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악한 하루

면역력이 자라는 시간

by수의서재

우유가 성격을 만드는 거다 그런다. 나는 소젖을 평생 먹고 자란 포악한 사람이 되었다. 동물을 빨고 자랐으니 살았으니 살거니 나는 포악하게 사라질 것이다. 괜히 부아가 났지만 토를 달면 그래서 포악한 거라니까 할까 봐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초유의 면역력을 잃어 내가 잃고 산 것들에 대해 더듬어본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많은 것들의 기원은 내가 세상에 나온 직 후 내 어머니의 첫 방울 모유를 빨지 못해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잔병치레가 많아 손에 무언가 쥐기 시작할 수 있을 때부터 한약 파우치 꼭지에 꽂힌 스트로를 빨며 자랐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한약 봉지처럼 생긴 플라스틱 파우치만 보면 힘이 난다.

소로부터 받은 포악의 잔해가 이후 내 삶을 지배하고 있어서 내 삶이 공격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전쟁터에 뛰어들고 높이 솟았다가 바닥에 널브러졌다가 피를 흘리다가도 벌떡 튕겨 일어나며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시간에 익숙해졌나 보다. 그런 게 삶이다 인생이다, 그게 사람의 삶이고 그 사람이 나라는 거다. 포악이 어때서!

그런데 터질 듯 발화하는 소리의 공격성에 세차게 빰을 얻어맞은 듯 억울하고 슬펐다. 아픈 아머니의 젖을 제대로 먹지 못했으나 어머니를 원망한 적은 없다. 그녀가 곁에 오래 있기를 따뜻하게 데운 소젖을 안고 얼마나 바랐었는지 어린 기억으로도 생생하다. 일찍 떠나신 어머니의 품은 나를 더 나답게 살게 했고 다른 사람들의 결핍에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고 믿는다. 아버지의 버팀목이 되어야 했고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초유를 잃은 장녀의 포악한 삶인 건가.


그렇게 나는 꾸준히 거칠게 야생의 나를 누르며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누가 봐도 멀쩡하고 씩씩하고 건강한 사람일 테다. 여전히 상상하지 못할 순간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지만 번개 같은 순간 해결 능력으로 빠릿하게 살고 있다. 그것마저도 포악의 결과라 한다면 달리 대꾸할 말은 없다.


어제도 포악했고 그제도 미쳐 날뛰며 살았기에, 태어날 때부터 물고 빨아야 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에, 앞으로도 포악할 것은 자명하다.


네 입에서 나와 지금은 내 귀에 걸려있는 '포악'이라는 속내를 오늘 하루쯤 더 들어보고 나는 다시 내가 될 것이다, 내 버전의 포악으로.