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여기저기 늘 아프다고는 하셨지만, 치명적인 병으로 오래 입원하거나 수술을 받은 적은 없는 엄마다. 전화를 하면 같은 말을 또 하시고, 또 하신 말을 반복하셔서 엄마의 뇌가 많이 게을러졌구나 생각했을 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94세인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우리 엄마는 건강한 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셨는지, 큰아들을 불러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몇 가지 검사를 한 뒤 나온 결과는 ‘폐암이 진행 중’이라는 것. 고령이라 병원에서 더 이상 해 드릴 것이 없다는 소견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는 면회가 쉽지 않다. 보호자 한 명만 잠깐씩 병실을 오갈 수 있고, 조금만 오래 머물러도 눈치를 준다고 한다. 급하게 구한 간병인에 따르면 엄마는 집에서는 보이지 않던 행동을 보인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섬망 증세가 이거구나 싶었다.
한동안 간병인을 몹시 힘들게 하시다가, 지금은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셨다. 섬망 증세는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언니들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라고 한다. 이제 시작인 것도, 이제 끝인 것도 다 무서운 말이다.
엄마가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보름 남짓의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가족 모두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져 있고 지쳐 있다. 엄마에게서 비교적 멀리 살고, 막내라는 이유로 여러모로 배려받는 나조차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보다 몇 배는 힘들다.
하루 종일 엄마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머리가 멍하다. 그러다 보니 의욕이 없어지고, 평소라면 놓치지 않았을 일들을 놓친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냄비 속 김치찌개가 상하고 있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냉장고 속 채소 중 썩은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점검하기도 귀찮다. 얼마 전 지방종 제거 수술의 여파로 어깨는 아직도 욱신거린다.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쓰고, 산바카라을 하던 평온한 일상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와 나는 그리 애틋한 사이가 아니다. 언니들 말로는 어릴 때 막내라 귀여움을 받았다고 하지만, 솔직히 나는 엄마와의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호되게 야단맞은 기억만 선명하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기’가 나의 취미이자 특기였다.
어른이 되어 대학에 가고 온라인 게임에 다니게 되었을 때, 부족한 살림에도 언니 오빠들의 공부를 뒷바라지하느라 힘겹게 살았던 엄마는 마지막 남은 관심을 나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귀가 시간을 통제했고, 조금만 늦으면 내가 아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할 때면 영하의 기온에도 대문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것은 나에게 집착과 자기만족으로 보였다.
늦게 결혼해서 집을 나올 때도, 친정과 거리가 있는 곳에 집을 구했다. 엄마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효녀 딸들을 보면 부럽다기보다 신기했다.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길래 저럴 수 있을까. 아니면 성장 배경과 상관없이 타고난 품성이 있는 걸까. 심청이로 태어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일까.
엄마에게 치명적인 병이 생기고 전과 다른 행동을 보이신다고 해서, 없던 애틋함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머릿속은 복잡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활동 외에는 모든 것이 멈춘 기분이다. 아버지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그럴까.
답답한 마음에 며칠 전 코칭을 받아 보았다. 코칭 중 나도 모르게 했던 말이 있다. 코치가 “이 코칭이 끝났을 때 어떤 상태가 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산바카라을 하고, 바카라을 읽고, 글을 썼던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불효가 아닐까요?”
코칭을 통해 몇 가지 실행할 것을 정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집 밖으로 나가 움직이기.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은 엄마 생각을 하지 말고 다른 것에 집중해 보기. 익숙한 산바카라 코스를 걸으며 잠깐 가을 정취에 취할 뻔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의 상태를 전하는 전화였다. 도돌이표다.
아버지 때와 엄마 때를 비교하니 무엇이 다른지 알겠다.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의 차이다.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나는 온라인 게임에 다니느라 바빴다. 가족 중 누구도 아버지의 병증이나 상황을 세세하게 전달해 주지 않았다. 입원하셨다고 하면 병원에 가 보았고, 병실을 지키라고 하면 간병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가족들이 종종 전화를 해서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절반은 엄마의 상태에 대한 정보 공유지만 나머지 절반은 이 상황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누고, 조금이라도 짐을 덜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이런 경우에는 맞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그것이 꼭 1/N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N이 하나 더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나도 지금의 내 상황을 가까운 지인에게 털어놓아 보았다. 그런데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내 몫의 N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끔은 N이 더 커지기도 한다.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견해와 해석이 덧붙어, 스노볼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눈도 못 뜬 채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잠깐 사이 엄마의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었다. 아마 통화 내역에 있던 내 번호를 그대로 누르신 모양이다. 숨이 차서 말을 잘 못 하시는 상황이라 전화를 거는 것도 조심스러워, 간병인에게 연락해 보니 실수로 누르신 것 같다고 한다.
내 번호를 누른 엄마의 손가락이 무엇을 의미하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나는 지금 엄마를 걱정하고 최대한 편하게 해 드리는 것과 나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일 사이에서, 둘 다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