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라고 세뇌시키려고 헀지만 실패한 사연
“호캉스 간다고 생각하려고!”
병원에 입원하던 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가족들에게 내가 한 말이다.
짐을 쌀 때부터 입원 당일 저녁까지는 호캉스 기분이 살짝 나기도 했다. 가방 속에 들어가는 물건들이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과 비슷했고, 배정받은 병실의 뷰도 꽤 좋았기 때문에 이만하면 그럭저럭 호캉스 기분은 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말은 미친 소리였다.
핑크빛 긍정 마인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입원 당일 저녁식사 시간부터다.
병원 밥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식판을 마주하고 보니 성의를 찾아보기 힘든 상차림이다. 반조리 식품이 대부분이었고 밥은 묵은쌀을 쓴 것처럼 부슬거린다. 반찬의 간도 엉망이고 국물에서는 깊은 맛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꾸역꾸역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건너편 인대 수술 환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수술 직후의 극심한 통증 때문이었다. 호출된 간호사가 와서 불을 켜고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조치를 한다. 한 번으로 끝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환자의 통증과 간호사 호출은 새벽까지 여러 번 이어진다.
이럴 때를 대비해 이어폰을 챙겨 가긴 했다.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나 오디오 콘텐츠를 들으면 잠시나마 신음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휴대폰에 저장해 둔 노자의《도덕경》 강의를 듣는다고 숙면에 드는 것은 아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머리가 멍해질 뿐이다.
‘어차피 내일 수술하고 나면 하루 종일 잠잘 텐데 뭐.’ 마지막 긍정 마인드를 쥐어짠다.
수술 전날 밤 12시부터 금식이다. 맛없는 병원 밥이지만 그조차 먹지 못하고 아침을 거르니 배가 고프다.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빨리 수술을 받고 싶다.
수술은 원래 오전 10시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10시가 넘어도 아무 소식이 없다.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는데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간호사가 왔다. 드디어 콜이 왔다고 하면서 수술 준비를 시작한다. 수술 준비란 이런 것들이다. 위아래 속옷과 양말까지 모두 벗기. 뒤에서 여미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기. 머리를 삐삐처럼 양갈래로 묶기. 화장실 다녀오기 등.
간호사의 일이 끝나자 잠시 후 힘 좋아 보이는 남자분이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휠체어에 나를 앉히더니 수술실로 이동시킨다. 그분의 일하는 애티튜드로 봐서는 ‘이동’이라기보다 ‘총알 배송’에 가깝다. 수술실로 '배송'된 나는 쏟아지는 질문에 답한다. 이름. 수술 내용. 흔들리는 이는 없는지.. 이미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마치 챗봇처럼 대답을 자동 생성한다.
수술실은 무균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곳이라 병실보다 실내 온도가 현저히 낮다. 그곳에 속옷도 없이 반팔 수술복만 입고 덩그러니 누워 있으니 몸도 마음도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간호사가 시트를 덮어 준다. 여러 겹으로 겹쳐진 시트는 온장고에 막 꺼냈는지 무척 따뜻하다. 풀을 먹인 듯 빳빳한 시트를 조심스럽게 끌어올려 코까지 덮으니 은은하게 소독약 냄새가 난다. 가만히 눈을 감으며 생각한다.
‘노숙자들이 골판지를 덮고 자는 게 이런 느낌일까.’
| 마취, 수술
따뜻한 시트의 온기는 수술실의 냉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금세 차갑게 식는다. 더 이상 골판지가 아닌 신문지처럼 얄팍하게 느껴지는 소독 시트를 덮고 벌벌 떨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이러다가 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감기에 걸려 죽는 건 아닐까. 아니면 저체온증으로 죽는 건 아닐까.’ 짜증이 나려던 순간 침상이 움직인다. 드디어 진짜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아뿔싸. 더 춥다! 대형 냉장고에 있다가 이번에는 냉동고로 들어간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외쳤다.
“너무 추워요. 차라리 빨리 마취시켜 주세요!”
심호흡을 하라는 말을 듣고 심호흡을 했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다.
“눈 뜨세요!”
다그치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젖 먹던 힘까지 써서 겨우 눈을 떴다. 겨우 눈을 뜨자마자 쉴 틈도 없이 이번에는 심호흡을 하라고 다그친다. 심호흡은 내 특기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심호흡을 하려는데 그 순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악!”
정신을 조금 차리고 보니 마취회복실 전체가 나를 포함한 수술 환자들의 비명 소리로 가득차 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추웠지만 전신마취에서 깨어날 때의 추위는 그 이상이다. 이를 딱딱 부딪치며 몸부림치면서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심호흡을 한다. 아를 악물고 생각한다.
"호캉스라니, 내가 미쳤었지... 긍정 마인드는 개나 줘버려!"
마취에서 깨기는 했지만 아직 온전히 정신이 돌아온 것 같지 않은데 침상에 실린 채 다시 병실로 '배송'된다. 손등에 꽂힌 굵은 주삿바늘을 통해 수액과 진통제가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구토감이 밀려온다.
간호사는 마약성 진통제 때문이라고 하면서 진통제 공급을 잠시 중단한다. 가져다준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몇 번 우웩거렸는데 다행히 토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어젯밤 잠을 방해했던 건너편 인대 수술 환자가 말을 건다. “댁도 어깨 수술 하셨어?”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상황이지만 “……네.” 겨우 대답하고 생각한다. '대왕 오지라퍼구나. 웬만하면 피하자.’
간호사들이 환자복을 갈아입혀 준다. 긴팔 소매에 슬릿이 들어가 있었고 소매에 달린 끈을 모두 리본으로 묶어 여미는 사랑스러운(?) 디자인의 옷이다. 하지만 침대에서 뭉기적거리고 뒤척이다 보면 리본이 쉽게 풀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겨우 고개를 들어 병실 벽시계를 본다. 오후 2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다. 수술이 11시쯤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것 같다.
차마 침대에 눕지 못하고 머리를 침상 바닥에 박아 넣고 몸을 둥글게 말아 엎드린 채 한참을 끙끙거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지럼증이 조금 가라 앉았을 때 말려 있던 몸을 조심스럽게 편 다음 침대에 누인다.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에는 빈 구석이 많다. 수술 후 힘이 하나도 없는데 이불을 펴고 몸을 눕히는 일은 환자 스스로의 몫이다. 간호사가 놓고 간 냉찜질팩을 수술 부위에 올려놓는 일도 직접 해야 한다. 평소라면 아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수술 직후에는 묵직한 이불을 펴는 일도, 얼음팩을 수술 부위에 얹는 일도 너무 어렵다.
지난 밤 못잤고 또 수술로 인한 피곤함이 있을테니 미친 듯이 잠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몽롱하고 괴로울 뿐 잠이 오지 않는다. 수술 부위와 그 주변이 몹시 아프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상황은 사무라이들이 칼싸움하던 중 어깨에 칼을 맞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 와중에도 허기가 느껴진다.
6시가 조금 지나자 음식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고 카트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저녁식사 시간이다. 잠시 후 식판이 배달되었다. 죽이다. 입원 생활 동안 유일하게, 그나마 맛있게 먹은 한 끼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은 진리다.
식판을 물리자 남편이 면회를 왔다. 부탁했던 휴대폰 고속충전기와 먹기 좋게 손질한 샤인머스캣을 들고 왔다. 서러운 마음에 수술 이야기와 건너편 침대의 오지라퍼 환자 이야기를 소곤소곤 쏟아낸다.
주치의 선생님보다 먼저 와서 병실을 둘러보는 전공의 선생님은 늘 피곤해 보인다. 짐작하건대 병원에서 숙식하는 듯하다. 아침이면 세수만 겨우 한 듯한 부스스한 얼굴로 회진을 한다.
오지라퍼 환자와 엮이지 않기 위해 늘 커튼을 침대 전체에 둘러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은 늘 커튼 너머에서 묻곤 한다. “들어가도 될까요?”“네~” 대답하면 커튼을 열고 들어와 건조한 어투로 “좀 어떠세요?”라고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수술 후에도 같은 질문을 한다. “괜찮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사이 전공의 선생님이 휴대폰을 열어 내 몸에서 떼어낸 지방 덩어리, 지방종 사진을 보여 준다. “엄청 크죠?”
생물바카라이나 인체도감에서 봤던 간과 비슷한 느낌이다. 나중에 온 주치의 선생님은 거의 아기 머리통만 한 크기였다고 하신다. ‘그 정도면 그동안 체중이 늘었던 게 저놈 때문이었군!’ 내 마음대로 단정한다.
수술 부위가 생각보다 커서였을까. 주치의 선생님이 선심 쓰듯 말한다.
“원래는 수술 다음 날 퇴원하는 게 맞는데요. 상황 봐서 하루 더 있다가 퇴원하셔도 될 것 같아요.”
밤에 통증이 심해지면 마약성 진통제를 공급하는 기계장치의 버튼을 누르라고 간호사가 알려 준다. 하지만 그 약 때문에 이미 극심한 울렁거림을 경험한 나는 웬만하면 참겠다고 한다. 그리고 다행히 밤 사이 통증은 참을 만했다. 토하느니 차라리 아프고 만다.
건너편 환자도 전날보다는 통증이 가라앉았는지 신음 소리가 잦아들었고 간호사도 호출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푹 잘 수 있는 조건은 잘 갖춰진 셈이다. 그런데 또 잠이 오지 않는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자세를 바꾸기가 너무 어렵다. 잠을 잘 때 몸을 자유롭게 뒤척일 수 있는 것도 감사해야 할 큰 복 중 하나다. 두 번째 밤도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저녁으로 나온 죽을 먹고 왠지 아쉬운 마음에 샤인머스캣을 먹었는데. 또 속이 울렁거린다.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헛구역질을 몇 번 한다. ‘샤인머스캣에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 있었던 걸까?’ 남편을 의심해 본다.
낮에는 건너편 환자가 몰래 병원 밖에 나가 갈비탕을 먹고 돌아왔다가 개코 간호사에게 바로 발각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환자분, 곰탕 드시고 오셨어요? 냄새나요! 그러시면 안 돼요!” 솔직히 나도 병원 밖에 나가 뭔가 먹고 올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일 몇 알을 먹고도 울렁거리는 걸 경험하고 보니 소심해 진다. 병원에서 주는 것만 성실하게 먹기로 한다.
‘병원은 수술도 힘들지만 맛없는 밥과 불면도 그 못지않게 힘들구나.’
3일 차 아침. 회진을 온 전공의 선생님과 간호사에게 하루 더 있다가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수액에 섞어서 맞고 있는 진통제가 끊어질 경우 통증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되었고, 무엇보다도 집에 가면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눈에 보이는 이상 그걸 방치하고 그저 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눈에 안 보여야 쉴 수 있고 쉬어야 회복될 수 있다! 하루라도 더 말이다.
3일째 머리를 감지 못했다. 침대 옆 붙어 있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안내문에는 세발 서비스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다. 침상에서 하는 건식 세발도 있고, 물로 씻겨 주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나도 대상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루 더 있기로 한 김에 세발 서비스를 받아 보고 싶다.
이대로 떡진 머리로 퇴원해서 집에 갈 경우 혼자 머리를 감는 것은 정말 힘들 것 같았다. 3일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포마드를 잔뜩 바른 듯한 떡진 머리로 살아야 할 판이다. 남편과 '아웃 오브 아프리카' 패러디를 해보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나는 메릴 스트립이 아닐뿐더러 수술 직후다. 남편 또한 로버트 레드포드의 다정함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샤인머스켓도 의심스럽지 않은가!
간호사가 들락거릴 때마다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본다, “저…… 세발…….” “저기요…… 세발…….” 목소리가 자꾸 기어들어간다. 그런데 간호사들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수술이었던 내 쪽으로는 거의 오지 않는다. 건너편 오지라퍼 환자와 내가 수술한 날 새로 들어온 담석제거 환자 쪽으로만 왔다 갔다 한다. 결국 포기하고서 휴대폰을 열어 AI에게 질문을 던다.
‘어깨 수술을 받아 불편해서 머리를 감기 어려운데, 일반적으로 미용실에 가면 머리만 감겨 주기도 할까? 얼마일까?’
그나마 가장 편안했던 시간은 수술 다음 날 오후였던 것 같다. 수술 부위는 퉁퉁 부어 여전히 후끈거리면서 아팠고, 병원 밥은 갈수록 부실해졌지만, 침대 상단 부분을 올려 베개와 쿠션에 기대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휴대폰 속에 저장된 음악을 듣다 보면 졸음이 밀려온다. 깊은 잠은 아니지만 왠지 잘 잔 것 같은 묘한 느낌. 하루 더 있기로 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냉장고에 남편이 가져다준 샤인머스캣이 있어서 든든하다. 커피는 며칠 못 마셔도 괜찮았다. 하지만 과일을 못 먹으니 죽을 맛이었다.
‘호캉스는 이미 내다 버렸고……이 정도면 병캉스?’
머리를 못 감은 것보다 훨씬 다급한 문제가 생겼다. 생각해 보니 3일째 변을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순식간에 일을 마치는 건강한 배변 생활의 실천자다. 그런데 가끔 생활 리듬이 깨져 하루 이틀 화장실에 가지 못하면 곧바로 출구(??)가 막힌다. 그게 얼마나 심한지 예전에 혼자 괴로워하다가 119를 부를 뻔한 적도 있고 변비약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해 셀프 관장을 한 적도 있다. 악몽 같은 기억이다.
3일을 못 갔으니 이 상태로 집에 가면 또 한바탕 난리를 치를 게 뻔하다. 퇴원 전날 간호사와 상의해 미리 변비약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퇴원 당일 아침에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변비약을 한 번 더 받아먹는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그냥 퇴원할까 고민했지만 세발 서비스도 받지 못한 마당에 병원에 있는 동안 뭐라도 케어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간호사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관장해야 할 것 같아요.”
간호사는 주치의에게 전화해서 상의하더니 잠시 후 침대에 누운 나에게 관장약을 주입했다. (세발 서비스 대신 받는 서비스가 관장이라니!)
“최소 5분간 참으세요.” 5분을 꾹 참는다.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진짜 힘들다. 5분 땡 치자마다 총알처럼 화장실로 뛰어간다. 결과는 실패다. 관장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성공했든 실패했든 급작스럽게 혈압이 떨어진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온몸에 극심한 피로감이 밀려온다. 한마디로 하늘이 노래진다. 얼굴도 노래진다.
화장실에서 거의 기다시피 나오다가 간호사와 마주쳤다. 간호사는 해맑은 표정으로 쌍따봉을 내밀면서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인다. ‘성공?’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은 다음 침대로 돌아와 털썩 드러눕는다.
‘억지로 먹은 맛없는 밥과 반찬이 내 몸속에 가득 차 있다니. 참을 수가 없구나....’
머리도 못 감고 변비도 해결하지 못한 채 퇴원을 한다. 퇴원 전에 드레싱을 해야 하는데 드레싱을 하기 전까지는 옷을 갈아입지 말라고 한다. 3일간 정들었던(?) 귀여운 디자인의 환자복을 입은 상태에서 짐을 싸고 침대를 정리한다.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묶여 있던 리본 몇 개를 풀어 왼쪽 어깨가 드러나게 한다. 수술 부위를 단단히 붙잡고 있던 반창고를 조심스레 떼어낸다. “잠깐만요. 사진 좀 찍어 주세요!” 휴대폰을 내밀자 간호사가 사진을 찍어 건네준다. 수술 부위를 처음으로 내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다. 한마디로 흉측하다. 프랑켄슈타인이 따로 없다. 이 정도 흔적이라면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 아무도 내 옆에 앉지 않을 것 같다.
소독을 하고 새 거즈와 밴드를 단단히 붙인다. 앞으로 이틀에 한 번씩 동네 외과에 가서 소독해야 한다고 한다. 2주 뒤에는 외래 진료를 보러 와야 하고 그때는 살이 벌어지지 않도록 고정해 둔 스테이플러(?) 같은 장치도 빼고 실밥도 뽑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수술 부위에는 절대 물이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2주 동안 샤워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드레싱을 하는 동안 남편은 13일 치 약봉지를 받아 들고 복용법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내가 건넨 신용카드를 들고 원무과까지 내려가 병원비를 수납한 다음 영수증과 서류를 챙겨 온다. 샤인머스켓이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보호자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가방은 병원에 들어왔을 때보다 조금 가볍고 헐렁하다. 지방을 떼어낸 나의 몸도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팔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주치의 말로는 무리가 안 되는 선에서 살살 움직여야 회복이 빠르다고 한다. 퇴원 후 집에 돌아와 살살 움직여 보니 머리를 감을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쉽지는 않았지만 요령껏 머리를 감는다. 시원하기 그지없다.
기왕 손에 물을 묻힌 김에 수건을 뜨거운 물에 적셔 몸도 닦는다. 오랜 노숙 생활 끝에 모처럼 목욕을 하는 기분이다.
퇴원 후 이틀이 지나 소독을 해야 하는 날은 하필 개천절 대체휴일이다. 네이버 지도로 검색해 보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는 역시나 휴진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 허리를 삐끗했을 때 진료받았던 정형외과는 웬만해서는 쉬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평일에도 밤까지 운영한다. 그곳으로 가면 된다.
오랜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이 “허리 또 삐끗하셨어요?”라고 물어볼 것 같아 내가 먼저 선수를 친다. “허리는 괜찮고요. 얼마 전에 지방종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드레싱을 해야 해서요.”
주사실 같은 곳으로 이동한다. 소독을 한 뒤 깨끗한 거즈를 덮고 다시 밴드로 단단히 고정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번에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 다음 이틀 전 상태와 비교해 보았는데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시퍼런 멍이 왼팔 전체로 퍼져 있다.
처음에는 프랑켄슈타인이었는데 이제는 야쿠자, 아니면 조폭이 되었다. 멍 색깔이 문신과 비슷한 색깔이다. 간호사는 조금 더 퍼졌다가 곧 없어질 거라고 한다.
'아깝다. 이 상태로 공중목욕탕에 한 번 가봐야 하는 건데...'
집에 돌아와서도 변비는 지속되었고, 한번 더 셀프관장을 했지만 실패!
AI의 도움을 받아 추천받은 것은 '삼투성 변비약'인데, 삼투성 변비약은 장을 쥐어짜는 자극성 변비약(둘코락스 등) 대신, 변에 물을 흡수시켜 단단한 변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다만 바로 효과를 볼 수 없고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이 단점인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만성 변비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약이다.
남편이 퇴근길에 사 온 삼투성 변비약을 안내대로 복용한 결과..... 드디어 병원에서 꾸역꾸역 쑤셔 넣었던 맛없는 병원 밥을 모두 정화조로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