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생긴 소동
어버이날, 부모님 생신, 명절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침부터 내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때는 이번 어버이날. 7월까지 집과 관련해 큰 할부들이 나갈 게 있어 긴축인 요즘, 어버이날이 다가오자 머리가 아파왔다. 돈도 없는데 고기 같은 간단한 선물을 보내면 될지 뭘 해야 할지. 그러다 동생이 매년 이런 기념일마다 회사의 고기 제품들을 보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카네이션은 시들해지기도 하고 또 이맘때쯤 시가도 있고… 식물 키우기가 취미인 부모님이니 예쁜 호접란 화분이 어떨까. 바쁜 와중 미리 이런 것들을 정해 배송을 예약해 뒀다.
그러다 당일, 아무래도 꽃만 띨롱 보내면 분명 한소리 들을 게 분명하여 또 고민이 되는 것이다. 얼마 하지? 20? 30? 마침 얼마 전 외할머니가 계속 편찮으셔 부모님 집에 계시며 병원을 다니신다 하여 병원비며 보청기며 보태라고 그래, 50만 원 드리자 하며 보냈다. 나로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으나 다른 것도 아니고 외할머니니까.
엄마 통장으로 돈을 보내고 엄마 아빠에게 순서대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은 이런 날 아침에(반드시 아침이어야 함) 문안 전화를 드리지 않으면 혼이 난다. “엄마 어버이날이라 전화했어.”
돌아온 답은 “맨입으로?”였다.
이런 패턴에 난 이미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뭔가를 보내지 않거나 오전 중에 연락을 하지 않으면 꼭 한 소리가 돌아왔고 뭔가를 보내도 돈으로 주지란 소리를 왕왕 들어왔다.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으니 요즘은 이럴 거면 그냥 하지 말까 싶어진다. 뒤늦게 입금을 확인한 엄마는 뭘 이렇게 많이 보냈냐며 갑자기 태세전환 했으나 이미 내 마음은 상했다. 그리고 뭐, 맨입이면 안 되나? 남편은 그날 이후 맨입으로를 유행어로 만들어버렸다. 한동안 내가 뭔가를 부탁하면 ‘맨입으로?’가 되돌아오는… 그래 고통과 괴로움은 해학으로 치유해야지.
특별한 날들을 연연해하는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여전히 주는 것과 챙기는 것에 어색함을 느끼고 어려움을 겪는 내 모습이 이런 패턴이 만들어지게 된 기반과 크게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주는 사람은 자기 마음이 그렇게 들면 그냥 주면 된다. 돌아올 것을 바라지 말고. 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말고. 이런 복합적인 상황 아래 결국 나는 타인에게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여전히 어려운 어른이 됐다.
그러다 어제 엄마와 통화하다 우연히 그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에게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였더니, “니가 원래 어버이날은 챙긴 적이 없으니까… 서운해서”였다. 또 폭발 직전이 된다. 내가 안 챙겼다고? 아니 근데 꼭 뭔가를 주며 챙겨야 하는 건가? 혼란스럽다. 열받은 상태로 카톡을 뒤져본다. 21년에 돈을 보냈다는 카톡, 22년 어버이날 전화했다가 갑자기 자식 없는 줄 알았단 소리 듣고 내가 불같이 화낸 카톡.
그러다 어버이날 외에 카톡들까지 거슬러 간다. 본가 도배한다길래 보태라고 200만 원 보낸 카톡, 엄마 금팔찌 맞추러 가자는 카톡(실제로 맞췄다), 엄마 자매들 미국 여행 간다길래 비행기표 끊어준 내용, 그리고 연이어 생각나는 작지만 매달 부치는 돈. 내가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폐급은 아닌 거 같은데. 이런 갭은 어디서 오는 걸까.
엄마는 늘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말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게 당연한 게 아니고 미안할 필요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엄마는 늘 서운하다. 엄마는 늘 더 해주고 싶은 사람이지만 나는 뭔가를 늘 덜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엄마 배에서 태어났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 엄마는 이게 세대 차이라고, 나는 이게 지역 또는 가정의 차이라고 했으나 사실 근본적 차이는 그냥 엄마와 나라는 개인의 차이 같다. 엄마도 나를 낳고 기른 지 36년 짼데 나도 엄마 딸로 산 지 그만큼인데 이게 왜 이렇게 어렵나.
사실 얼마 전 복수를 감행했다. 어버이날 며칠 후가 내 결혼기념일이었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동안 엄마는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내가 챙기지 않는 것에도 약간의 서운함을 표했다(지금은 포기한 듯하다). 내 결혼기념일 날 엄마 아빠가 연락이 없으면 나도 똑같이 복수해야지. 당일이 되자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당연함). 오후에도 연락이 없자 저녁 즈음 카톡을 보냈다.
“어?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왜 아무도 축하를 안 해주지?”
그러자 엄마에게서 바로 축하한다는 전화가 왔다. 복수 1단계. “어? 맨입으로?” 알고 보니 이미 엄마는 10만 원을 부쳤다.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다. 자 그럼 복수 2단계, 엄마의 숨은 특기인 비교하기 기술. “어? 인천집에서는 100만 원 보내셨던데”.
하지만 엄마에겐 타격이 없다. 엄마는 늘 못해줘서 미안한 사람이고 그래서 여전히 미안할 뿐이다. 이런 비교에 긁히는 건 다름 아닌 나다. 생각해 보니 엄마를 그저 내내 긁고 있는 건, 아무 챙김 없이 맨입으로 이런 날들을 넘어가는 나였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두 명이라니.
이 글을 쓰는 와중 오늘 엄마 생신이라 전화를 드렸고(선물도 물론 미리 원하는 것으로 보냈다), 어제 대거리를 한 차례 했음에도 엄마 목소리엔 서운한 티 없이 밝게 고마움만 있다. 그러니 갑자기 민망해진다. 그래 그냥 1년에 고작 5번인데 그냥 연락 잘하고 작게나마 보내자. 꿋꿋하게 일관성 있게 누락하지 말고 챙기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