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멎은 뒤

평범한 저녁

byHelia

서하람이 자취방의 이상한 점을 처음 발견한 것은 화요일 밤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현관 매트 위에 가느다란 물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보았다. 물 묻은 신발이 스친 흔적 같았지만 그날은 하루 종일 맑았다. 하람은 한참 내려다보다 휴지로 닦았다. 오래된 원룸에서는 별일이 다 생긴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목요일이었다. 분명 잠가 둔 욕실 창문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열려 있었다. 창밖은 벽이었다. 정확히는 옆 건물의 회색 벽과 두 건물 사이의 좁고 어두운 틈. 사람은커녕 고양이도 지나가기 힘든 곳이었다. 하람은 창문을 닫고 잠금쇠를 여러 번 당겨 보았다. 낡기는 했어도 저절로 풀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 밤,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현관 잠금장치가 조금 헐거운 것 같아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십 분 뒤 답장이 왔다.

― 오래된 건물이라 그래요. 그래도 잘 잠기니 걱정 마세요.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걱정을 구체적인 모양으로 만들었다. 하람은 현관 손잡이를 세 번 잡아당기고 의자를 문 앞에 받쳤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눈을 감았다.

토요일 저녁, 하람은 연습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샤워기를 틀었다. 오디션을 앞두고 같은 노래를 수십 번 부른 탓에 목과 어깨가 단단히 굳어 있었다. 따뜻한 물이 정수리에서 등을 타고 흐르자 비로소 하루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 욕실은 금세 수증기로 흐려졌다. 환풍기는 고장 난 선풍기처럼 웅웅거렸고, 샤워기 물줄기는 타일 바닥을 세차게 두드렸다. 하람은 눈을 감고 후렴구를 낮게 흥얼거렸다. 그때 현관 쪽에서 전자음이 났다. 아주 짧고 낮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물에 삼켜졌다.

잠시 뒤 욕실 문고리가 천천히 내려갔다. 완전히 닫히지 않던 문이 손바닥 하나 너비로 벌어졌다. 하람은 샴푸 거품을 씻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낯선 손이 들어왔다. 물안개 속에서 창백해 보이는 손이었다. 손가락이 허공을 더듬다가 하람의 몸에 닿았다.

하람은 처음에는 비누가 미끄러진 줄 알았다. 다음 순간, 그것이 사람의 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비명보다 숨이 먼저 멎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샤워기 헤드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문틈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금속이 뼈에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손이 사라졌고, 문밖에서 짧은 신음이 터졌다.

“누구야!”

자신의 목소리인데도 낯설었다. 하람은 다시 소리쳤다.

“누구냐고!”

대답 대신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 거친 발소리,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하람은 문을 닫고 잠금쇠를 걸었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아 첫 번째에는 빗나갔고 두 번째에야 걸렸다. 샤워기는 여전히 물을 쏟고 있었다. 욕실 바닥에 주저앉은 하람은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 채 수도꼭지를 바라보았다. 물을 잠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위층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골목에서는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 소리를 계속 냈다. 그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

하람은 세면대 위에 둔 휴대전화를 집었다. 젖은 손가락 때문에 화면 잠금이 두 번 풀리지 않았다. 세 번째에 112를 눌렀다.

“누가 집에 들어왔어요.”

주소를 말한 뒤 하람은 수건을 몸에 감고 욕실 청소용 밀대를 들었다.

“도망간 것 같은데… 문을 열 수가 없어요.”

경찰은 도착할 때까지 통화를 끊지 않았다. 이윽고 현관 밖에서 경찰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람은 전화로 다시 확인하고서야 욕실 밖으로 나왔다.

현관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겨 있지 않았다. 문 앞에 세워 두었던 의자는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바닥에는 작은 검은색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출동한 경찰관은 그것을 장갑 낀 손으로 집어 봉투에 넣었다. 도어록 덮개의 일부로 보인다고 했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어요. 저밖에 몰라요.”

“집주인은요?”

하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계약하던 날 집주인이 비상시에 필요하다며 마스터 번호를 언급했던 기억이 뒤늦게 떠올랐다. 집주인은 같은 건물 일층에 살았다. 그의 아들은 가끔 복도 전등을 갈거나 수도 계량기를 확인하러 다녔다. 하람과 마주치면 필요 이상으로 오래 쳐다보곤 했지만, 말을 건 적은 거의 없었다.

경찰관이 집주인을 불렀다. 회색 조끼 차림으로 올라온 그는 잠이 덜 깬 얼굴을 문질렀다.

“아이고, 이런 일이 어떻게… 외부 사람이 따라 들어왔나 보네.”

그는 놀랐다기보다 귀찮아 보였다. 경찰이 마스터 번호를 아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집주인은 자신과 아들뿐이라고 답했다.

“아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친구 만나러 나갔죠. 아까 저녁부터 없었어요.”

그 순간 하람은 집주인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젖은 머리카락과 수건을 두른 어깨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경찰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복도 CCTV 보여 주세요.”

집주인은 입술을 핥았다.

“그게 며칠 전부터 고장이라.”

너무 빨리 나온 대답이었다.

하람은 그날 친구 지수의 집으로 갔다. 지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현관 앞까지 내려와 외투를 벗어 하람에게 입혀 주었다. 뜨거운 차를 내오고, 경찰에게 들은 말을 시간 순서대로 적게 했다. 기억은 놀랄 만큼 빨리 흐려질 수 있으니 지금 남겨야 한다고 했다. 하람이 중간중간 멈출 때마다 지수는 재촉하지 않았다.

새벽이 가까워졌을 무렵 하람이 말했다.

“내가 문을 제대로 안 잠갔나?”

지수의 표정이 단단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잘못한 거야.”

“샤워하면서 노래를 안 했으면 들었을 텐데.”

“노래한 것도 네 잘못 아니야.”

“진작 도어록을 바꿨어야 했는데.”

“하람아.”

지수가 두 손으로 찻잔을 감싼 하람의 손을 덮었다.

“네가 평범한 저녁을 보낸 게 잘못일 수는 없어.”

그 말에 하람은 처음으로 울었다. 크게 소리 내지도 못했다. 눈물만 끝없이 떨어져 식어 버린 차 위에 동그란 파문을 만들었다.

다음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도어록에는 덮개를 억지로 연 흔적이 있었고 지문도 채취했다고 했다. 조사관은 힘들면 언제든 진술을 멈춰도 된다고 말했다. 하람은 여러 번 숨을 고른 뒤 기억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했다.

건물로 돌아간 것은 짐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지수와 경찰관이 함께했다. 낮의 복도는 밤보다 초라했다. 군데군데 벗겨진 벽지, 먼지가 쌓인 소화기, 깜박이는 센서등. 공포가 특별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너무 일상적이라 오히려 숨이 막혔다.

하람은 욕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문 앞에서 발이 붙어 버렸다. 지수가 대신 세면도구를 챙겼다. 하람은 바카라과 노트북을 가방에 넣다가 바카라상 아래에서 작은 물체 하나를 발견했다. 검은색 USB처럼 생겼지만 한쪽 끝에 아주 작은 렌즈가 달려 있었다.

“지수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두 번째에는 손짓만 했다.

경찰관이 다가와 물체를 확인했다. 보조 배터리로 위장한 초소형 카메라였다. 렌즈는 침대 쪽을 향하고 있었다. 하람은 속이 뒤집혀 주저앉았다. 누군가 한 번 충동적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잠든 밤, 옷을 갈아입던 아침, 혼자 밥을 먹고 노래를 연습하던 시간이 이미 타인의 손에 훼손되어 있을지 몰랐다.

카메라의 저장 장치에서는 여러 개의 영상이 발견됐다. 설치한 사람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첫 영상에 회색 작업복 소매와 은색 체인 팔찌가 찍혀 있었다. 집주인의 아들이 늘 차고 다니던 팔찌였다. 같은 날 밤 그는 경찰에 출석했다. 손목에는 샤워기 헤드에 맞아 생긴 것으로 보이는 멍이 있었고, 휴대전화에서는 하람의 생활시간을 기록한 메모가 나왔다.

그가 처음 한 말은 사과가 아니었다.

“그냥 장난이었어요.”

그 말을 전해 들은 하람은 조사실 바카라상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그에게는 장난 한 번일지 몰라도 하람의 밤은 줄어들지 않았다. 물소리만 들으면 숨이 막혔고, 닫힌 문을 보고도 문틈이 보였다.

하람은 합의를 거절했다. 집주인은 아들의 앞날을 한 번만 생각해 달라고 했다. 하람은 전화를 끊기 전 조용히 대답했다.

“제 앞날은 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뒤로는 모든 연락을 변호사와 수사기관을 통해서만 받았다.

새집을 구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지수와 낮에도 가 보고 밤에도 가 보았다. 입주한 날 도어록을 새것으로 바꾸고 현관에는 문 열림 감지기를 달았다.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했지만 하람은 대꾸하지 않았다.

문제는 샤워였다. 새집에서도 물을 틀면 그날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샤워기 소리가 커질수록 현관 쪽 소리는 사라졌고, 세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처음 며칠은 욕실 문을 열어 둔 채 씻었다. 지수가 거실에서 계속 말을 걸어 주었다.

“나 여기 있어. 지금 라면 물 올렸어.”

“응.”

“계란 두 개 넣는다?”

“하나만.”

“이 와중에도 단호하네.”

하람은 아주 조금 웃었다. 물소리 속에서 나온 첫 웃음이었다.

상담도 시작했다. 상담사는 잊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람은 지금 이곳이 그날의 욕실과 다르다는 것을 하나씩 확인했다. 문고리를 보고 잠금쇠를 만지고 환풍기 소리를 들었다. 무섭지 않은 척하지 않고, 무섭다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날, 하람은 오디션 무대에 섰다. 한 달 전부터 준비했던 노래였다. 대기실 거울 속 얼굴은 창백했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하람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반주가 시작되기 직전, 객석 어딘가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하람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그녀는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첫 소절은 조금 떨렸다. 두 번째 소절은 덜 떨렸다. 후렴에 이르자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그날 이후 물소리에 번번이 빼앗기던 자신의 목소리를, 하람은 사람들 앞에서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노래를 마치자 짧은 정적 뒤에 박수가 쏟아졌다. 하람은 고개를 숙였다. 합격할지는 알 수 없었다. 상관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지만, 결과보다 먼저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와 그녀의 평범한 저녁을 망가뜨렸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하람의 남은 날들까지 가질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하람은 욕실 앞에 섰다. 문을 닫고 잠금쇠를 걸었다. 한 번만 확인했다. 그리고 샤워기를 틀었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람은 도망치지 않았다. 눈을 뜬 채 숨을 세고, 차가운 타일의 감촉과 따뜻한 물의 온도를 느꼈다. 이곳은 새집이었고, 문은 잠겨 있었으며, 휴대전화는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의 주인은 자신이었다.

하람은 수도꼭지를 잠갔다.

물이 멎자 집 안의 소리들이 하나씩 돌아왔다. 냉장고 모터 소리, 창밖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 바카라상 위 휴대전화가 짧게 울리는 소리.

그리고 자신의 숨소리.

하람은 한동안 그 소리를 들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숨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