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삼십 대 중반에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하다

by해이지

내 인생의 동력은 뭔가를 배우는 것에서 온다. 가끔 도파민 중독인가? 싶었지만 그것보단 새로운 걸 배우고자 하는 마음, 자세, 기분이 동력인 듯하다. 내 버킷리스트는 죽을 때까지 끊기지 않고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못해본 게 너무 많아 이르게 죽기 싫다. 나에게 삶은 그래서 늘 유효하고 반짝인다. 한때는 그게 공부고 자격증이고 새로운 업무이고 지금은 베이스가 된 것뿐.


음악엔 소질이 없을 거라는 거대한 가스라이팅 - 음치라고 놀리던 가족, 수행평가에서 매번 C를 주었던 선생님들, 합창단 테스트에서 빠꾸 먹은 썰… - 등등 세상의 억까로 일찌감치 나는 악기랄까 노래랄까 음악 같은 것들을 멀리해 왔는데, 그런 스스로에 대한 낮은 믿음 때문에 대학생 때 재즈 밴드에 들어가는 걸 결국 포기했고 그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졸업할 연도에 동아리 모집을 위해 그 밴드가 학교 한복판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해 보는 것. 그것만큼 벅차고 가슴 뛰는 일이 있으려나. 드럼, 베이스, 일렉 기타, 피아노 등을 두고 고민하다 좋아하는 음악들엔 역시 드럼, 베이스, 일렉 기타…. (못 고르겠잖아!). 고민 끝에 휴대용을 생각해서 드럼은 제외하였고, 베이스와 기타 중엔 왠지… 진짜 모르겠는데 아무튼간에 온갖 베이스 밈을 보고 끌렸다. 나의 정체성과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본다면, 그러고서 베이스와 기타 중 하나만을 골라 비유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베이스일 것이고 이유는 아직도 제대로 설명 못하겠다.


그렇게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넘었다. 온라인 게임인 핑계로 연습은커녕 수업에 제대로 가면 다행이다. 통기타까지 사서 배운 지 며칠 만에 때려치웠던 과거를 떠올리며, 악기란 하루 이틀 만에 느는 게 아니라 투입하는 시간만큼 결과가 정직하게 따라올 것이며 요행 바라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엔 인생을 꽤 오래 산 어른이니 이번엔 그러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고서 시작했… 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왜 이렇게 바보 같은지. 핑거링을 겨우 하고 (아직도 bpm 90이 최선이다) 이제야 디스코 주법을 억지로 토할 거 같은 걸 참아가며 이겨내고 있는데, 오늘 갑자기 선생님이 tones and I의 dance monkey에 맞춰 연주해 보잔다. 네? 머라구여? (말도 제대로 못함)


늘 그렇듯 어째 저째 욱여넣듯 수업을 끝냈다. 한 번은 말도 안 되는 연습을 하다가 선생님은 대체 어떤 표정일까 딱 한번 고개를 들었는데 꽤나 한심하단 표정이었다. 말은 매번 잘하고 있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하셨는데… 수업이 끝나고서, 지금 제 수준이 이따윈데 노래에 맞춰 뭔가 하는 게, 진도가 계속 나가는 게 맞아요? 물었다.


하나 배운 걸 한 달 동안 붙잡고 연습한다고 될 거 같아요? 아닙니다. 계속 새로운 걸 하면서 지난 것들을 복습하고 반복해 줘야 늘어요. 지금 보세요. 예전엔 베이스 무게 중심도 못 잡고 핑거링도 못했는데 지금은 하시잖아요.


(그런데 왜 한심한 표정이셨어요ㅠ)


아직도 핑거링 할 때 손가락이 아프고 정신이 자주 혼미해지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가끔 토할 거 같다. 심지어 연습을 무한정할 수 있는 <연습실 제공>에도 일 핑계로 연습도 없이 딱 한 주에 한 번 연습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장 5월보다도 늘었다. 오늘도 수업을 가며 아 다음 달은 그냥 그만둘까. 바쁘다 할까 돈이 없다 할까 무슨 핑계를 대지 고민했지만, 늘 그렇듯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엔 산뜻한 마음으로 베이스 구매를 고민한다. 구매 후 몇 달 만에 처박힌 걸 닦고 쓸고 해 당근에 올릴 미래가 심히 우려돼 아직 행동에 옮기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내 베이스로 집에서 매일 연습할 말도 안 되는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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