다.

"좋아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 그런가."

"응."

도훈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일부러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형이 뭐가 그렇게 좋아?"

"왜?"

"성격도 별로고."

"야."

"말도 없고."

"너 형한테 일러준다?"

"그리고 재미도 없잖아."

서하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도진이 재미있어."

도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형이?"

"응."

"누나 웃음 기준 되게 낮구나."

"너 진짜 일러준다."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도훈 역시 웃었다.

그런데 웃음 끝이 조금 씁쓸했다.

서하는 알아채지 못했다.

도훈이 다시 물었다.

"진짜 많이 좋아하나 보네."

서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응."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미울 때도 있고."

"다시는 안 볼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

"결국 다시 도진이더라."

도훈은 잠시 서하를 바라봤다.

그러다 시선을 피했다.

"그래."

애써 웃었다.

"형 좋겠네."

"뭐가?"

"누나가 그렇게 좋아해 주니까."

서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너도 여자친구 생기면 잘해."

도훈이 피식 웃었다.

"나?"

"응."

"글쎄."

도훈은 물컵을 만지작거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줘야 가능하지."

서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너 정도면 금방 생기겠다."

"... 그런가."

도훈은 웃었다.

하지만 서하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남았다.

좋아해.

많이.

그리고,

결국 다시 도진이더라.

이미 알고 있었다.

서하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자신이 그 사이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그런데 서하의 입으로 직접 듣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생각보다 더 쓰렸다.

그때 도진이 돌아왔다.

"뭐가 그렇게 조용해."

도훈이 바로 표정을 바꿨다.

"형 욕하다가 지쳤어."

"뭐?"

서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훈이가 너 성격 별로래."

"야, 한도훈."

"틀린 말 했냐?"

"너 이리 와."

"밥 먹는데 어딜 가."

도훈은 웃으며 형을 피했다.

다시 평범한 세 사람의 시간이 이어졌다.

서하는 웃었고,

도진도 웃었다.

도훈 역시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그것으로 됐다고,

도훈은 다시 한번 자신에게 말했다.

---

계절이 조금 더 깊어졌다.

늦가을.

수업이 끝난 뒤 도진과 서하는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낮에는 제법 포근했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자 바람 끝이 쌀쌀해졌다.

운동장에는 농구를 하는 학생 몇 명만 남아 있었다.

서하가 두 팔을 가볍게 문질렀다.

도진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

"쌀쌀해?"

"조금."

도진은 대답 대신 입고 있던 집업 후드의 지퍼를 내렸다.

서하가 쳐다봤다.

"뭐 해?"

도진은 집업 후드를 벗어 서하의 어깨에 툭 걸쳐줬다.

"입어."

"됐어. 너는?"

"난 괜찮아."

"너도 쌀쌀하잖아."

"난 진짜 괜찮아."

서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맨날 괜찮대."

"진짜라니까."

도진은 서하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후드를 다시 끌어올려 줬다.

"입고 있어."

서하는 결국 후드에 팔을 끼웠다.

도진의 옷이라 품이 컸다.

소매가 손등을 훌쩍 덮었다.

서하가 양팔을 들어 보였다.

"봐. 너무 크잖아."

도진이 피식 웃었다.

"귀엽네."

"뭐가."

"너."

"됐거든."

서하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입으로는 툴툴거렸지만 후드를 벗지는 않았다.

옷에는 아직 도진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나란히 앉아 운동장을 바라봤다.

그러다 서하가 문득 물었다.

"너 졸업하면 뭐 할 거야?"

"갑자기?"

"그냥 궁금해서."

도진은 잠시 생각했다.

"일해야지."

"무슨 일?"

"운동 쪽."

"그건 나도 알아."

서하가 도진의 옆구리를 툭 쳤다.

"구체적으로."

"아직 모르겠어. 스포츠센터 쪽도 생각하고 있고."

"넌?"

"나?"

"졸업하면 뭐 하고 싶은데."

서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글 쓰고 싶어."

"작가?"

"응."

"너랑 잘 어울린다."

서하가 웃었다.

"내 글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읽으면 되지."

"재미없으면?"

"재미있다고 할게."

"그건 거짓말이잖아."

도진이 순간 멈칫했다.

서하는 그 표정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야."

도진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걸로 놀리냐."

"평생 놀릴 건데?"

그 순간 도진의 웃음이 멈췄다.

"... 방금 뭐라고 했어?"

"뭘."

"평생."

서하가 눈을 깜빡였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도진은 잠시 서하를 바라봤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그럼 평생 놀려."

"뭐?"

"내 옆에서."

서하의 표정이 멈췄다.

이번에는 도진도 웃지 않았다.

"서하야."

"응."

"우리 나중에 결혼할까?"

서하는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뭐?"

"결혼."

"갑자기 무슨 결혼이야."

"갑자기 아니야."

도진은 잠시 운동장을 바라봤다.

말을 꺼내놓고 쑥스러운지 귀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

"나 요즘 계속 생각했어."

"뭘?"

"너랑 싸웠을 때."

도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들었거든."

"..."

"그때 알았어."

도진이 서하를 바라봤다.

"나는 그냥 지금 너랑 사귀고 싶은 게 아니더라."

"졸업하고도."

"취직하고도."

"서른이 돼도."

도진이 서하의 손을 잡았다.

"계속 너랑 있고 싶어."

서하는 아무 말 없이 도진을 바라봤다.

"너 지금 스물둘이야."

"알아."

"취직도 안 했고."

"할 거야."

"집도 없잖아."

"구해야지."

서하가 결국 웃었다.

"뭘 그렇게 쉽게 말해."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하자는 거 아니잖아."

도진도 웃었다.

그러다 다시 진지해졌다.

"졸업하고."

"우리 둘 다 자리 잡으면."

도진이 서하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그때 결혼하자."

서하의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

"진심이야?"

"응."

"나중에 마음 바뀌면?"

"안 바뀌어."

"어떻게 알아."

도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두 번이나 헤어져 봤잖아."

"..."

"그래도 결국 너한테 돌아왔잖아."

서하는 한동안 도진을 바라봤다.

그러다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럼 약속 하나 해."

"뭔데."

"앞으로 중요한 일 혼자 결정하지 마."

도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응."

"나한테 말하기 싫은 일도."

"말할게."

"내가 화낼 것 같아도."

"말할게."

"우리 둘 일은 혼자 결정하지 말고."

서하가 도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같이 결정해."

도진이 서하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약속할게."

"진짜?"

"응."

서하가 살짝 웃었다.

"그럼 나도 약속할게."

"뭘?"

"졸업하고."

서하가 걸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우리 둘 다 자리 잡으면 결혼하자."

도진의 눈이 커졌다.

"... 진짜?"

"응."

"진짜 진짜?"

"몇 번 물어봐."

도진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가 서하의 손을 잡아당겼다.

서하의 몸이 그대로 도진 쪽으로 기울었다.

"야."

"잠깐만."

도진은 집업 후드를 걸친 서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서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도진의 등을 끌어안았다.

"서하야."

"응."

"나 진짜 잘할게."

서하는 도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잘한다는 말보다."

"응."

"그냥 약속 지켜."

도진이 웃었다.

"알았어."

해는 어느새 운동장 너머로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쌀쌀한 늦가을 바람이 두 사람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직 스물둘.

졸업도 하지 않았고,

취업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디에서 일하게 될지,

어떤 집에서 살게 될지,

몇 년 뒤의 자신들이 어떤 모습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하나를 믿었다.

시간이 흘러 조금 더 어른이 된 뒤에도,

서로의 옆에 있을 거라고.

두 번의 이별을 지나 다시 만났고,

세 번째 이별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서로를 붙잡은 두 사람은

처음으로 헤어지지 않는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늦가을의 어느 저녁,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를 찾으면, 그때 결혼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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