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도 안 했는데...
얼마 전, 샤워를 마치고 욕실 거울을 보다가 어깨 대칭이 어긋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왼쪽 어깨가 오른쪽보다 도톰했다. 알통이라도 생긴 모양새다. 알통이 생길 만한 운동을 한 기억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이건 좀 이상하다.
급한 마음에 AI에게 물어봤다. '지방종' 가능성을 제시하더니, 일반외과나 정형외과, 성형외과 등에서 진료가 가능하다는 친절한 안내를 덧붙였다. 인터넷 이미지 검색에 나오는 지방종은 대개 볼록한 혹처럼 생겼지만 내 어깨에 생긴 새로운 알통(?)은 펑퍼짐하고 넓다. 지방종이 맞을까?
우선 초음파 검진부터 수술까지 다 한다는 동네 외과를 찾았다. 초음파 화면을 요리조리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지방종 같다는 소견을 내놓으면서도, 정작 지방종 제거 수술은 하지 않으니 다른 정형외과로 가보라고 했다. 손에 쥐여준 초음파 CD 한 장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그날은 참 더운 날이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이미 기운은 빠질 대로 빠진 상태. 집으로 일단 철수했다가 훗날을 도모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나온 걸음이다. '오늘 끝장을 보자'는 오기가 발동했다. 곧장 근처에서 제법 규모가 크다는 정형외과로 향했다.
X-Ray를 찍는 것까진 수월했다. 그런데 무려 1시간을 대기한 후에야 의사 선생님을 '알현'할 수 있었다. 초음파에 X-Ray까지 동원했건만, 결국 정확한 수술을 위해서는 MRI를 찍어야 한단다.
"별거 아닐 겁니다. 언제 MRI 찍으시겠어요?"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했다.
"내일 바로 가능해요. 수술도요!"
나의 의욕적인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사는 진료실 밖 상담실로 나를 안내했다. 경험상 진료실이 아닌 별도의 상담실, 그리고 전담 상담 실장이 등장한다는 건 대개 한 가지를 의미한다. 비급여, 그리고 제법 비싼 치료.
사전에 AI에게 물어봤을 때 지방종 수술은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10만 원에서 30만 원 선이라 했다. 할루시네이션을 고려하더라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상담실 의자에 앉았다.
실장은 이래저래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설명하더니, 수술을 위해 1박 입원이 필요하며 총비용은 255만 원이라 고지했다. 자신들은 대학병원이 아닌지라 '좋은 재료(비급여)'를 많이 써서 그렇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놀라서 1박을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니 "1박을 해야 보험금 받기도 좋아요"란다.
이게 과연 맞나? 머릿속 계산기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1박 입원이면 내일 일정이 안 맞아서 당장은 어렵겠네요." 적당한 핑계를 대고 명함만 받아 든 채, 쫓기듯 그 병원을 뛰어나왔다.
역시, 처음부터 검증된 곳으로 갔어야 했다. 초음파 진단을 받았던 동네 외과로 돌아가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은 뒤, 나의 '단골' 종합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익숙한 병원의 익숙한 시스템, 그리고 단골이 주는 특유의 안도감이 밀려왔다. (단골로 드나드는 병원이 있다는 건 슬프지만 안심이 되는 일)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 시간은 짧았지만 깊은 신뢰가 느껴졌다. 불룩하게 튀어나온 알통 아닌 알통의 정확한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수성펜으로 표시를 하고 사진을 찍으셨다. 이곳에서도 MRI는 필수라 했다. 이어 혹시 모를 악성 종양의 가능성까지 설명해 주셨다. 살짝 겁이 난 것도 사실이지만, 무작정 "별 거 아니다"라고 무작정 안심시키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정확한 상황을 짚어주는 편이 나는 좋다.
헐레벌떡 뛰어나왔던 이전 병원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오전에 MRI를 찍고 오후에 바로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정말 정확한 진단을 위한 MRI라면, 찍자마자 당일 오후 수술대로 올라가는 프로세스가 과연 합당한 걸까?
이곳 종합병원에서는 MRI를 촬영하고 일주일 뒤로 의사 진료 일정을 잡아주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언정, 이 상식적이고 단계적인 절차가 나를 훨씬 더 안심시켰다. MRI 검사에 필요한 채혈을 마치고, 촬영 일정을 잡고, 다음 진료 날짜를 확정했다. 깔끔하고 상식적인 일련의 프로세스. 비로소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작은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겠지만, 어차피 이 나이에는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할 수밖에 없고, 적당한 통증은 달래면서 친구처럼 데리고 살아야 한다. 빨리 인정하는 게 속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