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장희원 소설집, 은행나무, 2026
부대껴 사라진 흔적이 몸에 심긴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그 몸들이 여전히 남아 울렁이는 시간에 대한 마주함이다.
상처의 몸으로 남아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극렬한 죽음의 순간까지 몰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다. 만질 수 없으므로 치욕이 더 깊게 새겨지고 가능성이 없으므로 마음껏 저주해도 된다고 자위한다. 그때 그곳에 있었기를. 더럽다는 한마디로부터 건진 더러운 희망을 품은 유의미한 갈증에 대한 다짐을 남긴다.
대신 전해지는 목소리에 낡은 분노를 전하고 자신의 닳아 추해진 몸을 가다듬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건조한 피부 위에 오롯이 새겨진 낙인처럼 지워지지도 씻어 낼 수도 없다. 바싹 바른 가을 잎들처럼 우수수 몰려다니며 위로하는 건 가장 슬픈 심장을 향한 아우성이다. 위로가 불가능한 순간들 공간들 그리고 몸.
죽은 이의 몸은 기억의 방에 그대로 박제된다. 눈을 뜨고 있었더라면 그 마지막을, 고통일지 체념일지 평화일지 모르는, 읽어낼 수 있었을 수도 모를 일이었다. 왜 그 반대로 방향을 틀었을까. 왜 그는 친구를 두고 단호하게 돌아서, 기어이 그 생명이 없는 몸을 마주해야만 했을까. 어머니의 텅 빈 눈에 들어갔다가 텅 빈 가슴에 술을 붓는다.
아이의 움직임과 그 민첩한 경계 사이에 있을 죽음과 죽지 않음의 게임을 바라보는 자가 있다. 아이 주변의 어른의 존재를 찾지만 어느 만큼 아이인지 어느 만큼 어른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아이의 엄마는 어른일까. 그런 어른이 품은 마음의 끝에 뽀얗게 드러난 살, 살갗이 덮은 미성숙한 몸이 다가오며 뿌리는 두려움에 눈을 감는다. 제대로 보호해야 할 구역은 완전한 무방비의 공간, 해방은 누구의 몫일지 아무도 모른다. 뚝뚝 흘리는 물기가 마르며 습해진 무생명의 존재들.
원래 서로 밀쳐내는 혐오하는 사랑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오버랩, 그녀의 몸에서 낯설게 밀어낸 분신으로부터의 욕망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떻게 오게 된 건지 반길 수 없는 몸 그 죄바카라감은 삶의 액세서리처럼 주렁주렁하다. 그녀를 통해 핏줄을 통해 은인을 통해 다시 그녀를 옥죄는 압력으로부터 탈주를 꿈꿀수록 닫히는 숨, 구멍, 뜨거운 끝에 대한 갈증, 엄마라도 어쩔 수 없는 본질적인 거부의 시초가 의문으로 남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기준아 어디 있니.
우린 모두 너를 구하고 싶었을 거야. 엉키며 조여 가는 가느다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호흡에 어떻게든 산소통을 매달아 주고 싶었던 거야. 응급이라는 그런 켜켜이 쌓인 층위들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던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보고 싶고 소리 지르고 싶고, 구해 달라고 말이야. 구조해 달라고 그렇게.
구원의 끝이 보이지 않듯이 그 시작을 어떻게 할지 우린 그야말로 너무나 모르는 게 아닌지.
그 10월은 너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