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했던 너를 좋아하게 됐다
유하늘을 처음 본 날, 강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쟤랑은 안 맞겠다.’
이유가 거창한 건 아니었다.
하늘은 말이 많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물었다. 웃을 때는 주변 사람까지 돌아볼 정도로 크게 웃었다.
반대로 진우는 말이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싫어했다. 혼자 밥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았고, 연락이 없어도 외롭지 않았다. 휴대폰에 쌓인 메시지를 몇 시간씩 방치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그런 진우에게 하늘은 피곤한 인간이었다.
“강진우.”
“왜.”
“너 나 싫어하지?”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갑자기 뭔 소리야.”
“내가 말 걸 때마다 표정 썩잖아.”
“원래 이렇게 생겼어.”
“거짓말. 다른 애들이랑 있을 때는 웃던데?”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늘이 가까이 오면 귀찮았고, 말을 걸면 대답하기 싫었다.
“싫으면 싫다고 해. 나도 앞으로 말 안 걸게.”
“그래.”
진우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 한마디 이후로 정말 하늘은 말을 걸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편했다.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도 없었고, 점심시간마다 오늘 뭐 먹을 거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휴대폰에도 ‘뭐 해?’ 같은 쓸데없는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진우가 원했던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그 조용함이 자꾸 신경 쓰였다.
복도에서 하늘과 마주쳤다.
예전 같으면 하늘이 먼저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강진우!”
멀리서부터 이름을 부르며 뛰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진우를 발견하고도 그냥 지나갔다.
진우는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하늘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고 있었다.
진우는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야.’
기분이 이상했다.
자기가 먼저 말 걸지 말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서운해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날 밤, 진우는 휴대폰을 들었다.
하늘과의 채팅방을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일주일 전이었다.
[뭐 해?]
하늘이 보낸 메시지.
그 아래 자신의 답장.
[바쁨.]
그게 끝이었다.
진우는 한참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내려놨다.
다시 들었다.
[뭐 하냐.]
네 글자를 적었다.
보내지는 않았다.
‘내가 왜.’
전부 지웠다.
그런데 다음 날도 하늘이 보였다.
또 다음 날도 보였다.
이상하게 자꾸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는 모습도 보였고, 혼자 이어폰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고르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였다.
진우에게 유하늘이라는 사람이 지나치게 자주 보이기 시작한 것이.
“야.”
결국 먼저 말을 건 것은 진우였다.
자판기 앞에 서 있던 하늘이 돌아봤다.
“왜?”
표정이 무덤덤했다.
진우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뭐 뽑냐.”
“커피.”
“그건 나도 보여.”
“그럼 왜 물어봐?”
진우가 입을 다물었다.
하늘은 커피를 뽑아 돌아섰다.
“야.”
“또 왜.”
“너 요즘 왜 말 안 거냐.”
하늘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진우를 봤다.
“네가 말 걸지 말라며.”
“내가 언제.”
“싫으면 말 안 걸겠다고 했더니 네가 ‘그래’ 했잖아.”
진우는 기억났다.
너무 정확하게 기억났다.
“그건 그냥.”
“그냥 뭐?”
“됐어.”
하늘이 피식 웃었다.
“이상한 애네.”
그 말을 남기고 하늘은 가버렸다.
진우는 자판기 앞에 혼자 남았다.
그리고 인정했다.
자기가 이상했다.
그 후로 진우가 먼저 하늘에게 말을 거는 일이 조금씩 늘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이유를 만들었다.
“오늘 수업 몇 시냐.”
“과제했냐.”
“밥 먹었냐.”
그러다가 이유가 없어졌다.
[뭐 하냐.]
예전에 보내지 못했던 네 글자를 결국 보냈다.
하늘의 답장은 금방 왔다.
[집 가는 중.]
[어디.]
[버스.]
[그건 나도 알아.]
[ㅋㅋㅋ 그럼 왜 물어봐]
진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이 웃고 있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
하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는 하늘이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휴대폰을 들었다.
그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긴 건 그다음이었다.
“하늘아.”
처음 보는 남자가 하늘을 불렀다.
진우는 멀찍이 서서 담배를 피우다 그쪽을 바라봤다.
남자가 하늘에게 음료를 건넸다.
하늘이 웃으며 받았다.
둘이 꽤 친해 보였다.
진우가 담배를 깊게 빨았다.
맛이 없었다.
평소 피우던 담배인데 이상하게 썼다.
그날 진우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다.
하늘이 물었다.
“너 오늘 왜 그래?”
“뭐가.”
“기분 안 좋아?”
“아닌데.”
“근데 왜 틱틱거려.”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하늘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온 모양이었다. 하늘이 화면을 보며 웃었다.
진우가 툭 던졌다.
“아까 걔냐.”
“누구?”
“음료 준 놈.”
하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봤어?”
“보이니까 봤지.”
“친구야.”
“안 물어봤는데.”
“네가 물어본 거나 마찬가지잖아.”
진우가 담배를 꺼냈다.
“관심 없어.”
하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관심 갖지 마.”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우는 담배를 꺼내던 손을 멈췄다.
관심 갖지 말라고?
왜 그 말이 기분 나쁜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았다.
알면서 모른 척하고 있었다.
하늘이 다른 남자와 웃는 게 싫었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도 싫었다.
자신에게 하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하늘이 자신을 보며 웃는 게 좋았다.
“강진우.”
“왜.”
“너 요즘 이상해.”
“뭐가.”
“처음에는 나 싫다고 사람 투명인간 취급하더니 요즘은 맨날 먼저 연락하잖아.”
진우는 담배를 물었다.
“심심해서.”
“친구 없냐?”
“없어.”
하늘이 웃었다.
진우도 따라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진우는 더 이상 부정하지 못했다.
좋아한다.
유하늘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하늘을 볼 때마다 의식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말도 한 번씩 생각하게 됐다. 하늘이 가까이 다가오면 시선을 피했다.
하늘이 자신의 팔을 잡은 날에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 감각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이대로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저녁이었다.
진우는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을 내려다보느라 누군가 가까이 오는 것도 몰랐다.
“나 아직도 못 봤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었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아무것도.”
진우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하늘이 옆으로 다가왔다가 담배 연기에 코끝을 찡그렸다.
“담배 냄새.”
진우가 담배를 내려다봤다.
평소 같으면 그냥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그대로 바닥에 비벼 껐다.
“됐냐.”
“내가 끄랬어?”
“냄새난다며.”
“그냥 그렇다고.”
하늘이 웃었다.
진우는 그 얼굴을 바라봤다.
별것도 아닌데 웃는다.
처음에는 그게 싫었다.
시끄럽고 귀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저 웃는 얼굴 때문에 하루 기분이 달라졌다.
하늘이 물었다.
“왜 쳐다봐?”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 묻었어?”
“하늘아.”
“응?”
진우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말하지 않으면 또 모른 척할 것 같았다.
“나 너 좋아해.”
하늘의 표정이 그대로 멈췄다.
“뭐?”
“좋아한다고.”
“네가 나를?”
“어.”
하늘은 진우를 빤히 바라봤다.
“너 나 싫어했잖아.”
“알아.”
“말 걸지 말라고도 했잖아.”
“그것도 알아.”
“근데?”
진우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르겠다.”
“뭐야, 그게.”
“처음엔 진짜 귀찮았어. 네가 말 거는 것도 귀찮았고, 맨날 웃는 것도 시끄러웠고.”
하늘의 눈썹이 올라갔다.
“고백을 되게 기분 나쁘게 한다?”
“끝까지 들어.”
진우가 하늘을 바라봤다.
“근데 네가 진짜 말 안 거니까 이상하더라.”
하늘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조금 사라졌다.
“네가 연락 안 하면 기다리게 되고, 다른 놈이랑 있으면 신경 쓰이고. 너 만나면 좋고.”
진우가 잠깐 말을 멈췄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아.”
“…….”
“좋아해서 그런 거더라.”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우도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담배를 다시 꺼내려다가 멈췄다.
하늘이 그걸 보고 물었다.
“왜 안 피워?”
“네가 냄새 싫다며.”
“그것 때문에?”
“어.”
하늘이 고개를 숙였다.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게 보였다.
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웃냐.”
“그냥.”
“사람 고백해 놓고 쪽팔려 죽겠는데 웃음이 나와?”
하늘이 결국 소리 내 웃었다.
“강진우.”
“왜.”
“너 지금 귀 빨개.”
진우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닥쳐.”
“진짜 빨개.”
“유하늘.”
“응.”
진우가 다시 하늘을 봤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대답은?”
하늘이 잠시 진우를 바라봤다.
그러다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담배도 바로 꺼줘?”
“아니.”
“연락 기다리고?”
“안 하지.”
“다른 남자랑 있다고 질투하고?”
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얘기는 그만해.”
하늘이 웃었다.
진우가 처음 싫어했던 바로 그 웃음이었다.
이제는 그 웃음을 오래 보고 싶었다.
하늘이 천천히 말했다.
“그럼 나도 조금 더 생각해 볼게.”
“얼마나.”
“몰라.”
“야.”
“왜. 대답 지금 안 해도 된다며.”
진우의 입이 다물렸다.
자기가 한 말이었다.
하늘이 몇 걸음 앞서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안 와?”
진우가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디 가는데.”
“밥 먹으러.”
“누구랑.”
하늘이 웃으며 진우를 가리켰다.
“나 좋아한다는 사람이랑.”
진우는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피식 웃으며 하늘을 따라갔다.
주머니 속 담배는 끝내 다시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